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살이 9
J네는 집을 짓자마자 이사를 했다. J는 아파트에 살 때도 아파트 옆 공터를 밭으로 만들어 상추, 배추를 길러먹던 사람이니, 얼마나 빨리 들어오고 싶었겠는가. J는 어렸을 적부터 너른 땅에다 농사짓고 사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J네 땅은 우리 땅의 약 3배. 집 크기는 비슷하지만, 큰 연못도 있고 텃밭도 두 사람이 먹고살 건데 무엇하러 저렇게 크게 하나 싶을 정도로 크다. 우리 집에는 없는 닭장도 주차장도 따로 지었다. 마당도 넓어서 우리 집이 넉넉히 1시간이면 잔디를 깎을 수 있다면 그 집은 아마 3시간은 족히 걸릴 정도로 넓다.
처음 J가 강아지 두 마리를 분양받아 왔을 때, 태어난 지 두 달 되었다는 그놈들이 잔디밭 위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J네는 둘 다 부지런해서 잔디밭이 잡초 하나 안 보이게 깔끔하고도 탐스러웠는데, 그 도톰한 풀밭 위로 새끼 강아지 두 마리가 막대기를 입에 물고 뛰어다니는 모습은 내가 봐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J는 강아지를 자식처럼 이뻐했다. 물고 핥고 뽀뽀하고... 강아지의 이름은 '달래'와 '노을'이. 특히 달래를 더 이뻐한다. 달래는 하얗고 꼬리가 긴 반면, 노을이는 누렇고 좀 못생겼다.
어디 나갔다가 집에 들어올 때도 '달래야~~' 하고 들어오고 한참을 큰 소리로 달래와 얘기한다.
"엄마, 보고시퍼쪄?, 엄마 기다렸쪄? 어이구 쭈쭈~~"
달래는 주인 앞에 발랑 배를 뒤집고 다리를 흔든다. 그러면 배를 문질러 주면서,
"우리 달래 밥 먹으까? 엄마가 삼겹살 사 왔찌이"
우리도 자주 먹지 않는 고기를 J는 개를 위해서 산다.
나는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아마 어렸을 적 심하게 물렸던 기억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아니, 개뿐만이 아니라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강아지 엄마가 사람이냐고... 남편도 개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달래가 새끼를 낳으면 분양해주겠다고 하는 걸 거절했다. 동물 키우기는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다고.때 되면 밥 줘야지, 집을 오래 비울 수도 없지... 시끄럽게 짖어대기도 하지...
우리 집에 심심찮게 개똥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개똥은 마당 잔디밭 위에, 주차해 놓은 차 밑에, 집 출입구에 나타나곤 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별말 않고 똥을 치웠다. 내가 잘 모르고 똥을 밟았을 때도 운동화 밑을 일일이 나뭇가지로 긁어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내가 개똥을 밟은 채로 차에 올라타지 않았겠는가. 차에 진동하는 개똥 냄새! 남편은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남편은 집 앞에 놓인 개똥을 삽으로 푸더니 J네로 쫓아갔다. 언성을 높이면서 이것 보라고, 이거 당신네 똥이 아니냐고, 따졌다. J는 '우리 집 달래와 노을이는 이렇게 안 싼다'고 맞받아치고. 개싸움이 났다.
개똥이 자주 출현하니, 그동안 남편은 J에게 가서 개를 풀어놓지 말고 묶어두라고 여러 번 말해왔다. 그때마다 J는 난감해하면서 '달래'나 '노을'이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개를 키우고 있으니 그 말도 맞지 싶었다. 그런데 다른 집 개들은 모두 묶어서 키우는데 유독 달래와 노을이는 자유롭게 크고 있으니, 남편은 똥이 달래와 노을이의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었다.
옛날 농사철에 서로 물을 끌어올려고 물싸움을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가 이런 개싸움을 할 줄은 몰랐다. 땅을 같이 알아보고 집도 같이 지은 사이였다. 좁은 길이 가로놓여 있지만, 마당에 서 있으면 건너편으로 오가는 것이 훤히 내다보이는 가까운 이웃이다. 농사 지은 거 나눠먹고, 마을 이야기 두런두런 나누고 술도 같이 마시고, 형님 아우님 하며 지내왔는데, 그놈의 똥 때문에 싸움이라니. 가까운 이웃이 있어 참 든든하다 싶었는데.
개를 풀어놓지 말라는 것에 대해서 J네는 이렇게 말해 왔다.
- 내가 이렇게 살려고 시골에 들어왔는데, 개 한 마리 마음대로 못 키우게 하면 되겠냐고.
그런데 우리는 또 할 말이 있는 거다.
- 아무리 시골이어도 이웃을 불편하게 하면 되겠느냐고.
갈등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똥은 그 후에도 자주 발견되었다. 똥은 꼭 있던 자리에 있곤 했다. 개도 저의 영역이 있어서 비슷한 자리에 똥을 누나 싶었다. 다른 집 개일 수도 있으나, 우리는 달래와 노을이의 알리바이로 달래나 노을이의 똥이라고 짐작했다. J는 개를 묶어두기 시작했지만, 집에 있을 때는 예전처럼 풀어놓곤 했으니까.
J네는 담장을 쌓기 시작했다. 원래 허리께쯤 오는 담장을 개가 넘어서지 못하도록 높지막이 쌓는 거였다. 담 위로는 기와까지 얹고. 좀 미안했다. 저쪽도 무지 애를 쓰는구나 싶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갑자기 가해자가 되는 느낌도 들었다.
관계가 많이 서먹해졌지만, 그래도 지내오던 습관이 있어서 예전처럼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곤 했다. 그렇지만 분위기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우리도 J네도 개똥문제를 화끈하게 털어놓지 못했고, 서로의 서운함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서로의 서운함! 이웃이니 그런 것쯤 그냥 넘겨야 하지 않았냐, 이웃이니 그런 불편함을 안 주는 게 먼저 아니겠냐... 속으로 뭐 계산이 있는 거였다. 집 지을때 많이 조언해주고, 통 큰 J가 나무나 꽃을 많이 사서 한 두개씩 나눠주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J입장에서는 많이 서운했겠다 싶었다. 한편 우리는 준 것은 없어도 오랜 기대와 신뢰가 무너져버린 느낌이 들었던 거다. 차라리 잘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이런 무거운 기분은 들지 않았을텐데, 오히려 아는 사이가 이웃하기가 더 힘들다는 것을 생생히 체험한 꼴이었다.
( 우리가 미워하는 줄 알았는지, J네로 놀러 가면 달래가 유별나게 으르렁거리며 남편의 바지자락을 물어뜯곤 했다. )
그래도 해외여행이 잦은 J네는 집을 오래 비워두어야 할 때면 우리에게 개밥과 닭 모이를 부탁했고, 우리는 그럭저럭 부탁을 들어주었다. 두 집만 어울릴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다른 집과 어울리거나 모임으로 엮일 때가 있어 왕래가 아주 끊어지진 않았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