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한국말을 전혀 못한다. 친정 엄마는 그 부분을 늘 못마땅해하신다. 남편이 미국인이라서, 또 내가 애들 어릴 때 직장을 다녀서 집에서 한국말을 가르치지 못했다는 나만의 핑계가 있긴 하다. 그리고 나도 나름 노력을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한글학교에 몇 년 동안 보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애가 얼마나 싫었는지 교실에서 뛰쳐나갔다. 그 사건 이후로 마음을 접고 한글학교를 그만뒀다. 사실 그때 한글학교에 보낸 이유는 말을 배우는 것보다도 한국의 문화를 배우는 데 있었다. 일주일에 고작 3시간, 그것도 교사 한 명이 20명 넘는 아이들을 상대로 읽고 쓰기 위주로 가르쳐서는 한국말이 늘 것 같지 않았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6년 동안이나 영어를 배워도 영어를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한글학교는 단순히 한국어습득을 위한 장소를 넘어서 한국커뮤니티와의 연결고리였다. 매주 한번 자기와 비슷한 생김새의 한국 아이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문화와 풍습을 경험할 수 있는 그 환경이 맘에 들었었다. 그런데 한글학교를 그만둔 이후로 우리 애들은 한국커뮤니티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그러다 나는 우연히 재외동포청에서 주관하는 차세대동포 모국 초정연수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차세대동포를 한국으로 초청해서 한국의 역사, 문화, 사회, 경제 등 다양한 부문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한국인으로서 정체성 함양과 자긍심을 고취시킨다는 취지이다. 외국에 5년 이상 거주한 만 15세 이상의 한국동포 청소년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일주일 동안의 모든 비용을 부담해 주고 비행기값도 일정 부분을 상환해 준다. 그야말로 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훌륭한 프로그램이었다. 마침 큰 애가 15살이 되었고, 이번 여름에 어차피 한국에 갈 계획이었으니 더도 없이 좋은 기회였다. 단, 이런 좋은 프로그램에 경쟁이 치열할 텐데, 우리 애는 봉사활동이라든지 학교장추천서라든지 가산점 붙을 게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큰 기대 없이 겨우 자기소개서를 하나 써서 지원했다. 그런데 운이 좋게 합격됐고 큰애는 일주일 동안 전 세계에서 모인 자기 또래의 한국애들과 함께 한국체험을 하게 됐다.
드디어 캠프 첫날이 되어 나는 큰애를 집합장소인 인천공항 근처의 한 호텔에 데려다줬다. 이 캠프만을 목적으로 혼자 입출국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공항 근처의 호텔로 정한 것 같다.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을 하고 명찰과 단체복과 호텔방 키를 받았다. 나도 호텔방까지 올라가도 된다고 해서 방구경까지 했다. 천천히 호텔방을 둘러보고 있는데, 큰애가 이제 그만 가라고 문쪽으로 나를 밀어냈다. 쫓겨나다시피 애만 두고 혼자 그 방을 나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예전에 남동생을 논산훈련소에 혼자 달랑 놔두고 부모님과 돌아올 때의 그 기분 같았다. 겨우 일주일인데, 그리고 이제 15살이나 됐는데. 그렇지만 엄마의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옛날처럼 맘에 안 든다고 뛰쳐나가면 어쩌지? 한국말도 못 하는 애가.
다음 날 남편은 한국에서 꼭 하고 싶은 관광을 하러 갔다. 바로 DMZ투어. 미국인답게 최고의 관심사는 역시나 북한이다. 나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관광패키지만 예약해 주고 남편과 둘째만 보냈다. 그사이 시내에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투어버스가 픽업하고 내려주는 정류장은 명동 홍대 등 몇 가지 옵션이 있었는데, 나는 시청으로 선택했다. 혼자서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정동산책을 하고 싶어서였다.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후 플라자호텔 앞으로 마중을 가서 두 남자와 다시 재회했다. 남편은 지난번에 갔을 때 흐린 날씨 때문에 북한땅을 못 봐서 아쉬워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봤다면서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둘째도 땅굴도 신기했고 득템 한 DMZ셔츠까지 대만족이라고 했다.
