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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Dec 01. 2021

강천사, 남편을 잊으려 들어갔던 곳


 <그 남자를 잊으려고>     

거기서 나 진여심으로 살던 한 달이 있었지요 스님은 법명을 진여심이라 붙여주고, 공양 때가 되면 창문을 열고 ‘진여씨임’ 하고 목을 내놓고 길게 부르곤 했지요 때마침 완도 선창가에서 식당을 하다 들어왔다는 동갑내기 얼굴 예쁜 보화심은 어찌 그리 설거지도 빨리 하던지요 저물녘이면 절간 뒤로 돌아가 담배도 꼬나물곤 했지만 왜 절에 들어왔는지는 서로 말하지 않았어요 설거지가 유난히 빨랐던 어떤 저녁은 보화심이  안보이기도 했는데 그런 다음날 아침이면 얼굴에 별나 혈색이 돌곤 했지요 스님도 나도 보화심 다녀온 행방을 묻지 않은 건 스님을 찾아오는 아들에 대해 묻지 않은 거나 한가지였어요 얼음 같은 홍시를 관음전에서 꺼내서 몇 번 같이 먹고 나는 절을 내려왔는데 서로를 묻지 않았던 한 시절, 세상 끝인 양 올라가던 길이 처음으로 되돌아오곤 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2020년에 쓴 시)





  서울에서 살고 있는 아들 둘이 집에 내려왔다. 마침 주말이고 날씨는 좋고 게다가 가을이다. 사방에 단풍이 들었다. 집에서 보이는 낮은 야산도 제법 예쁘다. 논바닥에는 추수 끝낸 자리에 하얀 마시멜로가 늘어서 있다. 지푸라기를 숙성시켜서 소에게 준다는 하얀 뭉치들이 내 눈에는 마시멜로처럼 보인다. 논 가장자리에는 주황빛으로 감이 익어 있다. 집에서 보는 가을 풍경도 좋지만 어딘가로 떠나야 할 것 같다. 어디로 갈까. 단풍 절정은 지나버린 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1시간 반 거리인 순창 강천사를 택했다. 

 

 최근에도 갔던 곳이지만 아이들은 한 번도 안 가본 곳이다. 2년 전에는 남편과 같이 갔던 곳, 그리고 30년 전쯤인가는 나 홀로 있던 곳. 나 홀로 한 달을 지냈던 곳이다. 그래서 강천사하면 특별한 느낌이 솟는다. 


 입구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하다. 항상 입구에 오면 30년 전의 옛날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는 이런 주차장도 없었고, 입구에 즐비하게 있는 식당들도, 매표소도 없었는데... 그냥 마을버스가 내려준 곳에서 하염없이 한 시간 정도 산길을 올라가야 절 입구가 나왔는데...

 그런 생각을 혼자 하며 두런두런 산길을 올라간다. 입구는 많이 번잡하다. 군데군데 조각인형도 서 있다. 한쪽에서 아줌마들이 쭈그려 앉아 밤을 팔고 약초를 팔고 감을 팔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세련된 관광지의 모습이다. 예상했던 대로 단풍은 많이 져버렸다. 그래도 산 색깔은 진한 가을빛이다. 잎이 다 져버린 나무도 있지만 아직 은행나무 몇몇은 진한 노란빛이고 단풍나무는 검붉고 예쁘다. 


 단풍만큼이나 알록달록한 사람들 사이를 한참 걷다 보니 절 입구가 나왔다. 늙고 큰 감나무가 서 있는 담장을 끼고 경내로 들어섰다. 사진도 찍고, 와, 이 자리가 좋아, 여기도 괜찮네, 하며 이리저리 둘러보다 무심결에 말했다. 


"여기서 엄마가 한 달을 지냈어..."

"여기서?"

큰 아이가 놀랍고도 경이로운 표정으로 묻는다.

"응... 여기서"

"왜??"

" 으응, 아빠를 잊을라고 들어왔지"

" 하하, 그래서 잊었어?"

" 아아니, 마음대로 안됐어..."


 큰 아들은 지금 열애 중이다. 그래서 별 표정이 없는 둘째보다 더 즉각적으로 관심이 쏠리는 눈치다. 

" 야야, 하마터면 너가 없을 뻔했다야!"

 둘째를 놓고 하는 말이다. 내가 아빠와 헤어졌으면 둘째는 없었을 뻔했다는 이야기이다. 다섯 살부터 키운 큰 아들은 이미 넉넉한 품이 다 되었다. 


" 내가 아빠를 그만 만날라고 들어왔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아빠가 전화를 했어. 그때는 핸드폰도 없던 때라 스님이 방문을 열어젖히고 진여심~~하고 불렀지."

" 진여심? 왜 진여심이여?"

