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 첫 번째 일정은 외할머니를 뵙는 거였다. 우리 할머니는 이 년 후면 꼭 한 세기를 살게 되신다. 100세 시대의 산 증인이시다. 할머니를 뵙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한 게 벌써 20년째다. 할머니는 ‘너 이번에도 틀렸어’라고 비웃는 듯이 거기 앉아 계셨다. 내 기억 속에 할머니의 등은 늘 기역자로 꺾어져 있었다. 그 굽은 등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평생 소처럼 일만 하신 우리 할머니의 훈장이다. 그 사이에 할머니의 훈장은 더 도드라지게 솟아 있었고, 다른 모든 뼈들도 얇디얇은 살갗 위로 앙상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 손이 닿으면 금방이라도 부서져서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지실 것 같이 할머니는 그렇게 아스라이 침대에 계셨다.
낙상을 몇 번 하셔서 걷지 못하시고 이빨이 없으셔서 드시지도 못하고 청력이 안 좋으셔서 대화도 못 나누신다. 신체의 모든 부위가 고장이 나서 안 아픈 곳이 없지만, 할머니의 정신은 여전히 총명하시다. 낙상하시기 전까지는 잠시도 집에 못 계시고 바깥으로만 돌아다니셨던 분인데, 그 바쁜 마음이 이제는 망가진 육신에 꼼작 없이 갇혀서 하루 종일 뻐끔뻐끔 한숨만 쉬고 계신다.
나에게는 또 다른 할머니가 계신다. 샌프란시스코에 계시는 내 남편의 할머니. 우리 할머니와 동갑인 시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신다. 아직 초기여서 가족들은 알아보시지만,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지셨다. 그런데 몸은 특별히 아픈 데가 없으셔서 지팡이를 짚고 스스로 걸어 다니신다. 우리 외할머니와는 정반대로 몸은 멀쩡하신데 정신이 먼저 고장나신 경우다. 요즘 주위에서 치매로 고생하는 가족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내 존재조차 인지 못하는 채 내 몸이 계속 영위된다는 것 , 그 건 진정한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 병들 중에 제일 끔찍한 병인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외할머니를 뵈니 외할머니상황이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좁은 방구석 갇혀서 온몸으로 고통과 회한만 느끼며 견뎌내고 계시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를 뵙고 오면서 나는 노년의 시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마지막 장. 100세 시대를 맞아서 오래 산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수명이 늘어났다는 건 곧 쇠약하고 아픈 시기가 늘어났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아무리 건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이라도 돌봄이 필요한 시기와 마주하게 된다. 나도 그 시기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그 시기를 보내고 싶은지, 또 그를 위해서는 어떤 준비들을 해야 하는지, 할머니방문은 내게 풀어야 할 숙제를 남겼다.
내 시할머니는 치매가 확정된 후 상주 간병인을 고용해서 본인의 집에서 계속 지내고 계신다. 시할머니는 치매가 오기 전까지 굉장히 건강하셨고 독립적이셔서 90대의 연세에도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사셨던 분이다. 우리가 놀러 가면 본인이 손수 점심을 차려주셔서 나는 늘 몸 둘 바를 몰랐었다. 그런 성정이기에 죽는 날까지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집에서 인생을 마치고 싶어 하셨다. 시할머니는 젊으셨을 때부터 노후준비를 차곡차곡 열심히 하셨단다. 평생 준비해 둔 노후연금과 적금등으로 간병인의 경비를 모두 충당하고 계신다. 치매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계획하신 대로 인생의 마지막 장을 ‘나’ 답게 살고 계신 것이다. 병에 걸리고 말고는 우리 선택 밖의 영역이다. 하지만 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선택할 수 있다. 인생 말년에 주어진 그 최소한의 자유를 시할머니는 누리고 계신다. 지난해에 방문해서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햇볕 따뜻한 마당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가 누구 아들이라고?” 큰 애를 가리키며 똑같은 질문을 1시간째 하고 계셨지만, 가족들을 둘러보며 입가에 엷은 미소가 끊이지 않으셨다. 참 편안해 보이셨다.
내 외할머니는 큰 이모가 모시고 계신다. 가족에게 돌봄을 받고 계시니 우리 할머니도 참 축복받으신 분이다. 한국도 요즘은 가족구조 생활양식의 변화에 발맞춰서 요양원, 요양병원이 많이 생겼고 이용률도 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정서는 발 빠른 시대의 변화를 못 쫓아가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어르신들이 여전히 요양원에 가는 걸 현대판 고려장처럼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것으로 생각하신다. 우리 할머니 사례만 봐도 그렇다. 8년 전에 낙상을 몇 번 하신 후 가족들이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셨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곳을 너무 싫어하셔서 그곳에서 못 나가면 그냥 죽겠다고 식음을 전폐하셨었다. 그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던 큰 이모가 할머니를 모시고 와서 지금까지 보살피고 계신다. 그때 큰 이모의 큰 결심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번에 할머니를 뵐 수 없었을지 모른다.
내가 마지막으로 찾아뵌 날 할머니는 어서 가라고 내 등을 떠미시며 끝내 눈물을 훔치셨다. 나는 한 줌밖에 안 되는 할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숨 쉬는 모든 순간이 고통뿐인 삶, 그렇지만 할머니는 오늘도 그 작은 방 안에 홀로 앉아서 버텨내고 계실 것이다. 나는 외할머니를 다시 뵐 수 있을까? 그 건 전적으로 할머니에게 달려있다. 더 견디며 더 살아내시는 것도, 반대로 붙잡고 있던 그 무언가를 그만 놓아주는 것도 순전히 할머니에게 달려 있다. 내가 할머니를 다시 뵐 수 없더라도, 할머니가 떠나시는 날 마음속의 모든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