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기 시작하다

- 시골살이 3

by 푸른향기

무엇 때문이었지?

층간소음 때문에? 막연한 로망 때문에? 아니면, 오래전에 꿈꿔와서?


하긴 막연한 로망은 아니고 오래전에 꿈꿔본 것은 사실이다. 오래전에 꿈꿨다는 것과 오래전부터 계속 꿈꿔왔다는 건 다르다. 말장난 같지만 오래전부터 계속 꿈꿔온다는 것은 꿈의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무엇인가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니까.


한 남자를 사랑하고 있을 때, ( 그 남자와 같이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사랑이란 게 어찌할 수 없는 소용돌이로만 흘러가고 있을 때... 그래서 이 남자와는 물 위에 뜬 소금쟁이처럼 흔적 없이 사랑해야만 할 때, 다음 생에나 그 이야기를 살아볼 수 있다고 여기고 있을 때...) 어느 소품 가게에 들어가서 우연히 사게 된 집 한 채. 이런 집에서 같이 살고 싶다는 잠재의식 때문이었을까. 작은 집 한 채를 샀었다.



KakaoTalk_20210212_091441387.jpg 지금도 가지고 다니는 집

나에게 그런 집은 잠재의식 속에 묻혀 있는 욕망 같은 것. 또는 현실이 될 수는 없는 인형 같은 것. 그런 것이었다. 진짜 그런 집을 짓고 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현실에서 이 남자와 같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는 작은 소도시의 조그만 아파트를 하나 사서 살고 있었다. (물론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은 그때 같이 살 수 없으리라는 그 남자!) 30평 아파트는 우리가 처음 갖게 된 아파트였다. 10여 년을 전세로 전전하다가 처음 아파트를 계약하고는 참 많이 설레었다. 주말이면 공사 중인 아파트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서서 저기쯤이 우리 동이고 저쯤이 5층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켜가며 뿌듯한 마음을 키워갔다. 우리가 선택한 아파트는 산 바로 아래. 산을 가까이할 수 있고, 산 풍경이 거실에서 보이며 영산강을 조망할 수 있다는 설명에 혹 하고 단박에 계약을 해버렸다.


우리 집은 5층. 남아 있는 것이 저층밖에 없어서 선택했던 거였는데, 저층이 싫지만은 않았다. 땅과 그만큼 가까워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복병이 숨어 있었다.


우리 동 바로 앞에 놀이터가 있었던 것. 놀이터는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올 즈음, 오후 네 시가 넘으면 붐비기 시작했다. 쪼그만 아이들이 고성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쨍쨍한 목소리로 서로 부르고 대답하고 하늘이 터져 나가라고 웃곤 했다. 놀이터는 꽤 넓었고, 놀이 기구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었다. 새로운 택지 개발 지역이어서 다른 곳은 별로 갈 데도 없었던 아이들은 오로지 놀이터로만 몰렸다. 나와 남편의 퇴근 시간은 오후 다섯 시. 아이들이 한참 놀고 있을 때 집으로 돌아오는 거였다. 아이들의 고함과 함성이 5층으로 올라왔다.


산 아래에서 조용히 쉬고 싶었던 우리는 생각하지 못한 아이들 소음 때문에 그동안 부풀었던 기대가 깨지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그때마다 참지 못하고 놀이터로 내려갔다.

- 얘들아 너무 뛰지 마라

- 악은 쓰지 말고 놀자

등등의 잔소리를 하고 올라오곤 했다. 그런데 뛰노는 아이들이 그렇게 할리가 없다. 남편의 잦은 출동은 아이들 엄마와의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아이들 엄마들은 자식들이 마음대로 뛰놀 수 있는 놀이터에서 그런 제재를 받는 것을 어이없어했다. 남편은 얼마 지나지 않아 '5층 아저씨'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어 버렸다.


게다가 복병은 또 한 군데서 나타났다. 바로 위층의 층간 소음. 위층은 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네 살, 여섯 살 사내아이. 우르르 뛰어다니는 소리, 어디서 뛰어내리는지 쿵쿵 떨어지는 소리...

