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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Mar 20. 2023

육십만 원과 냉이 한 줌

-  도시정착기 1

무안에 집을 짓고 살다가 집을 팔고 광주로 이사했다 그리고 가까운 변두리에 땅을 샀다. 용도는 남편의 퇴직 후의 일터. 시골에 살다가 도시로 왔으나 시골을 잊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뭐라도 키우며 오가는 일상이 있어야 지루하지 않을 거 같았다. 사실 지루함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것은 또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지루함이 우울로도 가고 우울이 심각한 질병으로 가기도 한다. 광주로 이사 온 지 두 달 만에 저지른 일이다. 

 땅은 약 170평. 농사짓는 사람에겐 좁겠지만 우리에게는 한없이 넓다. 거기에다 나무를 심고 작은 텃밭을 하고 농막을 들일 생각이다. 무안에 집을 짓고 살 때, 우리 집은 겨우 150평이 조금 못되었다. 건물을 짓고 나니 남는 것은 정말 작은 마당과 뒤안이었다. 텃밭을 따로 들일 수도 없어서 화단을 둘로 쪼개어서 상추를 심었다. 텃밭이라고 할 것도 없는 그 조그만 면적도 힘에 부쳤다. 그런데 170평을 모두 밭으로 해야 하다니. 남편의 일터가 너무 넓다 싶다.      

 그 땅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논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일부가 팔려버렸으므로 경계를 지어야 한단다. 둑을 쌓아서 물이 못 넘어가게 할 거란다. 우리도 필요한 일인데 먼저 연락을 해주니 고마웠다. 이왕 하는 김에 땅도 고르게 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해대며 친절한 이웃을 만나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서울에 가족이 살고 있고 혼자 내려와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성실한 거 같다는 둥, 사람이 참 좋아 보이더라는 둥, 형님 동생으로 알고 지내자고 했다는 둥,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트랙터로 일한다는 연락을 받고 밭으로 갔다. 봄날 햇빛은 따뜻했다. 밭에는 무구한 햇빛이 막 쏟아지고 있었다. 논이었던 자리는 갈아엎어져서 거름과 뒤섞여 있었고, 무릎 높이만큼 둑이 쌓아져 있었다. 그러고도 가운데에는 물길로 내라고 긴 구덩이까지 파 놓았다. 우리는 미안해서 가져간 1000ml 오렌지 주스를 건넸다. 고맙다고. 미안해서 어쩌냐고. 

 그 사람은 마지막으로 트랙터 삽날을 빼내고 흙을 편편하게 눌러놓고는, 이쯤 농막을 앉히는 것이 좋겠다, 그러려면 자갈을 한 트럭 사다가 깔아야 한다, 우물을 파려면 연락해라, 등등 이 말 저 말을 하며 서성였다. 참 고맙게도 이웃을 잘 돌봐주시는 분이구나 하면서 우리는 말끝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땅 건너편 배밭이나 봐볼까 하면서 돌아서는데, 그 사람과 남편이 서로 뭐라 뭐라 한다. 

“ 뭐래?”

“ 으응, 60만 원 계좌로 넣으라네.” 

“ ?? ”

 육십만 원이나?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가 너무 순진했다. 공짜로, 이웃이 된 기념으로 그냥 해주는 거라고 생각한 우리가 참 우매했다. 서로 경계를 짓는 일인데, 측량은 우리가 돈 내고 했으니 그만한 것은 저쪽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미리 생각했던 우리가 잘못이었다. 한 마디도 못하고 돌아선 남편에게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일한 것도 아니고 오전 몇 시간 했으면서 60만 원이라니! 그것도 누가 해주라고 했냐고! 본인이 나서서 그렇게 일을 해놓고 10만 원도 아니고 60만 원이라니. 기가 막혔다. 

 세상에 속은 것 같지만, 요즘 농촌에 10만 원짜리 일당이 어디 있겠냐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김칫국 마신 사람처럼 속이 더부룩하고 찝찝했다. 

 갈아엎어 놓은 우리 땅에는 냉이가 없었다. 우리는 그 사람 땅으로 들어가서 냉이를 캤다. 냉이는 이미 꽃대를 밀어 올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뿌리를 캐자 상긋한 향이 올라왔다. 남편이 호미로 콕콕 집어내고 흙을 털면 나는 그걸 받아 봉지에 넣었다. 60만 원은 아깝지만, 손 끝에 올라오는 냉이는 튼튼하고 향기로웠다. 오늘은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서운함이나 억울함은 모두 뭘 몰라서 생긴 것, 60만 원과 냉이 한 줌을 맞바꾸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냉이 한 줌에 60만 원보다 더 큰 값어치가 들어있는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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