마침 광복절을 며칠 앞두고 있어서 시청에는 커다란 태극기가 결려 있었다. 우리는 시청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내친김에 광화문까지 걸어갔다. 광화문은 한국에 올 때마다 늘 방문해서 눈도장을 찍었던 곳이다. 이번에도 세종대왕님과 이순신장군님께 잘 왔다고 인사드렸다. 그리고 내가 청계천에도 가보자고 제안했다. 남편과 둘째는 청계천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청계천 쪽으로 내려가니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한산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둘째 녀석이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찾았다. 내 기억에 청계천 어딘가에 공중화장실이 있었던 것 같아서 계천을 따라 계속 내려가기로 했다. 둘째 녀석의 얼굴이 점점 찌그러졌고, 나는 화장실을 찾아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코뺴기도 안보였다. 이 녀석은 이제 정말 너무 급해서 옷에다 쌀 것 같다고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엄마의 촉으로 위기 촉발을 감지했다. 그리고 청계천을 포기하고 위쪽 대로변을 쭉 흝었다. 내 레이더 안에 버거킹간판이 포착됐다. “저기 버거킹이 있다. 어서 뛰어!” 우리 셋은 쏜살같이 달려서 버거킹에 도착했고, 둘째는 허겁지겁 화장실 쪽으로 뛰어갔다.
‘휴, 진짜 큰 일어날 뻔했다!’ 입구에 서서 둘째 녀석이 화장실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자,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얼른 입구옆에 제일 가까운 의자를 당겨서 주저앉았다. 그리고 창가 쪽으로 당겨 앉아서 숨을 골랐다. 서서히 창밖 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청계천이 생기면서 이 근처 풍경도 많이 바뀐 것 같았다. 우리 바로 건너편에는 전체가 통유리로 된 빌딩이 있었다. 이 새 건물은 뭐지 하고 간판을 찾다가 ‘HIKR’라는 간판을 봤다. ‘HIKR 어디서 봤는데?’ 그러다 번쩍 생각이 났다. ‘맞아 큰 애 캠프 일정표에서 분명히 봤어.’ HIKR란 낯선 이름을 보고 여기는 뭐지라고 갸우뚱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갑자기 흥분돼서 남편에게 물었다. “저기 큰애 캠프일정에서 HIKR보지 않았어?” 내 손가락을 쫓더니 남편 눈이 동그래지면서 대답했다. “어 맞아, 봤어! 이게 여기 있었네.”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남편의 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거짓말처럼 그 건물안쪽에서 하늘색 셔츠를 입은 애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어머! 저기, 저 셔츠! 맞아. 큰 애가 체크인하고 받았던 그 단체복, 딱 저 색깔이었어!” 이 모든 일들이 너무 말이 안 되게 정확히 딱딱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영화의 대본도 이렇게 썼다가는 너무 작위적이라고 욕을 먹을 것이다. 초현실적인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아서 “설마 큰 애가 지금 저기 있는 거 아니겠지?”라고 남편에게 물었다. “설마?” 남편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말도 안 된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냐, 내 기억으로는 큰애그룹은 HIKR가 첫날 일정은 아니었어”라고 덧붙였다. 그래, 그럼 말도 안 되지. 그럴 확률은 0.0001%도 안되지. 서울에서 이 서방 찾기란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내가 하고 있었다. 고작 열명남짓의 주인공들만 사는 허구의 드라마 세상에서나 가능한 그런 우연의 일들을 말이다.
그리고 십 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화장실에서 나오는 둘째를 보고 의자에서 일어서는 참이었다. 갑자기 내 눈에 유리창너머로 샛노란 머리가 확 들어왔다. “아니, 재? 저 노랑머리? 재 큰애 아니야?” 창밖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황급하게 남편과 둘째를 불렀다. 큰 애는 한국오기 며칠 전에 갑자기 노랑머리로 염색을 했다. 나는 샛노란색이 맘에 안 들었지만, 무서운 사춘기 녀석 눈치 보며 사는 처지라 아무 말도 못 했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 샛노랑머리가 그날 그 장면에서 말도 안 되게 튀어나온 거다. 0.0001%도 포기하지 말라는 듯이.
