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쯤 되었을까. 아파트에서 세컨드 하우스로 오가던 생활을 한 지가. 중학생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시골집으로 이사했다. 마침 때는 꽃 피는 봄. 아, 들어가도 되겠다 싶었다. 안온한 공기, 환한 햇빛, 곳곳에 피어나는 꽃, 짙어져 가는 연푸른 잎들. 그런 봄기운이 '시골로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을 유혹했다.
물론 그러한 결정을 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더 컸다. 집을 두 개 가지고 있기가 힘들었다. 두집살이를 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일주일마다 먹을 것을 싸가지고 이동을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놀러 가는 것처럼 재미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피곤한 느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살림살이 역시 두 개씩이 있어야 했다. 그릇이며, 이불이며, 청소기, 냉장고... 하루를 살더라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 많았다. 그리고 가장 필요했던 것은 텔레비전이었다. 저녁을 해 먹고 느긋한 기분으로 밤 시간을 보낼 수 있는 TV가 필요했다. 평소에 TV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편안한 휴식에는 TV가 최고였다. 냉장고는 J가 쓰던 헌 냉장고를 얻어와 쓰고 있었지만, 계속 두 집살이를 하려면 TV는 사야 했다.
결국 살림살이를 이중으로 또 사느니, 아파트를 청산하고 시골에 들어와서 사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 그러한 합리적인 이유를 붕 뛰웠던 것은 따뜻한 봄날 기운이었고.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수도관이 설치가 안되었던 것이다. 가까운 절에 가서 약수를 받아와서 먹을 물로 쓰고 다른 용도의 물은 지하수를 썼다. 생수를 사 먹을 수도 있었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 잘 모르겠다. (이듬해에 군청에 민원을 넣어서 수도를 해결했다)
제일 중요한 TV도 나오지 않았다. 아파트도 그렇지만, 따로 인터넷을 설치하고 인터넷 TV를 연결했다. 인터넷 TV는 들리는 말과 입모양이 달라서 좀 이상했다. 들리는 말이 입모양보다 더 빨랐다. 마치 일어난 일을 조금 뒤에 알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시골이 세상 일과 점 떨어져 있는 것처럼.
구독하던 신문도 이 시골까지는 배달이 안되니, 보는 것을 중단해야 했고, 세탁물을 들고 목포까지 가야 했다. 음식 배달도 아주 많은 양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아들이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하면 차를 가지고 나가서 포장해서 들고 와야 했다. 물론 집에 가져와서 먹는 치킨은 좀 식은 치킨...
거의 모든 것이 불편했다.
그래도 좋았다. 바라보이는 하늘빛이 좋았고 밤이면 쏟아지는 별들이 좋았다. 마당 바로 위에서 둥실 달이 떠 있는 밤이면 마당에 나가 후- 한숨을 쉬어보는 것도 좋았다. 내가 알고 있는 별자리를 찾아보며 저기는 북극성, 저기는 오리온...
마당에 잔디를 깔고 주말이면 화원에 나가 꽃을 샀다. 터가 넓지는 않으니, 내가 주로 사는 꽃은 작은 꽃들. 그러나 꼭 잊지 않고 묻는 말이 있었다.
- 이거, 내년에도 또 피나요?
나는 한 번 심고 나면 다음 해에도 또 살아나는 꽃을 찾았다.
마가렛, 복수초, 아네모네, 꽃양귀비, 철쭉, 튤립, 할미꽃... 안개꽃까지. 그리고 이름도 잘 생각 안나는 꽃들을 참 많이도 사다 심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다년생이라고 산 꽃들은 이듬해 다시 나지는 않았다. 마가렛이 드문드문 다시 나긴 했지만. 다년생이라고 해도 겨울을 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할미꽃은 한번 심어놓으니 지금껏 뿌리가 살아있어서 봄이 되면 잊지 않고 도톰한 꽃을 피운다, 할미꽃 뒷모습이 얼마나 우아한지 가까이 가보면 안다. 두꺼운 진자주색 꽃잎이 세밀한 털을 덮고 있는 그 모양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귀하다'라는 탄성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 귀하던 할미꽃이 지고 나면 정말 할머니처럼 흰머리를 산발하고 땅바닥에 처질 듯 가라앉고 있는 모양이 참 안타깝지만 말이다.