 내가 절에 있을 때 나의 이름이 진여심이었다. 절에서는 법명을 따로 불렀는데, 수행하지도 않은 세간의 처자를 그냥 이름으로 부르긴 뭐하니까 절 법도대로 법명을 지어서 불렀던 것이다. 

" 한 달 동안 뭐했고 지냈어?"

" 그냥, 새벽 네시에 법당에 올라가 백팔 배 하고, 밥 먹고, 책 보고, 산에 가고 그랬지"


 새벽 4시가 되면 스님이 절 마당을 쓸고 주변을 돌고 종을 치셨다. 나는 그 소리에 깨어서 법당에 올라가 절을 했다. 절에 들어올 때 스님이 그랬던 것 같다. 다른 것은 일체 간섭 안 하는데 아침 예불만은 하면 좋겠다고. 강요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 약속을 어기지 않고 지켰다. 절을 하고 내려와 방에 배를 깔고 책을 읽고 있으면 "진여심~~"하고 길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밥 먹으라는 소리다. 스님이 나를 '진여심'이라고 길게 부르던 때는 딱 두 가지 경우였다. 밥 먹으라고 부를 때와 전화받으라고 할 때.

 절에 수양한다고 들어와 있는 처자한테 남자가 전화를 해대니 그 바꾸어주는 속내가 어떠할지는 짐작할 만 했다. 수화기를 건네 받을 때마다 나는 스님의 얼굴을 바로 볼수가 없었다. 그때 내 나이는 서른 하나. 


" 햐야, 무슨 영화 한 장면 같네, 그때가 겨울이었어?"

" 응, 겨울이었어, 눈이 오면 계곡에 내려가서 얼음을 깨고 물을 떴지"

아들은 눈이 하얗게 쌓인 절에서 방문을 열고 진여심~~하고 불렀다는 것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바꾸어 상상하고 있는 듯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영화 같은 이야기였다. 내 사랑 이야기는. 결혼해서는 안될 것 같은 사람과 헤어지기 위해 절에 들어온 여자,  한 달을 혼자 버티기 위해서 들어왔지만 절에서 내려오자마자 제일 먼저 그 남자에게로 달려갔던 여자. 결국 헤어지지 못했던 남자, 그 남자가 지금 내 남편이다. 

 무엇이 이 남자와 헤어지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그토록 수없이 결심하고 결심했던 마음이 무엇 때문에 무너지곤 했을까? 아들도 그것이 궁금했나 보다. 왜 못 헤어졌냐고 묻는 말에, '그냥 그게 인연이겠지 뭐...'라고 답했다. 인연. 불교에서는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고 말한다. 인연법이 우리가 존재하는 실상이라고 했다. 어쨌든 나는 그 질긴 인연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이 남자를 평생 유일한 남자로 만들었다. 

 

                                (한 달을 묵었던 요사체가 없어지고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 근데 왜 하필 강천사였어?" 

묵묵히 듣고 있던 둘째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둘째는 우리 집에서는 둘째이지만 나에게는 첫째이다. 그래서 늘 전전긍긍하며 키웠다.

" 여기가 광주에서 가까운 절이었으니까. 절에 들어오려고 여기저기 알아보았는데, 누가 그랬던 것 같아. 강천사가 아담하고 조용해서 있기 좋을 거라고..."  

 그때 나는 학교에서 쫓겨나서 백수로 지낼 때였다. 조합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완전 백수는 아니었지만, 부모님께서는 집에서 빈둥거리는 딸을 봐주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서른이 넘은 딸이 시집은 못 가고 절에 들어가겠다고 하니 아마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 그 당시에 여자 나이 서른이면 완전 노처녀였고, 처치 대상이었으니!) 그러나 그런 부모님도 내 속에 말 못 할 남자 하나를 품고 있었던 것은 모른 채였다.  



 그때만 생각하면 저 붉은 단풍잎처럼 내 마음이 스산하게 붉어진다. 산길을 내려온다.  길게 늘어진 출렁다리를 지나 절벽의 폭포 앞에서 한참 동안 사진을 찍었다. 아득한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무지개를 만들고 있었다. 절 입구에서 팔고 있던 약과를 두 봉지 사 들었다. 약과의 단맛처럼 몇 개 남아 있는 단풍 색깔은 진하다. 날씨는 어느새 차가워지고 한기가 든다. 다섯 시가 채 안되었는데 길가에 조명등이 들어왔다. 아득한 기억 속의 강천사와는 참 많이 달라졌다. 나도 참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강천산 속에 강천사가 들어앉아 있듯이  내 안에는 그 옛날의 내가 푹 들어앉아 있다. 그 모습이 예쁜가? 그렇다. 둘 다 이쁘다. 저물녘의 산사는 어둠 속에 제 모습을 조용히 묻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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