순간 우리 셋의 눈이 마주쳤고, 뭐라 얘기할 것도 없이 동시에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열심히 달려서 횡단보도에 다다랐지만 빨간 신호등에 멈춰야 했다. 그 순간 우리의 드라마는 클라이맥스로 치닿고 있었고, 클라이맥스의 고조를 위해 투입된 신호등은 엄청 길었고, 우리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신호등이 바뀌어 열심히 달려갔지만, 그 사이 노랑머리는 사라졌고, 하늘색셔츠를 입은 몇몇 아이들만 주차된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불행히도 버스는 아주 까맣게 선팅이 되어서 안쪽을 전혀 볼 수 없었다. 클리세란 클리세는 모두 다 갖다 쓴 아주 모범적인 드라마였다. 우리 셋은 허탈한 마음으로 버스의 까만 유리창을 올려다보며 왔다 갔다 서성거렸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탑승하자 4대의 버스는 곧 출발했다. 그 캠프의 300명 중에 노랑머리가 큰애 하나는 아니겠지? 큰애가 맞았어도 버스에서 길가 쪽이 아닌 반대쪽에 앉았으면 우리를 못 봤겠지? 떠나가는 버스를 바라보는데 기운이 쫙 빠졌다. 그리고 우리는 터벅터벅 다시 광화문 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광화문사거리를 건너서 세종문화회관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내 핸드폰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렸다. 큰애의 문자였다. “나 방금 엄마 아빠 봤어요” 짧은 문자와 함께 버스안쪽에서 우리를 찍은 사진을 보냈다. 우리 셋은 그제야 완벽한 드라마의 마지막 씬처럼 마주 보고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 살다 보면 우리는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우연들과 만난다. 어떤 우연은 정말 필연인양 일어난다. 그날, 남편이 DMZ투어를 고집하지 않았다면, 내가 투어버스 정류장을 시청으로 고르지 않았다면, 투어 후에 청계천을 안 갔다면? 둘째 녀석이 갑자기 배가 아프지 않았다면? 우리가 버거킹에서 창가 쪽이 아니라 안쪽자리에 앉았다며? HIKR 전면이 유리창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주 전에 큰애가 머리를 노랗게 염색을 안 했다면? 우리는 천만명이 사는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날 그렇게 큰애와 마주칠 수 있었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조건들이 모두 성립해서 우리 가족은 그날 헤어진 지 24시간도 안 돼서 다시 상봉했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고 했던가? 그날 우리는 다시 가족으로 만나야 할 운명이었나 보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전 날 큰애를 혼자 캠프에 떨어뜨리고 오면서 불안했던 내 마음. 혹시 8년 전처럼 큰 애가 캠프를 뛰쳐나가면 어쩌나, 이번에는 시애틀이 아닌 낯선 서울인데, 서울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 간절한 내 마음이 어딘가 전해져서 이런 우연을 만들었을까? 운명을 믿지 않지만, 살면서 겪는 이런 신기한 경험들은 나를 미세한 원자처럼 아주 작게 만든다.
우리 우연의 만남은 그날이 끝이었다. 그 대신 나와 내 남편은 캠프 둘째 날부터 재외동포청에서 매일 업데이트하는 활동사진들 속에서 큰 애를 찾았다. 저 멀리 건너편 건물 안에서 노랑머리를 찾았듯이 우리는 300명 아이들 속에서도 어김없이 큰애를 찾아냈다. 다행히도 큰애는 이번 캠프에서 세계곳곳에서 온 또래의 아이들과 만나서 교제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했다. 이번에는 뛰쳐나가는 대신 재미있게 즐겼고, 그래서 내년에도 다시 신청하겠다고 한다. 큰애가 한국커뮤니티에 다시 발을 들일 수 있게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해 준 재외동포청에 정말 감사를 표한다. 더불어 재외동포로서 받은 이 큰 혜택을 큰애가 나중에 커서 언젠가 보답을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