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이 한국에 도착하면서, 소중했던 자유부인의 한주가 막을 내렸다. 우리 셋은 서울의 한 에어비앤비에서 일주일을 묵기로 했다. 요즘은 한국에도 호텔 외에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들이 많아졌다. 장기간 아이들과 묵기에는 답답한 호텔방보다 거실과 부엌이 있는 숙소가 편리했다. 여러 지역을 기웃거렸지만 친근한 동네 쪽으로 자꾸 눈이 가졌다. 내가 익숙한 지하철 4호선을 따라가다 한성대입구의 한 숙소를 보게 됐다. 방 2개, 침대 2개, 세탁기와 건조기 구비, 지하철역과 5분 거리. 내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방이 있었다. 숙소사진들을 넘기다 발견한 한양도성과 혜화문 사진이었다. 그 사진들을 본 순간 다른 곳을 더 찾을 이유가 없었다.
한성대입구는 대학시절 버스 타고 매일 지나갔던 곳이었다. 내가 내리던 정류장에서 겨우 두 정류장 거리였지만 한 번도 그 동네에 가본 적은 없었다. 30년 전에 매일같이 지나갔던 이 동네를 이번에야 처음으로 알게 됐다. ‘가지 않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했던가? 이번에 서울에서 내가 놓친 수많은 길들 중에 하나인 성북동 골목길을 걷게 되고 알게 돼서 너무 행복했다.
우리의 보금자리였던 이 동네로 가는 길은 이렇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나폴레옹과자점을 지나서 동네입구로 접어든다. 작은 골목 오른쪽에는 고소한 짜장면이 일품인 중국집이, 왼쪽으로는 김치와 삼겹살의 조화가 예술인 솥뚜껑 삼겹살집이 보인다. 조금 더 걸어가면 작은 삼거리가 나온다. 그 모퉁이에는 우리 애들이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들락거렸던 편의점이 있다. 그 삼거리를 지나 안쪽으로 더 올라가면 작은 공방들과 찻집, 갤러리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갤러리를 끼고 왼쪽으로 꺾어지면, 예사롭지 않게 가파른 계단과 만나게 된다. 무더위에 이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힘들었던 아이들은 지옥의 계단이라고 불렀다. 지옥의 계단답게 계단의 맨 끝은 높은 하늘과 맞닿아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난 처음부터 이 지옥의 계단에 이유 없이 끌렸다. 이번 여행 중 어느 도시를 가든 골목길을 찾아 헤맸었는데, 계단은 마치 골목에 따라오는 별책부록 같았다. 정겨움에 힘겨움이 보태지면 신기하게 정겨움이 두세 배로 극대화됐다.
이 지옥의 계단을 열심히 올라가면, 생뚱맞게 한양도성이 거기서 나온다. 예전에 수원성과 한양도성의 다른 구간에서 성곽을 봤지만 이렇게 골목 안쪽에 빌라들과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생활형 성곽은 처음 봤다. 그리고 그 성곽은 생활형답게 무수한 세월에 걸쳐 수선된 흔적이 역력했다. 까맣게 어두운 톤의 돌에서부터 최근에 메꿔진 것 같은 하얀색 돌들까지 다양한 쉐이드의 돌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곳은 그런 동네였다. 모두 똑같이 짜 맞춰지지 않은, 각양각색의 삶들이 조화를 이룬 그런 동네. 아침에 문을 열고 나서면, 그 한양도성이 매일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나는 일주일 동안 새벽마다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시차 때문에 새벽에 눈이 떠져서 나가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동네 풍경에 흠뻑 빠져서 새벽이면 눈이 번쩍 떠졌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 친정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에서 오래 살아서 아파트 동네에 익숙하다. 그런데 이 동네에는 아파트가 하나도 없고 주택과 빌라들만 있다. 일단 그 점이 나를 매료시켰다. 주택들도 백 년이 훌쩍 넘어 보이는 전통한옥에서부터, 도시화 초기에 지어진 오래된 단독주택과 연립주택, 언덕 위의 성냥갑 같은 판잣집, 그리고 최근에 지어진 다층빌라들까지 아주 다양한 형태들이 사이좋게 모여 있다. 동네전체가 현대건축 역사박물관이었다.
