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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Apr 24. 2022

프라이팬 개똥철학


프라이팬에 대하여


그리 깊지는 않지만 너른 품을 지녔지요 제 몸을 달구어서 다른 몸을 익힌다는 것은

참 詩적인 일이어요 그러나 섣불리 하면 안 되지요 길을 잘 들여야 해요 특히 코팅 독이 없다는 세라믹 팬은 기름칠을 해서 달구었다 닦기를 여러 번 해야 하지요 처음 다른 몸을 데울 때도 조심해야 해요 자칫 은색 몸에 흉이 져서는 지워지지 않거든요 독 없이 다른 몸을 만나기란 참 조심스러워요

나도 독 없다는 것에 도전했지만 실패하고는 코팅된 것을 쓰지요 코팅을 독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몸을 제 몸 위에 올려놓으려면 이런 반질반질한 막을 씌워야 하겠지요

그것이 서로 안 상하는 일,

독 없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프라이팬이 詩적으로 말해주고 있어요 코팅된 프라이팬으로 많은 것을 하다 다른 몸이 눌어붙어 안 떨어질 때쯤, 새것으로 바꿔요 프라이팬을 오래 쓸려면 본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참으려면 씻을 때도 부드럽게 닦아주어야 해요 그러면 프라이팬은 많은 몸들의 오랜 팬이 될 수 있어요



                                                   




― 한 해에 프라이팬을 몇 개 쓰는지 모르겠다. 아마 매년 사는 것은 아닌 듯 하지만 꽤 자주 사는 것 같다. 살림 초반에는 프라이팬은 영원히 쓰는 것인 줄 알았다. 살림에 대해 전혀 모르던 때였으니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하지만 참 어이없는 생각이었다. 사람이 한쪽으로 무지몽매하면 한이 없다. 어떻게 프라이팬을 영원히 쓸 수 있겠는가. 냉장고나 모든 가전제품도 10년을 썼으면 많이 쓴 거라 하는데 나는 모든 것이 영원히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장이 나서 더 이상 못 쓰게 되었을 때는 자꾸 그 원인을 캐물으려 하고,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프라이팬을 자주 바꾸게 되면서 그 생각도 자연스럽게 고치게 되었지만, 어쨌든 프라이팬을 버리기까지 꽤 많은 것을 태워먹곤 했다.

 좋은 프라이팬일수록 코팅이 잘 되어 있다.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코팅은 기름이 표면에서 겉돌 수 있도록 음식이 달라붙지 않도록 적절한 막을 형성해준다. 코팅이 안 되어 있는 것은 인체에 해가 없을지는 몰라도 쓰기에는 매우 불편했다. 길을 잘 들여야 하겠지만 길들이기에는 너무 수고가 많이 들어간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적절한 거리가 있어야, 서로 숨 쉴 수 있는 적절한 막이 있어야 오래간다. 아무 막도 씌우지 않고 착 달라붙게 지내면 오히려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이 보이지 않으므로 내 고집만 피우게 된다. 상대방을 볼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하다. 악을 써대며 자신을 드러내지도 말아야 한다.

대부분 악을 써대며 감정의 바닥까지 드러내는 일은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프라이팬에 들러붙는 타져버린 껍질이 진짜 모습이 아니듯이, 사람도 자신의 진짜 모습은 바닥까지 갔다는 그 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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