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책으로 해방 중입니다.
“이 책 어때?”
“그림책이야? 왜 이렇게 예뻐?”
“그렇지? 나도 너무 예뻐서 한눈에 반해서 샀어.”
내가 이 그림책을 만난 건 추운 겨울이었다.
얼마 전부터 다니게 된 책방에서 이 그림책을 보고 망설임 없이 사게 됐다.
하지만 집에 빨리 가져가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바로 책을 가지고 올 수 없었다.
흠집하나 없는 새 책을 받고 싶은 나의 욕심이었다.
책방지기는 새 책이 곧 올 거라며 다음 주에 주겠다고 했다. 새 책을 받는 일에 기다림이 생겼다.
그때는 금방 다시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기다림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책을 아직 받지 못한 어느 날이었다. 겨울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산을 쓰고 길을 걷던 나는 추운 날 내리는 비로 연신 입김이 나왔다. 손은 빨개져 있었다.
왜인지 그 그림책이 더욱 생각났다. 책에서 그려지는 비는 참 따듯해 보였다.
겨울에 여름비를 생각하다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2주가 지난 어느 날 책방에서 그림책을 받았다.
나는 남편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었다.
이 책이 어떠냐는 나의 물음에 남편은 같은 마음으로 대답해 주었다. 예쁘다고.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한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책의 제목은 아이보리얀 신경아 작가의 <여름비>다.
아이보리얀 신경아, <여름비>
나는 비와 눈이 내리는 날을 좋아한다. 나름의 로망도 가지고 있었다.
비 오는 날 노란 장화를 신거나 노란 우산 쓰기. 한겨울 눈 오는 날에는 빨간색 목도리 두르기.
그리고 비나 눈이 오는 날 카페에 앉아 차 마시기 같은 사소한 로망들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은 출근길의 불편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배달이 잘 되지 않는 아쉬움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 감성이 무뎌진 것이라고 하기에는 나는 여전히 비나 눈이 오는 날 감성에 젖는 것을 좋아한다.
그냥 마음을 온전히 누리기에는 불편함이 싫어지고 걱정이 많아진 탓인가 보다.
그래서 이 그림책이 더욱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책에서 보이는 여름은 참 풋풋하다.
한 때는 나도 설레는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비 내리는 풍경을 아름답게 그려낸 그림.
그리고 그림책 안에서만큼은 아무런 걱정 없이 온전히 비 오는 감성을 누릴 수 있다는 즐거움.
<여름비>가 나에게 주는 위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