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징그러웠으면 지네일까. 맨 처음 그것을 알았을 때는 내 나이 스물여섯 쯤. 첫 근무지는 항구의 어느 소도시였다. 자취방을 구하러 다닐 때는 마침 해가 막 넘어갈 때였다.
높지막한 언덕배기의 단독주택. 그 집의 방 하나와 부엌. 부엌 창 너머로 저녁 해가 벌겋게 넘어가고 있었다. 바라보이는 산은 붉은 기운으로 은은했고, 산 능선 바로 위로는 노을이 짙게 내려앉고 있었다. 아, 여기라면 괜찮겠다 싶었다. 퇴근 후에 부엌문에 걸터앉아서 석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루의 수고가 다 녹아날 것 같았다. 단박에 계약을 했고, 그럭저럭 잘 살았다. 연탄불을 붙이기 위해 번개탄을 허공 높이 치켜들고 연기를 마음껏 내보낼 수 있었고, 다 타버린 연탄재를 담 너머로 훌쩍 버릴 수도 있었다. 담 너머가 바로 공터였기 때문이었다. 한 칸 방은 산 바로 아래였다.
가을이었나? 부엌문을 열자 뭔가 휘리릭 지나갔다. 뭐지? 고개를 돌리니 다시 연탄통 뒤로 휘리릭 들어간다.
아, 나는 그런 걸 처음 보았다. 그렇게 소름 끼치게 징그러운 벌레를. 그 적갈색으로 번들거리는 껍질과 똑똑하니 붙어있는 수많은 짧은 발을. 그리고 번개가 지나가듯 순식간에 휘어지는 긴 몸통을.
쫓기듯 방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그날 저녁은 밥도 못해먹고 씻지도 못하고 방에 갇혀있었다. 징그러운 그것이 나올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한낱 벌레 때문에 저녁과 아침까지 꼬박 굶고 부스스하게 출근했다.
" 그거? 지네구만, 지네. 약국에 가면 약 있어요. 죽이는 거"
" 어이, 그러지 말고 병에 담아. 그거 모아서 파는 사람도 있어. 허리에 좋다고."
나는 고것이 지네라는 처음 알았고, 무슨 사람들 가족처럼 '-네'가 붙는 것도 생소했다. 당장 퇴근길에 하얀 가루를 사서 부엌에 무차별하게 뿌려댔다. 연탄통 뒤로 뿌려대니, 뽀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고것이 아직도 안 나가고 버르적거리고 있었던 거다. 한 통을 다 붓고, 거기 위에다 락스까지, 모기약 바퀴벌레 약까지 마구마구 뿌려댔다. 결국 지네는 연탄구멍 위로 기어 나와서 뻣뻣해지더니 연탄통 바닥에 떨어졌다. 다행이었다. 연탄통 아래로 떨어졌으니, 그것을 주워 올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나는 그 연탄통을 통째로 담너머로 던졌다.
'지네는 가을에 자주 출몰하고 흙과 습기를 좋아한다, 지네는 부부 금실이 좋아서 꼭 쌍으로 다닌다. ' 이것은 나중에 알게 된 지네 지식이었다. 스물여섯 때 만난 지네도 이틀 후, 화장실에서 또 한 마리 발견되었다!
지네는 결코 스물여섯 살의 추억거리가 아니었다. 이제는 현실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스물여섯 살 때의 그것이 '어? 이게 뭐지? '하는 놀람과 충격이었다면, 지금 그것은 '앗, 또 '가 터져 나오는 '여기는 시골'이라는 확인성 물체였다.
- 시골에 살려면 이런 벌레 하나쯤은 넉넉하게 손으로 잡아서 내던질 줄 알아야 한다.
- 손으로 잡아내는 경지까지는 못 가더라도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기겁할 일은 아니다.
- 그냥 벌레와 함께 산다고 생각해야 한다.
- 나는 얼마나 모양이 이쁜 줄 아느냐, 인간인 내 마음속이 더 시커멓고 징글징글하다
이런 잠언을 만들어가며 속으로 되뇌고 있어도, 막상 지네와 맞닥뜨리고 나면 온 정나미가 다 떨어지는 것이었다. 아이고, 내가 왜 이런 시골 구석에 들어와서 저런 것을 보면서 살아야 하나? 그래도 도시가 더 낫구나, 아파트는 이런 지네는 없는데, 내년엔 다시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하나?...
