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 가는 것처럼 토요일 아침이면 그날 저녁과 일요일 점심까지 먹을 것을 챙긴다. 그럴 때면 빠지지 않는 삼겹살. 날씨가 좋으면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호사를 누리기 위해서다. 챙기는 것이 간단한 거 같아도 막상 짐을 싸다 보면 꽤 많고, 또 가서 보면 꼭 빠진 것이 하나 둘 있다. 빠진 것이 있으면 다시 차를 끌고 읍내까지 나와야 하니까,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쓴다. 예를 들면 삼겹살을 꿔먹으려고 했는데 막상 삼겹살을 안 넣었다든지.
(삼겹살 하면 참 할 말이 많다. 우리 식구는 삼겹살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세 남자가 모두 삼겹살 팬이다. 그래서 아이들 어릴 때는 토요일마다 가스버너를 짊어지고 산으로 공원으로 하다 못해 다리 밑으로 가서 삼겹살을 구워 먹곤 했다. 한 번은 구례 하동에 놀러 갔는데, 강변에 자리를 잡고 고기를 구우려고 보니까 버너가 없었다. 그게 내 책임인지 남편한테 온갖 구박을 받고 결국 라면을 사 먹었던 기억도 있다. 정작 나는 제일 싫어하는 것이 돼지고기 냄새.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를 자주 먹을 수는 없으니, 돼지고기를 자주 먹을 수밖에 없었다. )
집을 짓고 제일 해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었다. 그것을 성취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한 평생 살고 싶어
남진의 '님과 함께', 옛날 노래이다. 어릴 적 대수롭지 않게 흘려듣던 노랫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절하게 알아가기 때문이다. 값싼 싸구려 감정이라고 내쳤던 노랫말은 인생의 금과옥조 같고, 아니 아무리 애를 써도 닿지 못하는 멀디 먼 정상의 깃발 같기도 하다.
이렇게 땅 값이 비싼 대한민국에서 푸른 초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국민의 1%에 해당되는 사람일 것인데, 게다가 그 집에서 함께 사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누구랑 같이 사는 것은 얼마나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얻어지는 것인가. 그 수많은 결혼과 연애와 독신의 역사를 알고 나면 누구와 함께 산다는 것은 누구나 하는 당연한 일만은 아닐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영원히 사랑하는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은 수많은 인내와 고통의 과정을 거쳐야 어쩌다 한번 얻게 되는 것이리라. 그래서 노랫말도 단지 '그러고 싶다'는 희망사항으로 표현되었는지 모른다.
비록 푸른 추원은 아니지만 150평 땅에 집을 지었고, 또 맨날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우는 일을 반복하기는 하지만 옛날엔 미치도록 사랑했던 사람과 살고 있으니 정상의 깃발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랫말 같은 로망을 조금은 실현한 셈이다. 이제 그 땅에 생각했던 것처럼 고구마도 심고 감자도 심고 봄이면 꽃도 심어보리라. 마루에 앉아 실하게 여문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따뜻한 햇빛을 받고 있으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마침 지나가는 동네 사람이 있으면 불러서 같이 먹고, 또 무엇보다 같이 집을 짓고 이웃이 된 J네도 불러서 도란도란 얘기하면 참 괜찮겠다 싶었다. 그렇게 인생의 말년을 흙과 함께 땀과 함께 이웃과 함께 보내면 되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해져 오기도 했다.
고기를 구워먹는 탁자 상상으로 그치는 일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실현 가능한 일로 다가와 있었다. 목포에서 시골집까지는 20분 거리.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다. 우리는 먼 곳에 온 사람처럼 다시 짐을 풀고 고기를 구워 먹거나 찌개를 끓여먹고, 각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었다. 아들은 다락방에 올라가 소설을 쓰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의 수고를 여기 시골집에 와서 덜어내는 것처럼 최대한 느긋하고 편안하게 있다가 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저녁이 오면 마음이 좀 서늘해지고 이상하게 어두워지곤 했다. 마을을 치고 들어오는 진한 어둠 때문인가... 도시보다 저녁은 빨리 찾아들었고, 특히 우리 마을은 산으로 에워싸여 있어서 해가 빨리 들어가 버리는 것 같았다. 밤이 되면 주변이 깜깜하고 창 밖으로는 불빛 대신 내 얼굴이 동그랗게 떠올랐다. 따뜻한 TV가 필요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는 TV 앞에 앉아 있어야 안정이 될 거 같았다. 저녁밥을 먹고 또다시 책을 펴 들고 있거나 라디오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은 내키지가 않았다.
이틀을 못 있고 토요일 저녁에 다시 짐을 싸서 TV가 있는 아파트로 돌아가는 일이 잦아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