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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Jan 18. 2021

도솔을 찾는 마음

-해남 미황사 도솔암 방문기


 도솔! 육욕천의 넷째 하늘. 수미산의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되는 곳에 있는, 미륵보살이 사는 곳으로, 내외(內外) 두 원(院)이 있는데,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이며, 외원은 천계 대중이 환락하는 장소라고 한다. 미륵보살의 정토라서 그런가. 도솔암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곳이 많다. 해남 미황사, 고창 선운사, 그리고 통영, 울산에도 도솔암이 있다. 우리는 모두 미륵보살이 사는 정토로 가고 싶은 것이다.

 오늘은 미황사의 도솔암을 오른다. 미황사는 많이 갔지만 도솔암은 처음이다. 

- 별로 볼 것도 없어.

- 그냥 꼭대기에 암자 하나 있을 뿐이야.

- 엄청 높이 올라가야 해.

- 차로 가기가 좀 버거워.

 

 이런 말들 때문에 쉽게 가지 못했다.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햇빛이 좀 난다. 그런데 바람이 좀 심상치가 않다. 내일 기온이 많이 떨어지고 눈이 온다고 했으니, 하늘이 눈 뿌릴 준비를 하고 있나 보다. 미황사 올라가는 길을 옆에 두고 도솔암 오르는 길로 접어들었다. 바람이 세진다. 오르기 좋게 시멘트 길로 포장이 되어 있다. 양옆으로 완도 앞바다의 작은 섬들이 보인다. ( 저 완도 앞바다 작은 마을에서 한 일 년 묵었지. 어둠을 틈타 찾아오는 한남자를 가슴에 품고 저녁이면 바닷가로 나와 돌을 던지곤 했지!)

 약 2km 남은 지점에서 차를 적당히 주차하고 걸어가기로 한다. 어차피 차도 수동이고 요즘 증상도 영 좋지가 않기도 하고, 또 운동도 할 겸이었다.

 그래도 드문드문 올라가는 차가 있고, 스틱을 쥐고 걷는 사람도 있다. 오르막에 이르러서는 바람이 거의 없고 안온한 느낌이다. 왜 그렇지? 가만히 보니 달마산이 바람을 다 막아주고 있다. 그런데 막상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고 도솔암 주차장을 지나자 큰바람이 몰아친다. 바람 소리는 성난 비행기보다 더 광폭하다. 큰 프로펠러가 암초에 걸려 퍼덕거리는 소리랄까. 하긴 도솔암 밑에서 바라보는 달마산은 온통 바위투성이다. 금강산의 절경을 보는 듯, 날카롭고 희고 뾰족하고 높은 바위들이 산등성에 솟아있다. 도솔암 암자가 별 볼 일 없다 해도 오르는 길과 달마산의 풍광만으로도 온 보람이 있다 싶다. 

달마산 자락


 ‘끝’이라는 말이 끄는 매력이 있다. 달마산은 해남 땅끝 바로 못미처 있는 산이고, 그 달마산 그 한 벼랑에 암자가 있다. 나는 절벽을 바라보고 서 있는 암자를 상상했다. 벼랑에 세워진 암자는 세상 낭떠러지에 있는 마음으로 짓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처절히 절망했거나, 그만큼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낭떠러지 앞에 다가서지 않을까. 무엇의 낭떠러지란  한 발 내딛으면 죽음이고, 한 발 안으로 돌리면 피안의 세계가 열리는 이중성을 갖고 있으므로.         


  그곳에 기거하는 스님은 어떤 마음일까를 생각하며 바람에 날아갈 듯한 몸을 꽉 붙잡고 좁은 산길을 오른다. 암자는 바위가 갈라놓은 듯한 입구를 가지고 있다. 돌계단을 올라서니, 암자가 나온다. 한 칸 방. 그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 아니 바로 옆으로 높고 굵은 고목 한 그루가 서 있고, 작은 돌들로 받쳐놓은 마당이 있다. 스님은 살고 있지 않았다. 나는 왜 이리 높고 가파른 암자에 스님이 살고 있을 거라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었을까. 없는 사람의 마음까지 추측하고 그 마음에 내 마음을 대보려 했을까. 불상 앞에서 촛불만 타고 있다. 그렇지, 이런 곳에는 아무도 살 수 없지. 당장 먹을 것을 어떻게 갖고 올 수 있겠어. 이곳은 화장실도 보일러도 없는데. 


아래에서 올려다본 도솔암과 도솔암 입구


 오직 방 하나만 있는 곳. 그리고 그곳에 밝혀져 있는 촛불들. 기도를 밝힐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아마 미황사 스님은 아침 일찍 산길을 올라와 촛불을 밝히고 갔으리라. 소원이나 희망이나 간절함 같은 것은 이런 높은 곳에 산다. 희망이란 것이 지상의 아주 낮은 곳에서 움틀수 밖에 없다 해도 그것을 끌어올리는 힘은 마음 가장 높은 곳이다. 마음의 가장 높은 곳, 마음의 가장 끝. 그곳에 촛불이 타고 있었다. 날마다.          

  바람이 넓적한 몸을 갈가리 찢어서 넘어오는 듯하다. 배낭에 넣어온 차디찬 주먹밥을 서서 먹는다. 밥알이 다 굳어버린 듯 딱딱하다. 암자는 앞마당으로도 뒤편으로도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오로지 추운 겨울 매서운 바람 속, 낭떠러지에 서서 촛불 몇 개 품고 있을 뿐이다.     

202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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