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은 죄가 없다

-시골살이 10

by 푸른향기
한 가지 사물을 놓고도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서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이 다 다르다. 옆집 닭울음소리만 해도 그렇다.


J네는 닭을 키웠다. 수탉 2마리와 암탉 일곱여덟 마리 정도. J는 강아지를 잔디밭에서 뛰어다니게 하는 것처럼, 닭들도 오후가 되면 잔디밭으로 풀어놓아 흙을 쪼아대며 벌레를 찾게 했다. 닭이 머리를 궁싯대며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는 것을 보면서 J는 행복해하는 거 같았다. 나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곤 했다.


닭은 수탉이 중심인 듯했다. 수탉 한 마리가 암탉 여러 마리를 상대한다. 일부다처제라 할까. 그것에 순종하는 듯 마당에 나온 암탉들은 수탉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또 수탉은 수탉대로 가장의 임무를 충실히 하느라 개가 덤빌라치면 앞장서서 물리친다. 그걸 보고 J는 닭이 사람보다 낫다고 평하기도 했다. 항상 수탉이 암컷을 보호하고 위험에 앞장선다는 것이다. 닭 볏 붉은 수탉이 윤기 나는 꼬리를 치켜들고 암탉 무리를 이끌고 잔디밭을 횡단하는 모습은 어쩌면 장병 행렬처럼 그 위용이 꽤 그럴싸했다.


유독 동물을 사랑하는 J는 닭장도 제법 폼나게 지었는데, 물 먹는 곳에는 여름에 그늘지라고 백일홍 나무를 심어주었고, 가운데는 직접 나무를 깎아 만든 횟대를, 또 철망 안쪽으로는 잠잘 수 있는 칸막이를 널찍하게 만들어 주었다. 닭장은 우리 집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수탉은 시간이 지날수록 덩치가 더 커지고 그만큼 울음도 장쾌해졌다. 똑같이 어린 병아리를 사 와서 기르기 시작해도 수탉의 크는 속도가 훨씬 빨라서 얼마 안 있다 벼슬이 검붉게 도드라지고 목도 길어지고 꽁지도 힘차게 올라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수탉은 왜 꼭 새벽에 우는 걸까. 시골의 정적을 제일 먼저 깨우는 놈이다. 개는 사람이 지나갈 때나, 낯선 사람을 볼 때 짖는데, 그리고 다른 동물들도 무엇인가 위협을 느낄 때나 배가 고플 때 울 거 같은데. 왜 닭은 아무 일 없는 새벽에 우는 걸까. 그것도 저 혼자서. 닭은 어둠 속에 있다가 밝아오는 아침이 낯설어서 그러는 걸까. 예수가 '새벽닭이 울기전에 베드로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했다고 하던데, 닭은 다가올 미래와 가장 가까운 동물일까. 어떤 유럽 건물은 닭 모형을 바람 풍향계 위에 올려놓는다고 한다. 멀리서 다가오는 바람의 방향을 제일 먼저 알아채는 동물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KakaoTalk_20210215_124034758.jpg 수탉은 암탉보다 이쁘다!


-꼬기요오요

수탉이 대여섯 번 포문을 열면, 암탉들이 중간중간에 꼬꼬고고 하면서 가래 섞인 추임새를 놓는다.

이육사의 시 '광야'에서 어디 먼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라는 구절이 생각날 만큼 수탉 울음은 하루를 시작하는 신선하고 장대한 소식 같기도 하다. 아마 J네가 더 그렇지 않았을까. 귀하고 이쁘게 키우고 있는 닭이 새벽 울음을 우는 것을 들을 때면 아, 오늘도 살아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으니...


남편은 소리에 예민하다. 저 놈의 닭 때문에 새벽에 잠을 깼다고 구시렁댄다. 남편이 말하는 새벽이란 다섯 시나 여섯 시나 뭐 그쯤인데, 닭울음 때문에 잠이 깨면 다시 잠을 못 든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닭소리 때문에 잠을 깨나? 싶었는데, 나도 나이 들어 찾아온 불면증을 몇 번 겪다 보니, 남편의 하소연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막 잠이 들려고 할 때 무슨 소리가 나면 잠이 달아나기도 하고, 공연히 잠이 깼을 때도 무슨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려 있으면 잠이 다시는 안 들기도 하니까.


