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이들의 습격사건

베리베리 우리 블루베리

by 헬레나

어릴 때 읽었던 에드거 앨런 포의 섬뜩했던 검은 고양이 얘기 때문일까? 내게 고양이는 요물, 딱 그런 존재였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무서운 존재였다. 특히 그 눈,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고양이 눈을 보고 있으면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렇다고 내가 애완견은 좋아하냐? 사실은 그것도 아니다. 어릴 때부터 한 번도 애완동물과도 함께 산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동물들에게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개들은 왠지 충실한 이미지 때문인지 무섭거나 그렇게 싫진 않았다.


어쨌든 내 인생에 애완동물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고, 미래에도 쭈욱 그럴 줄 알았다. 특히 무서운 고양이는 꿈에서조차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찌 인생이 내 맘대로만 살아지던가? 평화롭던 내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란 녀석이 훅 들어온 첫 번째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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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른이 넘어서 늦깎이 공부를 한답시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공부를 마친 후 운 좋게 아는 친구의 소개로 직장에 들어가게 됐다. 내 상사는 아주 유괘하고 친절한, 한마디로 쿨한 보스였다. 친구처럼 너무 편안하게 대해줘서 재미있게 일을 같이 했었다. 그녀는 집에서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있었고 뒷마당의 너구리가족들까지 밥을 챙겨주는 동물애호가였다. 회사 주변의 길고양이들의 밥도 늘 챙겨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배가 남산만큼 부른 어미 고양이를 캐리어에 넣어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한구석에 커튼을 치더니 어미 고양이가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때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임신한 길고양이가 불쌍하다 해도 사무실 안에 거처를 마련해 주는 게 말이 되는가? 안 그래도 비좁은 사무실을 세 명이 같이 쓰는데 이제 고양이까지 거기다 고양이 화장실까지! 정말 "오 마이 갓!"이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그녀가 보스인걸…


정성 들여 보살피던 며칠 후 새끼 고양이 네 마리가 태어났다. 나는 하루빨리 고양이들이 입양되어 사라지기만 기도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헛된 소망이었다. 생후 3개월 동안은 어미 고양이 젖을 먹으며 커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오 마이 갓!" 고양이 다섯 마리와의 긴 동거는 그렇게 아무 예고도 없이 시작됐다.


내 보스는 회사에서 고양이 빅마마로 불렸고, 이상하게 아무도 그녀에게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고양이를 보살피는 그녀의 지극정성은 정말 대단했다. 다섯 마리들의 먹이 챙기는 건 물론 화장실 청소하기, 한 마리씩 돌아가며 앉고 쓰다듬어주기 등등… 그녀의 보살핌이 극진하면 할수록 다른 한쪽 구석의 나의 괴로움은 더 커져만 갔다.


그 무서운 고양이들과 하루 8시간을 함께 한다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그것도 무려 다섯 마리와… 제일 힘든 건 고양이 화장실 냄새였다. 내 보스가 아무리 열심히 치워도 다섯 마리의 배변을 그때그때 치울 수는 없었다. 다른 회사 동료들도 우리 사무실에 자주 들러서 새끼 고양이들을 껴안고 볼을 비벼댔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너무 예쁘다고 난리들을 치곤 했다. 그때 난 정말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안드로메다의 한 행성에 혼자 달랑 떨어진 기분이었다.


정말 내 보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생명에 귀천이 없다지만, 아니 그래도 인간이 먼저 아닌가? 그냥 사람들보다 고양이들을 더 신경 쓰는 그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너무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이라 생각했다. 동물들에게 엄청난 사랑과 정성을 쏟아붓는 그녀를 보며, 그런 정성을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한테 좀 쓰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주제넘은 생각이었다. 3개월이 지나서 입양을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그녀는 결국 다섯 마리 모두를 입양해서 집으로 데려갔다. 고통스러웠던 고양이들과의 첫 번째 동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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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몇 년이 흘렀고,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더 가깝게 한 고양이를 알게 됐다. 그 고양이의 이름은 미미, 바로 내 남자 친구의 고양이였다. 내 남자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태어났을 때부터 평생을 고양이와 함께 한 사람이다. 고양이 없는 그의 인생을 논할 수가 없었다.


특히 미미는 3개월 때 입양해서, 13년을 함께 동고 동락한 소중한 가족이었다. 나는 내 남자 친구의 가족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고 정말 잘 보이고 싶었다. 남자 친구 집에 갈 때마다 무서움을 꾹 참고 미미에게 다가가려고 엄청 노력을 했다.


그렇지만 미미는 반고양이주의인 나를 단번에 알아챘는지 좀처럼 곁을 주지 않았다. 나는 본 척 만 척 늘 내 남자 친구에게만 조르르 달려가 안겼다. 미미와 나사이엔 늘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마치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두 여자가 좋아할 때 흐를 것 같은 그런 묘한 기류. 참 내가 살다 살다 고양이 외 삼각관계에 놓이다니! 그렇지만 그런 불편한 관계는 오래 못 갔다.


