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향기 Mar 21. 2021

제 지우개를 돌려주세요

-노교사 섬 적응기 3

3월이다. 춥다. 봄이 어디서 오고 있지만 아직 코 앞까지는 당도하지 않아서 쌀쌀하고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3월의 학교는 더욱 그렇다. 봄이 와도 구석구석 따뜻해지기까지 참 오래 걸린다. 낡은 건물의 긴 복도, 다른 건물로 이어지는 층계참,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특별실은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오랫동안 남아있다. 

 교실을 정하고 자리를 바꾸고 얼굴을 익히고 각자 할 일을 정하고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학교의 온갖 규정과 규칙을 정하는데 3월이 다 지나간다. 그동안 학교는 봄이 와도 봄이 아직 아닌 듯, 서먹하고 추울 때가 많다.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학교를 옮긴 선생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오래 근무했던 소도시를 떠나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학교를 옮겼었다. 다리가 놓아져 있긴 하지만 자동차로 1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오지였다. 도서벽지지역 수당이 3만 원 더 있는 곳, 전교생이 9명인 곳. 거기서 1년을 살았다. 주변 경치는 좋았고 아이들은 섬 이름처럼 천사였다. 한 학년에 두 명, 세 명, 네 명이라서 각기 외따로 떨어진 섬처럼 아이들은 평화로웠고 착하고 조용했다. 그게 너무 좋아서 너무 평화로워서, 일상이 너무 잔잔해서, 자꾸 다른 것이 꿈틀댔다. 

 -내가 너무 정체되어 있는 건 아닐까?

- 수업을 해도 재미가 없어.

- 뭔가 신나지가 않아, 역동적인 게 필요해.


 그래서 1년 만에 학교를 옮겼다. 내 나이 59. 어딜 가도 환영받질 못하리란 나이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지만 용감히 자리를 옮겼다.  옮긴 학교, 지금 학교는 육지와 조금 가까워진 중학교이다. 전교생은 60명. 코로나 상황이지만 작은 학교라서 매일 등교하는 읍내의 작은 학교. 



 두세 명만 보다가, 스무 명이 교실에 앉아 있으니 먼저 숨이 탁 막혀왔다. 서른 명 이상을 가르칠 때가 고작 두 해전인데, 스무 명이 앉아 있다고 교실에 아이들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인간은 상대적 감정에 휘말리는 존재이다. 거리두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짝으로 앉지 않고 각자 떨어져 앉아 있다.  

 발령을 받고 거의 한 달 가까이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하는가'로 고민했다. 우선 자리부터 '디귿 자' 모형으로 바꾸었다. 디귿자 안에 서서 수업을 하면 내 목소리도 잘 전달되고 아이들이 하는 것이 한눈에 훤히 보이면서 아이들도 서로 마주 보며 수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리를 디귿자로 만들자는 나의 말에 아이들은 조금 귀찮아하는 것 같았지만 호기심도 있는 듯 잘 따라주었다. 

 아이들은 선생이 바뀌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렇게 큰 놀라움이나 환대는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저 사람은 어떤 선생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눈, 그런 눈빛이었다. 아이들이 환대가 아닌 고작 의구심 정도의 관심을 보여주는 것에 그렇게 서운하지는 않다. 

나는 이제 아이들이 환호 작약할  그런 나이가 아니니까. 


 아이들은 젊고 예쁜 선생을 좋아한다. 젊고 멋있는 남자 선생은 정말 연예인처럼 좋아한다. 복도에서 선생님~~을 외쳐 부르고, 교무실까지 쫓아와서 묻고 웃고 까불곤 한다. (요즈음 새로 임용되어서 오는 신규 선생들은 어찌 그리 모두 멋있고 예쁜지... 면접관이 외모를 많이 보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젊은 사람들이 무조건 이뻐 보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나도 한때는 그런 때가 있었다고 위로하면서 지금의 대우를 당연히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조금 씁쓸해지는 건 막을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내가 젊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도 한 구석에 있다. 