그리고 수선화! 수선화야말로 봄을 알리는 일등공신이다. 수선화를 앞쪽 화단에 심었는데 이것만은 추위에도 꼿꼿이 살아있다가 봄이 오기도 전에 땅 속에서 싹을 올리곤 한다. 그때마다 봄이 온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그 새싹은 얼마나 귀엽던지. 올해도 가장 먼저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 이 수선화다
1월에 싹이 올라오고 있는 수선화 5일장이 열리는 읍내에 나가 묘목도 사다 심었다. 목련, 사과나무, 무화과나무, 앵두나무, 살구나무... 가을이면 빨간 사과가 열릴 것을 상상하고 연분홍 살구꽃이 피는 것과, 자줏빛 목련이 탐스럽게 피어나는 것을 상상하며... (우리 생활을 밀고 가는 건 상상일 때가 많다!)
옮겨 심은 나무가 잘 뿌리내리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잔디가 파래지는 것을 보며, 눈 앞에 있는 화단에 꽃이 살아나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쁨이었다. 치킨을 시켜먹지 않아도, 신문이 오지 않아도,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쏟아지는 햇빛 아래 잔디와 풀과 꽃들을 보고 있는 것이 좋았다.
서울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큰 아들도 어쩌다 내려오면 참 좋네, 좋네 했다.
-뭐가 좋아?
- 으응, 공기도 좋고 한가하고, 참 평화롭네...
젊은 아이도 이런 것을 좋아하다니, 마음이 편해졌다. 얘들은 친구도 만나고 놀러도 가고 해야 하는데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싫어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오랜만에 집에 내려온 아들이 친구를 만나겠다고 하면 우리가 자동차로 약속 장소까지 데려다주고, 다 끝났다고 연락이 오면 다시 데리러 가곤 했다.
마을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시간 맞추기가 힘들고 또 드문드문 오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는 것은 여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출근길에 보면, 마을 앞 큰 길가에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할머니들이 있다. 땅에 닿을 듯이 오도마니 쭈그려 앉아 있는 할머니들을 지나칠 때면 미안한 마음도 드는데, 나도 그 경지까지 와야 완전한 시골사람이 되나 싶다. 시골에 와서도 도시인처럼 살려고 하니 불편하다, 불편하다 하는 모양이다.
가장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쓰레기였다. 쓰레기 처리가 가장 편리한 곳은 아파트였다는 것을 실감했다. 쓰레기를 내놓을 데가 없어서, 또 군청에, 면사무소에 전화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시골에 들어왔으면 시골사람처럼 살면 되는데 자꾸 도시 방식을 고집하려고 했나 싶다. ) 시골 사람도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데 버릴 데가 없다고. 분리수거함을 만들어달라고. 면사무소 답변은 수요일마다 청소차가 가니, 마을 입구에 있는 교회 앞 공터에 내놓으란다. 분리수거함은 예산과 관리 문제도 있고 해서 만들기 힘들단다. 우리는 수요일에 맞춰서 종이와 비닐, 박스 같은 것을 전봇대 앞에 놓아두곤 했다. 여기 사는 시골사람들은 여태 쓰레기를 어떻게 해결하고 사나? 주로 땅에 묻고 비닐은 태우고 하는 모양이다. (나중에는 쓰레기를 내놓던 자리에 CCTV와 경고장이 붙고, 마을 이장과 언쟁이 있고 해서 우리 집 바로 앞으로 배출장소를 바꿔야 했다. 누구든 자기 집 앞이 쓰레기장이 되는 건 싫으니까 일어난 일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는 비싼 음식물처리기를 사서 잘 쓰고 있다. 시골에 살려면 꼭 있어야 할 것이 이 음식물 처리기. 적당히 잘게 잘라서 넣어주면 된다. 음식물 처리기가 소화하지 못하는 생선뼈 같은 것은 고양이 몫이다. 우리 집에 들이지 않았는데 저절로 한 식구가 되는 것이 고양이이다. 들고양이, 일명 도둑고양이는 생선 냄새를 어찌나 잘 맡고 정말 도둑처럼 딱 나타나던지.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자꾸 맞닥드리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곤 한다. 한참 안 오면 어디 가서 죽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어떤 고양이는 마당에 나가면 쫓아다니는 놈도 있다. 쓰다듬어 달라고 몸을 기대기도 하고, 창문 앞에 딱 붙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도 한다. 한 번은 열어놓은 현관문을 넘어와서 거실까지 들어온 적도 있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