미미를 극복 못하고 결국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NO 아니 그건 아니고, 미미가 암에 걸리고 말았다. 먹는 걸 다 토해내며 3달 정도를 고생했었다. 너무 아파하는 미미를 보내기로 결심을 하고 동물병원에 데리고 간 그날, 나는 내 남자 친구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그때 난 왠지 모를 죄책감에 휩싸였다. 마치 미미와 나는 공존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나서 나의 출현이 미미를 죽음으로 내몬 것 같았다.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 알았으면, 친해지려 더 노력했을 텐데. 그날 미미는 내 남자 친구의 품 안에서 조용히 잠들었다. 내 인생의 고양이 사건 2탄은 그렇게 새드 앤딩으로 끝이 났다.



미미를 보낸 후 6개월 정도 지난 후, 내 남자 친구와 나는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 구성원들도 태어났다. 둘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나는 우리 가족이 이제 완전체가 됐다고 느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어느 날부터 세 남자가 한동안 잊고 있던 그 존재를 내게 다시 환기시키기 시작했다.


“고양이, 엄마 우리 고양이 입양해요. 우리가 고양이 화장실도 다 치우고 밥도 주고 다 알아서 할게요. 제발 엄마”

이렇게 몇 달을 세 남자들이 한 팀이 되어 조르는 것이다.


“아니 왜 갑자기? 우리끼리도 충분히 행복한데? 고양이가 웬 말? 안돼 절대 안 돼. 고양이가 가구를 다 망가뜨릴 텐데, 털이 엄청 빠질테데, 지독한 배변 냄새는 어쩌고?”


아니 모든 걸 다 재껴두고, 그냥 집에 혼자 있을 때 고양이가 같이 있다는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했다.


“아니 안돼, 엄마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그럼 언제 준비돼? 몇 달? 6개월?”


“그래 6개월.”


"OK 좋아 그럼 6개월 후에 입양하는 거야 야호!"


아차차 이걸 어째? 그냥 내 입에서 그렇게 툭 튀어나온 6개월이 약속시행일자로 결정된 것이다. 아이들의 기억력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약속 시한이 지나고 우리는 작년 9월 28일에 결국 베리를 입양하게 되었다.


본명은 블루베리, 애칭은 짧게 베리. 베리가 온 지 며칠 지난 어느 날, 나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베리와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고, 내 집에 있으면서도 베리 눈치를 보며 영 불편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베리가 갑자기 내 무릎 위로 펄쩍 뛰어 앉는 것이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향해 돌려 앉아 앞다리를 포개 내 가슴 위에 살포시 얹는 것이다. 마치 안아달라고 조르는 아기처럼, 자꾸 도망가지 말고 자기 좀 봐달라고, 자기 좀 예뻐해 달라고. 그 순진무구하고 애처로운 베리의 눈빛에 나의 만리장성은 한순간에 와르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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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의 부드러운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그냥 픽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평생 처음으로 고양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노아란 자위와 검은 눈동자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니 이렇게 예쁜 냥이를 그동안 왜 그리 무서워했던 거야? 사랑 좀 달라고 저렇게 애처롭게 구걸하는데 어떡하냐고? “

이렇게 나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녀석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이제 베리가 가족이 된 지 6개월이 다 되어간다. 나는 이제 옛날 그 보스처럼 베리의 빅마마가 되었다. 요즘의 나는 옛날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들을 한다. 직접 손으로 베리의 눈곱도 떼어주고, 맛있는 치킨도 나눠 주고, 짓궂은 베리가 살짝 내 손을 물게 놔주기도 하고, 심지어 내 침대에 베리를 허용하기까지 했다.


나의 사랑은 유한하고 내 가족한테만 주기도 모자란다고 철벽같이 방어하고 있었는데, 그 녀석은 그 철벽의 작은 틈새로 훅 치고 들어왔다. 우리 가족은 지금 베리 때문에 더 많이 껴안고 더 많이 대화하고 더 많이 웃는다. 사랑은 유한하지 않고, 유동적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사랑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베리가 할퀸 상처들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나는 몰랐다. 사랑에 귀천이 없듯이 사람, 동물의 구분도 없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알게 됐다. 누군가에겐 반려동물들이 다른 어떤 인간들보다도 더 많은 위로가 된다는 것을. 누군가에겐 반려동물들이 하루하루 버텨낼 수 있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베리는 지금 벌써 배가 고픈지 내 주위를 맴돌며 야옹야옹거리고 있다. 밥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베리야, 요즘 네 뱃살이 통통하게 올랐거든, 앞으로 다이어트 좀 해야겠다. 좀 만 더 참아라.”

요즘은 너무 먹어대는 베리가 비만에 걸릴까 봐 걱정이다.

“베리베리 우리 블루베리야, 아프지 말고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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