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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Jan 19. 2021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노교사  섬 적응기

1.    


 내 나이는 지금 58. 현직 국어교사, 경력 30년이 다 되어간다.

 어떤 이는 이제 힘도 부치고 아이들도 예전같지 않다며 명예퇴직을 하기도 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에 적응하지 못한 50대들이 대거 명퇴를 신청할지도 모른다. 나도 4월까지는 ‘줌’ 수업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장비를 다 갖춰주고 방법을 배웠어도 막상 처음 시작할 때는 화면을 어떻게 켤지 몰라 버벅댔고, 아이들 얼굴이 보이지 않거나, 글씨가 내 맘대로 써지질 않아 답답했다. 6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라 5월에는 등교할 수 있어서 그 어려움이 사라지긴 했지만, 도처에 새로 적응해야하는 것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예를 들면 기계끼리 통하는 블루투스의 세계도 그렇고, 화상회의하는 모임도 그렇고, 무슨 주소방에서 복사해서 넣는 일, 무엇을 다운받아서 실행해야 하는 프로그램, 그런 것들 앞에서는  두려움이 일면서 얼굴에 열이 확확 올라오는 것이다)


 아직도 규모가 큰 학교들은 온라인 수업을 한다는데, 교재를 만들기가 만만치 않을 듯하다. 대체로 나이 든 선생들은 기존 커뮤니티에 올라있는 영상을 올리고 과제를 내주지만, 의욕이 넘치는 젊은 선생들은 영상을 직접 촬영해서 올린다. 온라인 수업을 위한 교사 동아리도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미리 고개를 쳐든다.     

 여기는 신안의 한 작은 학교. 다리가 놓여 있어서 배를 타지는 않지만, 집에서 한 시간을 차로 달려야 도착할 수 있다. 목포를 지나 현경면에 접어들면서부터는 2차선 도로라서, 양파를 가득 실은 트럭이나 화물차가 가고 있으면 한참 동안 추월도 못하고 따라가야 한다. 출퇴근이 힘들어서 학교의 관사에 짐을 풀고 살기 시작했다. 원룸에서 때아닌 홀로 살기를 하고 있다. 나이 들어서 혼자 산다는 일이 자유롭고 편하긴 하지만, 왠지 헛헛하게 다가서는 쓸쓸함이나 고적함이 있다.

신안군 증도면 짱뚱어다리 앞

 면소재지이긴 하지만 면사무소, 농협과 하나로마트, 보건소, 우체국이 주요 건물의 전체이다. 하나 있는 작은 카페는 문을 열었는지 닫았는지 분명하지 않을 때가 많고 그 건물 맞은편의 ‘작은 도서관’은 폐관되었다. 몇 개의 식당이 있는 골목이 이 소재지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그래도 뭔가를 해결해야 할 때는 그 한가한 골목으로 간다. 오가는 사람들도 몇 안되고 골목 어귀의 밭에서는 마늘과 양파가 자라고 있다.     

                      

 오늘은 학교에 거름 냄새가 진동한다. 이것이 무슨 냄새인가 했더니 운동장 너머에 거름을 뿌린 거라 한다. 한창 장마철이라 공기가 습한지 냄새는 얼른 빠져나가지 못하고 낮게 깔리고만 있다. 전교생이 열 명 남짓인데, 운동장은 턱없이 크다. 숫자가 적으니 강당에서 거의 모든 체육활동을 한다. 탁구나 배드민턴이나 줄넘기 등등. 팀을 만들어야 하는 구기 종목은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 학교에 와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노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축구가 하고 싶은 덩치 큰 한 남학생은 마을 어른들과 함께하는 배구동아리에 끼여서 밤늦게까지 경기를 하고 집에 간다)


 아이들 대신 꿩 한두 마리가 운동장을 거닐곤 한다. 수꿩 한 마리가 조심조심 발을 내딛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꿩이 꼭 눈밭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발자국이 찍히지 않는 눈밭. 그것이 작은 학교처럼 고요해 보여서였을까...평화롭고 요란하지 않는 고요를 꿩 한 마리가 조심조심 걷고 있는 듯했다.

 1층 현관에서 ‘이게 뭐지?’ 하면서 마른 쥐똥도 치워보고, 화장실에 죽어있는 다리 많은 벌레를 쓰레기통에 담기도 하고, 덫에 걸린 생쥐를 치웠다는 동료교사의 말에 놀래면서 하루하루 적응해간다.  

 떠나왔던 소도시의 가게와 그 거리의 생동감이 자꾸 생각나고, 시끌벅적한 소란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 가만히 달력을 넘겨보니 이곳에 온 지 세 달이 넘었을 때였다.  


 “내일이 금요일인데 오늘 나오려고?”

 “으응, 좀 답답해서”

 남편과 주고받은 문자이다. 한 주에 한 번씩 금요일이 되면 집에 가는데, 목요일 저녁에도 집에 가겠다고 하니까 도착한 문자이다. 남편을 보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지금 이곳이 좀 답답해서였다.


 왜 고요는 답답하다고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바쁘면 바쁘다고 툴툴대지만, 사실 우리는 늘 바쁜 것을 열망하는지 모른다. 바쁘면 뭔가 살아 있는 것 같고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 한가하면 불안하고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정신 없이 일을 하고 있을 때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는다.

 정말 그럴까. 섬에 들어와서 새삼 복잡하고 시끄럽고 부산한 일상을 그리워하면서, 고요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시 한편씩 외우기를 과제로 내주었다.

“ 얘들아, 내 머리가 좋겠냐, 너희들 머리가 좋겠냐?”

“ 그야 샘이죠”

“ 왜?”

“ 샘은 경험도 많으시고, 또 많이 사셨으니까 지혜도 많으시고 그러시잖아요.”


 아이들은 정말 맑고 순진하다. 많이 살아본 내가 더 나을거라는 말에 꼬박꼬박 ‘시’까지 붙여서 말한다. 하긴 저희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고 어쩌면 할머니뻘에 가까운 사람이니 그렇게 볼 만도 하다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건성으로 대답한 그 말이 어쩌면 내가 앞으로 살아내야 할 길이 될런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경험과 지혜를 버리지 않고 잘 쓰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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