" 선생님, 제꺼 지우개 주세요"

"뭐? 지우개? 그걸 왜 나한테 주라는 거야?"

" 선생님이 가져가셨잖아요" ( 아이들의 말꼬리가 '~잖아요' 일 때는 뭔가 경계를 해야 한다. )

" 내가 언제? 난 지우개를 쓴 적이 없는데?"

"선생님이 저번 시간에 제거 지우개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았어요"

"뭐라고??"

한참을 아이와 옥신각신 하던 끝에 내가 앞 시간에 지우개를 압수했음이 밝혀졌다. 디귿자의 한쪽 끝에서 반대쪽 디귿자의 끝자리까지 지우개를 주고 받고 하길래 빼앗아서 교탁 속에 넣어두었던 것.  


" 너가 지우개를 발로 멀리 밀었잖아!" (나도 '~잖아'가 튀어나왔다)

" 발로 한 거 아니거든요? 친구가 빌려달래서 손으로 밀어준 거 거든요?"

 

나는 그것을 발로 밀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손으로 했다고 박박 우긴다. 발이건 손이건 두세 번 왕복하는 것이 거슬려서 압수했던 것이었다. 교탁에 넣어두었던 지우개는 없어졌고 아이는 그 지우개를 돌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교탁에 넣는 걸 보지 못했기 때문에 되가져가지 못했단다.  

 " 그게 어떤 지우개인지 아세요?"

 " 어떤 건데? "

 " 제가 2주 동안 점수 따서 선물로 받은 거란 말이에요"

 " 아, 그렇구나! 미처 몰랐네. 난 너가 지우개 찾아갈 줄 알았지...  소중한 지우개였구나!!" (이럴 땐 '~ 그랬구나"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잖아요'의 분노가 가라앉는다)


 " 그렇게 소중한 건지 몰랐네... 미안하다. 선생님이 대신 지우개 하나 주까?"

 " 아니 됐어요."


 아, 나는 천사 같은 오지의 아이들은 팽개치고 이 시끌벅적한 학교에 왜 온 건가? 한숨이 나왔다. 1년 동안 천사들과 지내왔던 터라 방심하고 있었나 보다. 아이들은 언제든지 선생을 공격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특히 한창 전두엽이 발달하고 있는 사춘기 중학교 2학년들은 상대방이 늘 공격의 대상일 수 있음을 놓쳤었다. 아이들에게 그 틈을 내어주지 않고 용의주도하게 감정을 늘 살펴야 하는데 말이다.  

  

다음 시간에 보니, 그 아이는 적으라는 것을 빠른 속도로 필기를 한다.

" 윤철아, 글씨를 알아볼 수 없어. 좀 좋게 써봐. 빨리 쓰려고만 하지 말고."

" 아니요, 저는 이게 좋아요, 뭐든 빨리 해야 좋거든요"


 자기주장이 참 강한 아이란 걸 느끼게 되었다. 그럴 땐 그 아이를 무조건 긍정해주고 다음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체득했다.

 " 윤철아, 지우개 안 줘도 돼?"

 " 에이, 괜찮아요"


 윤철이란 아이는 소위 나를 간본 건지도 모른다.(간을 본다는 건 아이들이 새로 온 선생이 어떤 사람인가 시험한다는 의미...) 내가 그 순간 '너가 수업을 방해했잖아'라고 '~잖아'성 말을 계속 해댔으면 아마 큰 소동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면 아이도 물론 힘들었겠지만 더 힘든 건 아마 나였을 것이다. 


 지우개의 작은 소란을  새 학교의 전입 신고식 쯤으로 여긴다. 오지의 천사들을 상대하다가 방심하고 있던 안이한 나의 태도를 따끔하게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젊지도 이쁘지도 않은 늙은 선생이 열네 살 아이와 바득바득 싸우고 있는 모습이란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하고 흉할 것인가...  아, 최대한 너그럽게 최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서, 있는 힘을 다하되, 그러나 천천히 여유롭게 쓸 것! 3월이 채 지나지 않은 새 학기에 스스로 당부하는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회화나무 한 그루가 붙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