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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Jan 19. 2021

회화나무 한 그루가 붙들다

-노교사 섬 적응기 2


 1.

 긴 장마와 태풍이 지나고 오랜만에 하늘이 맑아졌다, 가을이다. 습하지 않은 공기가 얼마 만에 찾아온 것인가. 수업이 없는 빈 시간에 건물 주변을 뱅뱅 돌았다. 맛있는 음식을 놓고 흡족해하는 것처럼 좋은 날씨 때문에 오늘 오전은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다.

 파란 하늘이 너무 이뻐서 사진을 찍었다. 하늘 한가운데 푹 빠져 있는 회화나무이다. 회화나무는 느티나무 같은 모양이지만 이파리가 좀 더 가늘고 듬성듬성하다. 그래서인지 느티는 병이 덜 드는지 모른다. 어떤 느티는 봄만 되면 앞에 종기 같은 것이 엄청 많아 돋아 있곤 하는데 말이다.

회화나무

  - 길을 달리다가, 어디로 가려하기보다 그저 길을 따라 자동차로 달리다가, 낯선 산자락 마을 어귀에 멈춰 섰다. 그 순간, 내가 달려온 길들이 거꾸로 돌아가려 하자 늙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그 길을 붙들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한 백 년 정도는 그랬을까. 마을 초입의 회화나무는 언제나 제자리에서 오가는 길들을 끌어안고 있었는지 모른다. 세월 따라 사람들은 이 마을을 떠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했으며, 나처럼 뜬금없이 머뭇거리기도 했으련만, 두껍기 그지없는 회화나무 그늘.

그 그늘에 깃들어 바라보면 여름에서 겨울로 건너가며 펄럭이는 바람의 옷자락. 갈 곳 잃은 마음은 그 위에 실릴 뿐. 눈앞이 자꾸만 흐리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할는지. 이름 모를 새들은 뭐라고 채근하듯 지저귀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여태 먼 길을 떠돌았으나 내가 걷거나 달려온 길들이 길 밖으로 쓰러져 뒹군다. 다시 가야 할 길도 저 회화나무가 품고 있는지, 이내 놓아줄 건지, 하늘을 끌어당기며 허공 향해 묵묵부답 서 있는 그 그늘 아래 내 몸도 마음도 붙잡혀 있다.

                 < 회화나무 그늘/ 이태수>     

 우연히 책장을 살피다 보니, ‘회화나무 그늘’이란 시집 제목이 눈에 띄었다. 펼쳐보니 참 좋다. 이 사람도 어디를 가야 할지 몰랐구나. 그래서 잠시 회화나무 그늘에 붙잡혀 있는 거구나. ‘여름에서 겨울로 건너가며 펄럭이는 바람의 옷자락’에 갈 곳 잃은 마음이 실린다는 구절도 참 좋다.

 내가 아까 본 것은 여름 끝난 자리에서 하늘에 푹 빠져 있는 회화나무의 선선한 표정.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나에게는 마치 이정표처럼, 아니 그냥 이렇게 푹 빠져 있는 것도 괜찮다고 보여주고 있는 쉼표 같이 서 있었다. 오늘은 회화나무 시를 베끼며, 푸른 하늘에 빠져 있는 회화나무를 바라보며 하루를 잘 견딜 수 있을 듯하다.           

2.     


 어떤 아이가 자꾸 마음속에서 걸린다. 어느 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온 아이.

 “염색했어?”

 “염색 아닌데요... 탈색된 건데요.”

 저의 머리는 햇빛에 약해서 햇빛 때문에 탈색된 거라고 끝끝내 주장하는 아이. 아무렴 까만 머리가 저렇게까지 탈색이 될까. 여기가 무슨 사막지대도 아닌데 말이다. 자기 머리카락을 두고 스스로 하는 말이니 그런가 보다 표정으로만 인정해주었다. 머리카락이 노래서 그런지, 그렇게 하고 온 다음부터 영 행동이 맘에 들지 않는다. 수업 중에도 내내 삐딱하게 앉아 있다. 허리를 바르게 펴고 자세를 좋게 하라고 했더니, 허리가 아파서 그런단다.

 이곳 천사섬에는 말 그대로 천사들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서 천사 중에서 좀 노란 천사가 있구나 싶다. 더 이상 뭐라 하면 그 아이가 튕겨져 나갈까 봐, 형편을 들어주는 척, 이해해주는 척, 시늉만 냈다.

 엄마와 둘이 사는데, 엄마가 늦게 들어오시니까 혼자서 밥을 차려 먹는다고 했다. 자주 엎어질라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잠을 잘 못 자서 그런단다. 어린아이가 잠을 못 잔다고? 아이는 그냥 이유 없이 잠이 안 온다고 했다. 게임을 늦게까지 해서도 아니란다. 자려고 누우면 서너 시간이 지나야 겨우 잠이 든 듯 만 듯하다 깨어난단다. 그렇게 해서 어찌 살까 싶다. 이유 없이 불면증이 올 리가 있겠는가. 불면이라 하면 나도 잘 아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 이유를 막연히 짐작은 해보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오늘 아침엔 도서실 문을 열고 들어와 전등을 켜려 하는데, 머리카락 노란 그 아이가 책장 사이에 있었다.

 “ 아이고, 깜짝이야, 뭐 하고 있어? 아침에 빨리 왔네?”

 “ 예, 그냥 책을 보고 싶어서요”

 “ 불이라도 켜고 있지 그랬어”

 “ 아니요, 어둠이 좋아요”

 어둠이 좋아서 불도 안 켜고 아침부터 도서실에 와서 책을 본다? 이렇게 컴컴한데? 더 이상 묻지 않고 가만히 놓아둔다. 아이는 시작종이 치니,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간다.

 어린아이가 어둠이 좋다니... 나는 아이가 숨어들고 싶었을 어둠을 그냥 몰아내버렸구나. 내가 품어주지는 못하고 어둠을 쫓아내고는 내 할 일만 챙겼구나. 그저 그 아이가 어둠 속에서 광맥을 찾기를 바래본다. 그것이 어찌해줄 수 없는 무력한 선생의 합리화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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