내가 새벽마다 즐겼던 산책코스가 있다. 숙소에서 나와서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왼쪽으로 보이는 첫 번째 골목으로 꺾어지면, 옛날에 사대부가 살았을 것 같은 한옥의 고즈넉한 담장이 보인다. 그 한옥집은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한 티가 전혀 안 나는데, 너무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 있어서 볼 때마다 신기했다. 세련된 현대식 한옥도 좋지만 오리지널만이 가진 기품은 흉내내기 힘들다. 이 집에는 그런 품격이 느껴졌다. 아마도 한 집안에서 자자손손 꾸준히 관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한옥담장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번쩍거리는 유리건물에 눈이 부신다. 한옥담장 바로 옆에 딱 붙어 있는 이 이웃집은 4층짜리 사방이 유리로 신상빌라이다. 그 두 이웃집은 높이의 단차뿐만 아니라 재질의 이질감, 색채톤의 부조화등 여러 면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그 광경이란 마치 희귀한 흑백 조선시대사진에 현대적인 컬러사진을 오려서 포토샵으로 붙인 신선한 콜라주 같았다.
그 빌라를 지나서 내리막길을 걷다 보면 작은 사거리와 마주한다. 그 사거리 모퉁이에는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한양도성보다도 높은 거대한 담벼락이 위협적으로 서있다. 그리고 그 담벼락집을 더 웅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담벼락 위로 기개 있게 솟아오른 휘어진 소나무였다. 애국가 2절에서 묘사되는 소나무가 딱 저런 모습일 것 같았다. 저택의 왼쪽으로 나있는 반들반들 윤기 나게 새로 올린 솟을대문까지, 이 집에는 대부호가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 대부호집을 뒤로하고 걷다 보면 길은 다시 오르막으로 바뀌고 언덕 위에서 아주 오래된 연립주택과 만나게 된다. 그 연립주택은 언덕 맨꼭대기에서 세월의 풍파를 직격탄으로 맞은 듯 힘들게 서 있었다. 건물 측면은 페인트칠이 벗겨져서 너덜거렸고, 정면은 낡은 베란다에서 흘러나온 녹물과 구정물로 얼룩져 있었다. ‘이 건물은 내 나이정도 됐으려나?’ 나는 갑자기 녹록지 않은 현실로 돌아온 것 같이 마음이 착잡했다. 그렇지만 놀라운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 뒤로 공간이 더 있는 것 같아서, 호기심에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섰을 때, 내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에 압도되어 입이 딱 벌여졌다. 푸르름과 싱그러움이 한가득인 정원이 양옆으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그 입구에는 새벽이슬을 머금은 아름드리 능수화덩굴이 제일 먼저 나를 반겼다. 건물뒷면을 따라 가지런히 놓인 화단에는 수국, 해바라기, 장미 등 갖가지 꽃들이 소담하게 피어 있었고, 반대편에는 아담한 담장을 따라 에메랄드 골드 측백나무가 나란히 심어져 있었다. 어딘가에서 들리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초록 잎사귀 사이로 부서지는 영롱한 아침햇살까지, 천국이 따로 없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정성스럽게 정원을 가꾸는지 궁금해졌다. 한 번도 그분과 마주치지 못했지만, 왠지 그 분도 이 정원을 누군가와 나누는 걸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 후 이곳은 일주일 동안 나만의 비밀공간, 새벽 쉼터가 되었다.
25년 전에 친구와 함께 유럽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 여행의 목표는 최단시간에 더 많은 도시들을 방문하는 거였다. 다분히 빨리빨리 민족근성을 보여주는 여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히 수박겉핧기식 여행이었다. 여행에 대한 기억은커녕, 방문했던 도시들 이름조차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 뭐든 오래 겪어봐야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장소도 마찬가지이다. 거기서 살면서 겪어봐야만 그 장소를 알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요즘 ‘XX 얼마살기’가 유행이라고 들었다. 우리 생활에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는 좋은 증거일 거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나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하고 싶다. 그리고 이번에 성북동살이로 첫 스타트를 끊었다. 아이러니하게 나의 고향인 서울의 한동네에서 시작하게 됐다. 그렇지만 성북동은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도 더 새롭고 매력적이었다. 성북동만이 가진 세월의 흔적이 정겨웠고, 다양한 형태의 삶들을 모두 품고 있는 넉넉함이 좋았다. 하지만 다 가보지 못한 골목들이 너무 많았다. 한주는 너무 짧았다. 다음에는 한 달 살기를 꼭 하고 싶다. 그때는 한양도성을 따라 숙정문까지 걸어가고 싶다. 그리고 그 길과 맞닿은 다른 동네들과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