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하철 풍경이다. 20대 시절 나의 하루는 지하철로 시작해서 지하철로 끝났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와 비슷한 이유로 지하철에 오른 수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미국으로 떠난 후 지하철과 멀어졌다. 그런데 이번 방문 때 지하철을 자주 이용했다. 아이들도 이제 다 커서 지하철 타기가 수월했다. 특히 이번에는 공항에 갈 일이 많았는데,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운전을 부탁할 필요 없이 직행 공항철도로 빠르게 갈 수 있어서 너무 잘 이용했다.
그 사이 지하철 풍경도 사뭇 많이 달라져 있었다. 책을 보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모두들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물론 이 모습은 전 세계 어느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미국의 어느 지하철에서 보지 못한 특이한 풍경들과 만나게 됐다. 하루는 지하철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건너편에 앉은 젊은 여성의 앞머리에 그루프가 말려 있었다. 그 순간 마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 것처럼 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는데 말이다. ‘설마? 깜빡 잊고 못 뺀 걸까? 그렇다면 내가 가서 알려줘야 하나?’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모두들 각자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만 이상한 건가? ‘ 아줌마의 오지랖을 꾹 참고 몇 정거장뒤에 그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더 많은 구르프여성들과 마주쳤고, 그 여성들은 지하철밖에도 존재했다. 어느 날은 친구를 만나러 카페에 들어갔는데 그 카페 한가운데 그루프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 건너편에는 한 남자가 앉아있었고, 그 둘은 그루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머,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이번에는 확실히 문화충격을 먹었다. 이번에도 카페 안의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내 눈에만 그 그루프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카페에서 나는 완전히 이방인이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신기한 풍경도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콤팩트를 두드리는 건 뭐 아니겠도 아니다. 그 정도는 30년 전에도 있었으니까. 아이섀도를 칠하고 립스틱을 바르는 정도도 귀엽게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어느 날 복잡한 지하철에서 메이크업샵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한 여성이 속눈썹을 핀셋으로 떼어서 눈가에 붙이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평생 속눈썹을 내가 직접 붙여본 적이 없다. 내 평생 딱 한번 속눈썹을 붙인 적이 있는데, 바로 결혼식날이었다. 그것도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도움으로 붙였던 게 전부이다. 그래서인지 그날 그 풍경은 너무 놀라웠다. 그녀는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 안에서 지하철의 들썩거림에도 아랑곳없이 가느다란 속눈썹을 하나씩 떼어서 정성스럽게 눈에 붙이고 있었다. 그 공간에 오롯이 자기만 존재하는 듯 엄청난 집중을 쏟아부으며. 무례한 줄 알면서도,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외줄 타기를 보듯이 혹여 핀셋이 눈을 찌르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으로 손에 땀까지 났다. 내 응원에 힘입어 그녀는 마침내 눈썹부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휴!' 마치 내가 작업을 마무리한 듯 홀가분해졌다.
그녀들의 입장이 돼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이런 풍경은 여성들이 다른 이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우리 때도 앞머리는 자존심이었다. 헤어스프레이로 앞머리를 닭벼슬처럼 꼿꼿이 세우는 게 유행이었다. 대학 MT때 밤새 술을 마시고도 다음 날 헤어스프에이로 정성껏 앞머리 지켰던 우리 세대. 앞머리는 우리의 자존심이었으니까. 신기하게 앞머리 자존심은 여전히 유효한가 보다. 그 자존심만 지킬 수 있다면 어느 장소든 상관없다. 그리고 이동 중인 지하철보다 더 효율적인 장소는 없을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이상,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 눈치 안 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내는 당당함. 나는 부럽다.
사실 미국에 와서 제일 부러웠던 부분이 바로 미국사람들의 당당함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말든 자기 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체형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는다. 그 자신감이 너무 넘쳐나서 어떨 때는 역효과를 일으킬 때도 있다. 보는 사람이 민망할 때. 그런데, 그것도 다분히 주관적인 내 생각인 것 같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이곳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전혀 거슬려하지 않는다. 나도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풍경에 눈 꿈적 안한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에 와서 나는 그 자신감을 한국청년들에게서 봤다. 그들이 이렇게 말한다. 내 앞머리는 중요하니까, 효율적인 게 우선이니까, 화장을 집안에서만 하라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는 거 없는데 왜 눈치를 봐야 하지? 나는 드디어 집밖으로 나온 구르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드디어 한국도 타인의 눈치 안 보는 세상이 되었다. 치하철에서 구르프를 할 용기, 나는 없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그 당당함은 응원하고 지지한다.
한국을 떠나기 전날 나는 다이소에 가서 핑크색 그루프를 하나 샀다. 어젯밤에 머리를 감은 후 앞머리를 말아봤다. 양치질하던 둘째 녀석이 그 모습을 보고 눈이 동그래지더니 “You are so Korean!” 그 녀석 눈에도 당당한 그루프여성들이 눈에 띄었나 보다. 나는 멀리서 매일밤 소심하게 그루프여성들에 동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