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깨물어 더 아픈 손가락

10년째 인턴엄마

by 헬레나

옛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부모의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모두 똑같다는 뜻이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엔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힘들다. 모든 자식을 향한 사랑의 깊이는 같을지언정 그 사랑의 방식이나 형태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모자식관계도 다른 인간관계들과 다르지 않다. 두 개인 간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제각각의 성향을 지닌 자식들과 똑같은 관계를 맺기는 쉽지 않다.


성격이 비슷한 자식과는 아무래도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니 편안한 관계를 형성하기 쉽다. 그렇지만 성격이 완전히 다른 자식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해하기 힘드니 자주 의견충돌이 일어나고 부모란 위치에서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대하게 된다. 자식으로선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통제만 하려는 부모와 점점 멀어지면서 불신까지 쌓이기 쉽다.


이런 관점에서 나에게 더 아픈 손가락은 첫째 아이다. 나는 혼자서 책 읽거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정적인 성향을 가졌다. 그렇지만 우리 첫째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고 잠시도 엉덩이 붙이고 못 앉아 있는 아주 활동적인 녀석이었다. 게다가 엄격한 규칙이나 통제를 너무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이미 6살 때 나한테 혼나고 난 후 배낭에 초코파이와 우유를 싸서 첫 가출을 시도했었다. 다행히 집 뒤 공원에 가서 간식을 다 까먹고 집으로 돌아와 30분 만에 실패로 끝났지만. 어쨌든 그래서 훈육하기가 아주 힘든 아이다.


아이를 낳으면 그냥 자동적으로 좋은 부모가 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는 그때부터 양육공부를 시작했다. 퇴근 후나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도서관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 아이를 이해하고 이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엄청난 양의 양육책, 심리책들을 읽었고 교육프로그램들을 시청했다. 대입공부도 이렇게 열심히는 안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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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으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막상 실제상황에 맞닥뜨리면 머리가 하얘지고 자꾸 감정부터 튀어나오곤 한다는 것이다. 습관을 바꾸기가 이렇게 쉽지 않다. 별수 없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그러다 보면 아주 가끔씩 소중한 변화들과 만나게 된다. 오늘도 내겐 그런 감동적인 일이 있었다. 나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특별한 선물이었다.


첫째가 좋아하는 온라인게임이 있다. 게임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그 게임에 에러가 자꾸 난다며 짜증을 냈다. 오늘도 아니나 다를까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게임이 자꾸 끊어진다며 화를 냈다. 게임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좀 쉬었다 다시 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말했다

"에러 때문에 벌써 30분을 허비했다니까"


내 제안에 짜증으로 받아치는 녀석한테 순간 나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숨을 길게 내리 쉬면서 1부터 10까지 세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낭비된 30분을 더 줄 테니까 더 낭비하지 말고 기다렸다 이따 다시 해보면 어때?"

첫째는 소파에 가서 한동안 씩씩대며 앉아 있었다. 몇 분 후 다시 해보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다행히 게임이 제대로 작동되었다. 휴~ 나는 그제야 한숨을 쉬고 부엌으로 갔다.


드디어 신나게 게임을 하는 첫째 녀석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밀린 설거지와 주방 청소를 시작했다. 낑낑대며 가스레인지의 찌든 때와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첫째가 부엌으로 달려와 나를 꼭 안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30분 더 게임하게 해 줘서 고마워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포옹과 고맙다는 그 말에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졌다. 첫쨰가 혹시라도 볼까 창피해서 얼른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나도 다시 한번 꼭 안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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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첫째가 이렇게 스스로 다가와서 나를 안아주는 건 세 살 때 이후로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내게 다시 오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신 멀리 가게 놔주고 싶지 않다. 아까 자꾸 잃어버린 30분 운운하며 짜증 낼 때 나도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왔었다. 그때 못 참고 또 소리를 버럭 질렀다면, 이런 놀라운 일을 또 놓쳤겠지? 갑자기 또 다른 질문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그렇담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런 순간들을 놓친 것일까? 그 조급함 때문에 그 참을성 없음으로 인해서.


만약에 엄마가 되기 전에 누군가 내게 엄마란 직업의 매뉴얼을 상세히 설명한 한 후 잡오퍼를 줬다면, 나는 그 오퍼를 흔쾌히 승낙했을까? 그 어마무시한 책임과 업무량을 미리 알았더라면…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현재의 나는 엄마가 되기 전의 나보다는 좀 나은 사람임을. 그래서 멋모르고 덥석 시작한 이 도전에 후회는 전혀 없다. 흔히들 부모는 아이들의 좋은 스승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을 이해하려 시작한 공부에서 이제는 인간이란 존재자체에 대한 탐구로 넓혀갔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타인들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나를 세상 바깥으로 이끌어준 우리 아이들,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 특별한 보너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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