소리가 너무 심하다고 항의를 해도 소용없었다. 위층 주인은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냐고 되레 우리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래도 날마다 산에 오를 수 있어 좋았고, 겨울이면 설경을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봄이면 아카시아 향기가 은은하게 내려왔고, 짙어지는 신록이 한없이 좋았다. 다른 데로 이사를 가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어디 다른 아파트는 이런 풍경과 조건을 주지는 못했다. 그만큼 우리는 산을 좋아했나 보다. 우리가 그래도 여기가 더 낫지, 소음이 있기는 해도 이런 데는 없지, 하면서 1년 더 , 1년 더, 하면서 살고 있을 때였다. 오래 알고 지내는 J 가 땅 구경을 같이 가자고 했다. 참 좋은 땅이 있다고. 한번 같이 가 보자고.


J는 집을 지으려고 몇 년째 땅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집을 짓기 위한 전문 지식도 꽤 수집하고 있었고 알고 있는 것도 많았다. J와 함께 가본 땅은 참 마음에 들었다. 우선 크지 않아 좋았고 사방이 산으로 빙 둘러서 있었다. 아늑해 보였고 조용했다. 박씨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집성촌이었는데 남아 있는 집은 몇 안되어서 갈등도 별로 없을 듯했다. 우리는 또 대번에 계약을 해버렸다. (하여튼 나의 결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조용한 풍경이다, 풍경이되 조용한 풍경.) 사실 그때만 해도 집을 짓겠다는 적극적인 생각은 없었다. 그냥 땅이 매우 마음에 들어서, 면적이 작아서 머뭇대고 있던 J 대신에 덜컥 사버린 것이었다. 누가 이 좋은 터를 가져갈까봐서!


땅을 사놓고 틈 나면 와보고 또 와보곤 했다. 우리 땅이 된 터에는 무너져 가는 집이 있었고 마당에는 동네 주민이 양파를 심어 키우고 있었다. 양파 잎이 햇빛에 파랗게 도드라지는 것이 평화롭고 좋았다. 당장 집을 지을 생각은 없었고, 몇 년 있다가 서서히 지어볼 생각이어서 그렇게 잠시 잠깐 와 보는 것만으로도 풍족하고 든든한 기분이었다. 아직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가 있었고 대번에 시골로 들어오기에는 마음가짐도 안되어 있었기 대문이다.


우리가 덜컥 땅을 사버리자 J도 우리 땅 바로 옆 땅을 샀다. 팔지 않겠다는 주인을 설득하고 이어 있는 밭도 같이 샀다. 그러고는 바로 집을 짓자고 꼬시기 시작했다. 서로 가까이서 이웃으로 살자고. 늘그막에 농사지으면서 이웃으로 살면 외롭지 않고 좋지 않겠냐고. 또 집을 같이 지으면 우선 비용도 많이 절감된다, 전원생활도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시작해야지 너무 늙으면 못한다, 도시와 많이 떨어져 있지 않아서 접근성도 좋다, 아들은 곧 고등학교 가면 기숙사로 가지 않겠냐 등등.

우리는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망설이기도 했지만 따라서 하면 되겠지 싶어서 몇 번 고민해보다가 결정해버리고 말았다. 그래, 지금 당장 짓자, 언젠가 하는 생각으로는 뭐든지 이룰 수가 없지.


오래전에 꿈꿔본 것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이는 한적한 단독주택을 보면서 '우리도 저런데 살고 싶다, 좋겠다, 그런데 막상 짓기 힘들겠지? 저런 데서 살기는 좀 무리겠지?' 하면서 그냥 지나는 말로 관심을 나타내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아파트에서 겪고 있는 소음과, 때마침 우연히 해버린 땅 구매 때문에 집 짓기에 발동이 걸렸다.

집을 따라 짓기 시작했다. 우리는 집을 짓기 위해서 발품을 판 것도 아니고, 건축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집에 대한 구체적 고민을 해 본 것도 아니었다. 단지 옆집이 지어져 갈 때 우리도, 우리도, 하면서 하나씩 해나갔다. 다행히 성실하고 순박한 건축주를 만나서 집은 아무 사고 없이 네 달 만에 완성되었다. 어찌 보면 그 어렵다던 집 짓기를 J 덕분에 쉽게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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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집

겉으로 보면 조립식 같지만 속은 백 프로 흙이다. 시어머님은 이런 궁벽한 시골에 들어와서 벽에 종이도 안 바르고 살겠다는 것이 영 심난해 보이는 눈치였다. 그래도 우리는 이 집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았고 산으로 에워싸진 위치 때문에 편안했다. 특히 흙벽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우리는 평일에는 아파트에서, 주말에는 시골집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소위 세컨드 집이 생긴 것이다. 토요일 아침이면 우리는 이틀 치의 식량을 싸들고 이곳으로 들어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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