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책으로 해방 중입니다.
임정은 글, 문종훈 그림, <모두를 위한 단풍나무집>
<모두를 위한 단풍나무집>이라는 그림책 속의 그림은 나에게 익숙함을 담고 있다.
이 그림책은 그림을 먼저 보고 호기심으로 글을 읽게 된 경우이다.
처음 <모두를 위한 단풍나무집>의 빨간 벽돌집 그림을 본 순간 나는 고향집을 떠올렸다.
고향집이 있던 동네도 떠올랐다.
지금은 이웃 사람들이 바뀌고 재건축을 통해 많이 달라져서 늘 아쉬웠던 내 고향집. 내 동네.
변해버린 모습을 아쉬워하며 옛날의 모습을 그리워하던 나에게는 추억의 모습 같았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림책의 내용은 고향집을 떠올린 나의 감상과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림책을 느끼는 것도 충분히 좋았다.
나름 제목도 달리 붙여보았다.
나를 위한 빨간 벽돌집이라고.
어릴 적 여러 번의 이사를 거쳐 쭉 살게 된 곳은 주택가였다.
시골은 아니지만 작은 뒷산과 공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유행처럼 빨간 벽돌집들이 많이 모여있는 동네였다.
그리고 집집이 경쟁하듯 나무와 꽃들이 심겨 있었다. 그중 우리 집은 이층의 빨간 벽돌집이었다.
더 이상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고 어린 나에게 무척이나 커 보였던 집.
집안에서 마음껏 뛰어놀아도 되는 집. 사계절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그 집을 나는 좋아했다.
동네에는 나의 또래들이 많아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에 늘 왁자지껄했다.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이었다.
그 고향집은 어른이 된 나에게도 늘 바람이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는 빨간 벽돌집 같은 나만의 주택이 언제나 그립다.
그런 집을 갖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까. 잘 지어진 주택이나 주택사진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가끔은 집을 보기 위해 멀리 다른 지역으로 동네 구경하러 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집을 보며 부럽다는 마음과 나도 언젠가는 살게 될 거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를 위한 단풍나무집>이라는 그림책 속의 빨간 벽돌집은
나에게 추억이자 꿈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