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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Jul 31. 2024

책과 친구 하기

끄적거림

“내가 책을 읽을 때 눈으로만 읽는 것 같지만 가끔씩 나에게 의미가 있는 대목, 

어쩌면 한 구절만이라도 우연히 발견하면 책은 나의 일부가 된다.”


-윌리엄 서머셋 모옴(William Somerset Maugham)-


책을 읽는 것은 삶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글을 쓸 때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책 속에서 내가 쓰고 싶은 주제를 찾을 수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찾아 여러 번 떠올리며 닮아가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다른 이의 글이 나의 글에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비해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다. 

다시 몇 번이나 읽을 만큼 좋아하는 책도 생겼다. 하지만 아직도 책이 멀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내가 독서모임에 다니던 때였다. 그곳에서 책과 친해지는 방법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먼저 흥미가 생기는 책을 나의 가까이에 둔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필요는 없고 관심이 있는 문장들만 읽어도 된다. 

책을 접거나 필요한 부분에 낙서해도 괜찮다. 마음껏 자유롭게 책을 대해도 좋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 중에서 관심 있는 문장들만 읽어도 된다는 방법을 빼고는 끝내 나머지 방법들은 실천하지 못했다.

읽고 있던 책이라도 조금 이따가 다시 보기 위해 멈추면 책장에 갖다 놓아야 할 것 같았다. 

책을 접거나 낙서를 하는 것은 깨끗한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책과 친해지기는 실패했다.


우리 집 책들은 책장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새 책은 아니지만 낙서나 접은 흔적 하나 없이 다들 깨끗하다.

왠지 책장을 보고 있으면 읽은 책 리스트 같아 뿌듯하다. 

하지만 그 반면에 가끔씩 책이 전시품같이 느껴져 거리감이 든다.

친해지고 싶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 말고 내 방식대로 친해지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그 때문일까. 요즘 나는 책 대신 핸드폰과 더 친해졌다. 

핸드폰을 통해 웹 소설을 보거나 전자책을 읽는 시간이 점점 많아진다.

눈은 아프지만 이상하게도 책 보다 더 쉽고 빠르게 글을 읽을 수 있다.

책이 식탁에 앉아 차려먹는 음식이라면 

핸드폰으로 책을 읽는 것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먹는 샌드위치 같다. 

덜 부담스럽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책을 가까이하게 되고 자주 보게 된다.

그럼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책은 책이니, 나는 책과 친해진 걸까? 아닐까?


종이책이 주는 좋은 감성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손끝에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과 한 장 한 장 넘길 때 나는 소리. 작가의 생각이 담겨있는 듯한 글자체.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나무 내음. 이 모든 게 책이 나에게 주는 마음이다.

전자책들은 그런 감성을 느낄 수 없어 아쉽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다가가기 간편하다는 점에서 책을 더욱 가까이할 수 있어 좋다.

나만 해도 책장에 있는 책을 꺼내기보다 핸드폰으로 책을 보는 게 더 익숙하고 편안하다.  

책을 친구라고 한다면 둘 다 장점이 다른 좋은 친구들인데 왜 나는 차별 아닌 차별을 하고 있을까.


내가 두 책을 대하는 모습은 전혀 다르다.

전자책은 언제든 볼 수 있는 사이처럼 너무 편하게 대한다. 

그래서 글을 읽다 보면 소비하는 느낌으로 휙휙 빠르게 넘어가는 때가 있다.

종이책은 너무 소중히 다루어 편하기는커녕 새로 만난 사람처럼 깍듯이 대한다. 

읽은 책인데도 구겨지거나 흠집 하나 없는 새 책처럼 보이니 말이다.

친구는 소중하고 편안한 관계다. 그러므로 나는 두 친구를 같은 마음으로 소중히 편안하게 대해줘야겠다.

전자책도 책이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종이책은 조금 더 편안하게 마주하며 자주 손길을 내밀어야겠다.


언제쯤 나는 책과 친구를 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기는 어려우니 오늘도 끌리는 책을 슬그머니 몇 장 넘겨봐야겠다.

그렇게 조금씩 자주 보다 보면 나와 책도 서로 정들지 않을까. 예쁜 책갈피를 선물로 챙겨줘야겠다.


“책만큼 충성스러운 친구는 없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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