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1
갑자기 물이 안 나온다. 단수된다는 방송도 없었는데. 하긴 안전문자가 오긴 했다. 무안지역에 물이 부족하니 물을 아껴 쓰라고.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물이 끊어질 줄은 몰랐다. 당장 화장실을 쓸 수가 없고, 설거지는 물론 이도 닦을 수도 없다. 물이 한 바가지도 없다. 그래도 나는 아침 일찍 세수하고 머리도 감았는데, 늦게 일어난 남편은 세수도 못했다. 지하수라도 나올까 틀어 보았지만 관이 얼어버렸는지 나오지 않는다. 오후에는 나오겠지, 하면서 병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물리치료도 끝내고, 미뤄놓았던 차도 정비하고, 좀 걸었다. 도로는 다 녹았는데 그늘진 골목은 아직도 한쪽에 눈덩이가 그대로 있다. 목포, 무안지역에 폭설주의보와 함께 십 센티 넘는 눈이 내렸다. 게다가 한파까지 겹쳐서 영하 10도를 넘는 날이 계속되었다. 쌓인 눈이 쉽게 녹지 못했다. 수도가 동파되었다는 뉴스도 있었지만, 우리 집은 수도 계량기에 두터운 헌옷을 잔뜩 넣어놓았으니, 수도가 얼어서는 아니었다.
이제 물이 나오겠지, 하며 들어오자마자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어? 큰일났네. 밥도 할 수가 없겠는데? 밥은 고사하고 화장실은 어쩌지? 막막했다. 옆집은 어떻게 하고 있나 물어볼까? 별로 친하지도 않는데 물어볼 수도 없고. 면사무소에 전화를 했다.
물이 언제쯤 나오냐고. 예고라도 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면사무소 직원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한다. 다시 군청에 전화를 해보았다. 군청의 답변은 좀 더 자세했다. 지금 수리하고 있는데, 지대가 높아서 그러니 좀 더 기다려달라고. 장흥댐에서 물이 오는데 문제가 생겨서 그런다고. 이쪽 무안지역이 장흥댐에서 물을 받는 맨 끝이고, 게다가 고지대 마을은 물이 올라가기가 힘들단다. 겨울철 수량 조절을 못해서 그런 거라면서 좀 참아달라고 했다.
우리가 물이 한 바가지도 없다 했더니, 급수차를 보내든지 생수를 보내주던지 하겠단다.
무안읍에서 여기 시골까지 급수차를 가지고 온다고?? 의아했다. 우리나라가 어느새 이 정도까지 됐나?
다용도실 수도에서 물이 아주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오줌 줄기 마냥 가늘게 나오는 것을 큰 대야에 받기 시작했다. 물이 세 대야정도 받아졌을 때, 이것으로 저녁에 화장실은 다닐 수 있겠다 싶을 때, 마을 반장이 생수 세 통을 들고 왔다. 면에서 보낸 거라고.
우리의 항의?전화가 군에서 면으로, 면에서 마을 반장에게로 전해졌나 보다. 급수차가 아니라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군민 한 사람이 전화했는데 군에서 이걸 무시하지 않고, 생수를 보냈으니. 우리나라가 참 많이 달라졌다 싶었다. 옛날 동사무소에 등본 하나 떼러 가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고, 겨우 차례가 오면 또 뭐가 그리 복잡하고 온갖 불친절까지 겪어야했는데. 우리나라는 겉만 번지르하다고 비난하곤 했는데, 이런 친절이 이 촌구석에 있었구나. 갑자기 조금은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미적대고, 그런 법이 논란이 되고 있는 와중에도 일터에서는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있지만, 정치적 이해가 별로 없는 이런 문제에서는 그래도 섬세하구나. 생수 세 병에 갑자기 나는 착한 군민이 되어버린 듯하다.
저녁밥 할 시간이 되자, 콰곽 물이 소리를 내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밥을 하기 시작한다. 생수 세 병 때문에 갑자기 착해져 버린 저녁을 얻었다.
2021.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