지네는 축축한 여름과 가을 사이에 더 극성인 듯싶었다. 특히 집 뒤쪽으로 다 쓰러져가는 폐가가 있고, 흙담이 있어서 지네 환경으로는 최적인 듯했다. 나는 봄만 되면 지네 퇴치약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건물 가장자리로 가득가득 뿌려야 했다. 문틈으로는 백반 가루를 얹어 놓고, 집의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미세한 방충망으로 덧대놓았다. 목욕탕의 물구멍, 다용도실의 물구멍, 그리고 천장의 환풍기 통로까지, 모두 다. 그런데 어떻게 그 지네란 놈은 어디 틈에서 또 나오는지 늦은 봄만 되면 한 놈씩 꼭 출몰하는 것이었다.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고, 틈이란 틈은 다 막았는데 어디서 들어오냔 말이다. 정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썩은 나무 밑에서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실에서 방에서, 목욕탕에서, 다용도실에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했다. 어떤 날은 안방 천장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창 밖을 보고 있던 바로 발 밑에 있기까지 했다. 내가 지네 몸을 밟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나는 해골바가지의 물을 먹고 득도한 원효가 아니었으므로, 한낱 지네 한 마리에 호들갑을 떨곤 했다. 지네가 나왔다고 내가 괴성을 지르면 남편이 빗자루를 들고 쫓아온다. 내가 사방에 구비해 놓은 독한 바퀴벌레 약을 뿌려대면, 남편은 놔두라고 고함을 질러대며 빗자루로 후려쳐서 잡는다. 남편은 왜 지네한테 약을 뿌리지 못하게 하는 걸까. 약 냄새가 독해서인가, 아니면 지네가 약을 먹고 죽어가는 것이 불쌍해서 그런가.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는 지네 잡는 것이 더 급하니까. 그리고 지네를 퇴치하고 나면 다시는 지네 얘기를 꺼내기 싫으니까 물어보지도 않았다. 지네 얘기를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아도, 지네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에서 계속되고, 그 잔상이 계속 남아있다.
지 네
어둡고 습한 곳에 산다 했다
풍문으로만 들었다
과연 어느 날 썩은 나무를 뒤집었을 때
축축한 흙바닥에서 그
가늘고, 길고, 휘어지며, 재빠른 몸을 발견했다
시커멓게 웅숭거리는
등 돌린 시간의 구석진 자리였다
어두운 살이 오른
천형 같은 짧고 긴 다리는
은밀히 계산된 얄팍한
그의 틈
돌담의 담쟁이를 걷어내고
실리콘으로 미세한 틈 막는다
스멀스멀 몸에 피어나는 검은 기운
내 혈관 속 외진 곳 있어
음울한 촉수
거뭇거뭇 도사리는가
나는 그같이 절망스러운 몸짓을 본 적이 없다
어떤 이는 애완용으로 키운다지만
그것은 색깔이 조금 갈색이라는
네이버 소식일 뿐
눈 앞에 불쑥 나타난 몸
가장 내밀한 모습에 소스라친다
< 시집 '옆' 중에서>
지네는 정말 그렇게도 징그러운가? 사실 지네 얘기를 계속하고 지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내 삶을 자꾸 생각하는 것과 비슷해서인지도 모른다.
뭔가 상징이 있다. 지네란 것에는. 우리가 차마 보기 싫어하는 것, 그러나 보이지 않는 어느 틈에는 꼭 살고 있는 것, 틈을 방심하는 사이 어김없이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지네 스스로는 그렇게 징그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징그럽다고 보는 것은 깨끗한 생명체라는 것...
지네 입장에서 보면 내가 또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더럽고 추잡한 일은 인간들이 저지르면서, 더럽고 흉한 생각은 인간들이 다 하고 있으면서... 깨끗한 몸, 지네를 보고 기겁을 하다니.
사실 나는 이 시골에서 편견이라는 것과 맞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징그럽다고 생각했던 것을 자꾸 대면하게 되면서 그 징그러움이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각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한 장소에서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따라붙는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까지 다 받아들여야 진정 선택하는 것이 된다.
시골에 살려면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하는 벌레들. 그것을 밀어내려면 시골을 떠나야 한다. 밤하늘의 별빛만 아름답고 지네의 징그러움은 싫다면, 등 뒤를 보지 않고 앞면만 보는 것과 같다. 등 뒤와 앞은 한 몸이니까. 밤하늘의 별빛은 지네가 있어 뜨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꽤 철학적인 생각도 해보지만 내년에 또 지네가 출몰하면, 나는 또 기겁하며 괴성을 지르고 말텐데 어떡하지?어떡하긴. 그냥 사는 거지.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