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 아프다. 팔꿈치에 염증이 생겨서, 소위 말하는 엘보가 왔다. ‘엘보가 왔다’라고 쓰고 보니, ‘왔다’라는 말이 새롭다. 어디에 있다가 내게로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 염증이란 게 생뚱맞게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고, 내 몸 어딘가에 잠자고 있다가 나타난 거겠지.
몇 해동안 잔디밭을 가꾼다고 풀을 뽑았고, 화단에 허락 없이 돋아나는 억센 잡초들을 잡아채 뽑아냈다. 이곳 시골에 집을 짓고 살면서 아파트 거실을 청소하듯, 마당의 풀들을 청소하는 기분으로 했다. 잡초가 보이지 않는 잔디마당은 청소를 깔끔히 해놓은 방처럼 개운했다. 풀을 뽑으면서 잡념이 사라지고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는 느낌도 좋았다.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 팔에 문제가 생긴 걸 보니, 호미를 쥔 손보다 풀을 잡아끌어올리는 힘이 더 셌나 보다.
왼손으로 무엇을 들어 올리기가 힘들고, 옷을 갈아입기도 힘들고, 머리 드라이를 하기도 힘들다. 결론적으로 원만한 일상생활을 하기가 힘이 든다. 남편이 옆에서 물건을 들어주고 냄비를 들어주고 김치통을 갖다 주고 해서 먹고살고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먹고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남이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내 속으로 무척 힘이 들고 짜증이 난다.
그동안 나 때문에 뽑혀나간 풀들에게 미안하다고 속죄하듯 마음을 전해 보지만 이미 늦었다. 내년 봄이 되면 절대로 풀을 뽑지 않으리라. 잔디밭을 그냥 놓아두면 풀밭이 되고 말겠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을 하는 계기로 삼으리라. 꽃밭을 가꾸어보겠다고 봄마다 몇 만 원씩 돈을 들여 모종을 옮겨심던 것도 마음대로 안 돼서 이미 작은 텃밭으로 만들어버렸다. 겨우 상추와 곰보배추를 몇 포기 기르면서 봄 여름을 났다. 텃밭도 잡초를 매 줘야 하지만 꽃밭보다는 마음이 좀 편하다. ‘알아서 커라’하는 방심의 탓도 크겠지만, 텃밭에 엎드려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졌다.
이참에 ‘방심’이란 게 내 살길이란 생각이 든다. 마음을 놓는 것. 불교에서 말하는 방하착!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는 생각을 놓아버리면 내 마음이 편해짐을 느낀다. 무엇보다 몸이 편해진다. 게을러서는 안 되겠지만 쓸데없는 걸 쥐고 있는 습관을 놓아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무엇의 통증이란 신호라고 했다. 조심해라, 아프다. 팔이 알려주고 있다. 오른손이 있는 것만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아픈 팔 때문에 물건을 들어주는 남편의 수고를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을, 무엇보다 조금씩 나아져가는 왼손의 변화를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염증의 통증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엘보가 생긴 것이 꼭 잡초 때문만은 아니겠지. 아무리 풀을 많이 뽑아도 엘보가 오지 않은 사람도 많으니까. 내 관절이 원래 약하다든지, 이제는 나이가 먹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노화 증상이라든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조심해가면서 살 일이다. 이 통증만 사라지면 살 거 같아도 또 조금 있다가 다른 통증이 다가올 것이니.
오늘도 점심 먹고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 물리치료받고 오면 하루해가 다 가버린다. 그렇지만 지금 내게 있는 통증을 살피는 일 말고 더 중요한 일이 또 있겠는가. 이것을 원망하고 한탄하는 마음 없이 잘 살피고 돌려보내는 일이 중요하다. 왔던 것을 돌려보내는 일. 어쩌면 앞으로 계속될 것만 같은 그 일을 ‘방심’하며 해보려 한다.
202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