닭울음이 그렇게 예민하게 잠을 방해하는 것에는 아마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개똥 때문에 마음이 어긋나 버린 터여서, 옆집이 하는 모든 것이 다 미워 보일 때였으니까. 나는 뭐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직접 언쟁이 붙어버린 남편은 그 심기가 나와는 사뭇 다를 것이었다. 옆집이 마음에 들고 좋았으면, 옆집 닭도 이뻐 보이지 않았을까. 그 닭이 우는 소리도 주인만큼은 아니어도 '고놈, 꽤 시끄럽군'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터였다. 물론 그 소리가 거의 날마다 반복된다는 애로사항이 있긴 하지만.



닭장은 하필 우리 집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고, 우리 집은 또 그쪽으로 부엌 창문을 내어서, 여름이면 창문을 열고 잘 수밖에 없다.

여름이면 닭도 더 일찍 잠을 깨는 듯싶다. 닭은 어둠이 걷히고 슬슬 새벽이 시작되는 그 푸르스름한 기운을 누구보다 더 빨리 알아채고 울어댄다. 딱따구리가 시커멓고 단단한 나무 등걸에 입을 대고 '따따따다다', 구멍을 파대는 것처럼, 닭은 동터오는 하루의 입구를 마구 찢어댄다. 일어낫! 그만 자고 일어낫! 그러면 우리는 어두운 꿈의 터널을 뚫고 발딱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또 자려고 궁그렁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닭 신호에도 불구하고 또 자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남편은 3년을 참았다 했다. 그러다 술자리에서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말하곤 했다.


- 수탉을 안 키우면 안 되겠냐.

- 꼭 유정란을 먹어야 합니까? 유정란이나 무정난이나 영양가는 똑같아요.

- 내가 닭 때문에 새벽에 잠이 깨면 다시 잠을 못 잔단 말이요.

- 수탉 때문에 하루가 힘들단 말이요.


묵묵부답인 이웃을 향해 남편은 불편한 마음을 내게 토로하곤 했다. 너무 한 거 아니냐고. 그렇게 부탁을 했으면 좀 들어줘야 하지 않냐고. 유정란 좀 안 먹으면 어떠냐고. 이웃이 이렇게 힘들다는데 자기들만 좋으라고 들은 척도 안 한다고.


꼭 유정란 때문은 아니겠지. J네가 닭을 키우는 건 먹기 위해서라기보다 또 하나의 생명체를 키우고 싶고, 이왕이면 그 생명체가 자연의 순리에 맞게 커가는 걸 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암탉이 수탉 없이 알을 낳는 걸 보고 있으면 짠한 마음도 들고, 어서 짝을 맺어줘야지 하는 부모의 마음이 되어 안타깝기도 할 거 같고... 개와 닭, 이런 생명체와 한 식구가 되어 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시골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것인데...


나는 이런저런 짐작과 이해를 끌어대어 닭울음을 무심한 쪽으로 돌려놓곤 했지만 남편은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었고 그것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아파트 층간소음처럼 다가오는 듯했다. 개 때문에 금이 가기 시작한 이웃관계는 우리가 닭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자 더 크게 벌어져 버렸다.


결국 우리의 하소연 때문에 J네는 수탉을 잡았고, 다시는 수탉을 키우지 않는다. 부탁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관계는 더 냉랭하게 굳어갔다. 우연히 우리도 J네가 건너 보이는 방향으로 구들방을 새로 들여놓아서, 담을 또 하나 만든 모양이 되었다. 이제 마당에 나와 있어도 J네가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마주치면 인사를 하긴 하지만, 영 찝찝한 모양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남편과의 사이는 더 안 좋아서 지나도 서로 알은체를 안 한다.


'달래'를 부르고 '달래'와 얘기하는 J의 굵은 목소리가 담 너머로 크게 들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옛날처럼, 사립문(J는 출입문을 대나무 가지로 만들어놓았다)을 열고 들어가 "뭐 해요?"라고 말하기가 껄끄럽고 불편해서 잘 안된다.

개와 닭을 키우고 싶어서 시골로 들어온 사람과, 개와 닭 때문에 살 수 없는 사람이 이웃인 셈이다. 여기는 시골이니, 개와 닭을 키우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게 시골이지 않은가? 누구에게 우리의 애로사항을 말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 그러니까 시골이지.

그 말에는 시골을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라, 시골의 지연스러움을 말하는 의미가 들어있다. 시골의 자연스러움을 불편해한다면, 불편해하는 우리가 시골을 떠나야 하는 걸까...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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