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이 싸웠다

- 시골살이 7

by 푸른향기

참 많이도 싸웠다. 이사 오면서 이 집에서만은 싸우지 말자고 약속했다. 물론 나 스스로 감개무량해서 내뱉은 말이지만. 이 집이 우리에게는 마치 유토피아나 되는 것처럼, 아늑한 종착지가 되는 것처럼, 이런 곳에서 싸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될 거 같았다. 무엇보다 꿈을 실현하듯 장만한 이 집에서는 말다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 그동안 우리는 한 달 걸러 싸웠다. 아주 사소한 것으로. 예를 들어 행주로 바닥을 닦아서, 가스밸브를 잠그지 않아서, 뜨거운 냄비 뚜껑을 엎은 채로 이동해서, 설거지를 바로 하지 않아서, 빨래를 색깔 구분하지 않고 한꺼번에 해서, 옷을 아무 데나 척척 걸어놓아서, 휴지를 둘둘둘 함부로 써서, 변기 물을 모았다가 버려서,... 끄덕하면 소리가 높아지고 곧 싸움이 되었다. 한 번의 언쟁은 일주일의 침묵으로 이어졌고, 우리는 각자의 감옥에 갇혀서 서로의 잘못을 셈하고, 지칠 때쯤에야 나의 잘못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침묵의 자물통을 삐긋이 열곤 했다. 열렬히 사랑했던 거만큼 싸움도 치열했다고 해야 할까. )




햇빛 때문이었다. 내 간절한 소망은 햇빛 잘 드는 남쪽에 큰 창을 내고 집안 가득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사는 것. 그런데 쉬울 거 같은 그 소망이 한 번도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대학생 시절 남향 자취방은 언감생심이었고, 첫 직장을 얻어서 좀 괜찮은 방을 구할 때도 석양에 홀랑 넘어가서 서향집을 선택하고 말았다. 결혼해서 살게 된 집도 남향은 딱 한번밖에 없었는데, 그 집은 남향이라고 해야 앞 건물이 전망을 다 막은 거였다.


그렇게도 남향집을 원했지만, 우리가 지은 집은 동향이 되고 말았다. 건물을 터에 앉힐 때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되었지만, 남쪽은 남의 집을 바라보는 방향이어서 산을 뒤로하고 정면을 바라보이게 하려면 동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살짝 남쪽을 향한 동쪽이라 아침 10시까지는 햇빛이 들어오고, 11시가 넘으면 햇빛이 문턱에 걸터앉는다. 겨울철이면 햇빛이 좀 더 길어진다. 나는 지금도 햇빛이 거실로 들어와서 흙벽이 은은하게 환해지는 순간이 참 좋다. 환하고 따스한 햇빛이 좀 더 오래, 좀 더 길게 머물렀으면 좋겠다.


거실 앞은 마루. 디귿자 모양의 구조에 가운데에 마루를 들인 것인데, 집과 마당이 연결되게 하려는 설계자의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공간이다. 그 마루의 천장이 문제였다. 마루 천장을 투명하게 할 것이냐, 일반 지붕처럼 막아버릴 것이냐의 문제를 두고 공사 마무리 때까지 고민했다. 결국 우리는 집이 어두울 수 있으니, 투명하게 하는 것을 선택했는데, 이것이 싸움의 화근이 되고 말았다.


- 막아버리면 집이 너무 어둡잖아

- 그래도 막아야겠어, 여름이면 머리가 뜨근뜨근해. 서 있기가 힘들어.

- 뭐, 그런다고 서 있기가 힘들어? 그냥 얼른 마당으로 내려서면 되지?


남편은 더위를 죽어도 못 참고, 나는 추위를 죽어도 못 참는다. 우리는 서로 자기주장만 한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만 한다, 남의 생각을 들으려고 하지를 않는다, 왜 내 생각을 무시하냐, 더운 거 쫌만 참으면 안 되냐, 막아도 햇빛이 들어오기는 한다, 고집이 세다,... 이러면서 언성을 높여서 싸웠다. 그러나 그 이듬해에는 천장이 스티로폴로 막아졌고, 또 결국은 나무 합판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나의 끈질긴 항의? 끝에 한쪽만은 투명으로 남아있다. 물론 그것도 이제는 먼지가 끼고 해서 투명하지도 않고 뿌옇지만.


그래서 햇빛은 어떻게 되었냐고? 겨울에는 해가 낮게 뜨니 햇빛이 꽤 오래 들어오기는 하지만, 가을까지는 좀 아쉽다. 옛날보다는 확실히 좀 덜 들어오고 밝기가 달라졌으니까. 그래도 적응하고 산다.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들어오는 햇빛에 만족하면서.

KakaoTalk_20210212_092138236.jpg
KakaoTalk_20210212_092138236_01.jpg
말썽 많았던 마루 천장

집을 짓고 나면 서운한 게 참 많다. 특히 우리는 오래 생각해보지 않고 덜렁 지어버렸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단독주택의 가장 큰 맹점은 겨울에 춥다는 것. 우리도 추위를 겁내서 창을 최소치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살면서 아쉬움이 새록새록 드는 것이었다. 아, 이쯤 해서 창을 하나 더 내었으면 집안이 좀 더 환했을 텐데. 창을 여기는 좀 작게 하고, 이쪽은 좀 크게 했어야 했는데, 방 하나는 구들로 만들었어도 됐는데... 등등.


아쉬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쉽게 거두지 못하는 햇빛 욕심 때문에 작은 구들방을 나중에 다시 샀다. 이동식 구들방을 큰 맘먹고 산 거였는데, 오랜 꿈처럼 남쪽에 창을 낼 수 있었다. 한겨울, 뜨끈 뜨근한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남쪽으로 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행복이란 게 뭐 별 거겠냐... 이렇게 뜨근하게 배 깔고 고구마나 먹으면서 음악 듣고 풍경을 볼 수 있으면 됐지...


물론 고구마의 행복을 느끼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구들방을 살 때도 나는 이왕 살 거면 돈을 좀 더 들여서 괜찮게 해야 한다고 우겼고, 남편은 심플한 게 좋다면서 헛돈 쓰는 것처럼 싫어했으니까.


의견 맞추기란 참 힘든 거다. 각자의 희망사항이 있을 때 더 그렇다.


<계 속>

이전 08화지네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