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싶지 않다고요!

똥고집 배변훈련기

by 헬레나

이제 2주 후면 우리 둘째는 세 살이 된다. 둘째들은 위의 형제들한테 보고 배우는 게 많아서 뭐든지 첫째들보다 빨리 배우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둘쨰도 첫걸음마도 숟가락질도 말도 빨리 배웠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도 똘똘하다고 칭찬하신다.


그런데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에 살았다면 정말 여기저기서 너무 늦었다고 난리들을 쳤을 것이다. 개개인의 차이를 아주 존중하는 미국에 살고 있으니 망정이지. 그런데 미국기준으로도 기저귀 떼는데 세 살을 넘기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우리도 몇 달 전에 처음으로 시도했었다. 나는 몇 번을 계속 속옷에 쉬하는 아이를 다그쳤고, 둘째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급기야 엉엉 울어대며 이렇게 말했다.

“나 안 할래! 나 크고 싶지 않아. 그냥 베이비로 있을 거야!"

어린 아이한테 스트레스를 너무 줬다는 죄책참에 일단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주변의 둘째 친구들이 하나 둘 기저귀 떼는 걸 보고 내 마음이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둘째 녀석은 몇 개월째 화장실에 방치된 변기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아니 우리 애만 너무 뒤처지는 거 아냐. 저러다 유치원 갈 때까지 못 떼면 어떡하지?' 온갖 걱정거리가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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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느 날 나는 가족의 무슨 큰 행사인 냥 기저귀 떼기날을 선포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 휴일이지만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온 가족이 기저귀 떼기에 집중하기로 하고 아침부터 거실에 모여 앉았다. 둘째가 좋아하는 레고장난감과 갖가지 간식들을 준비해서 테이블에 쭉 진열시켜 놓았다.


"처음으로 변기에서 쉬하면 프렌치파이 줄게."

"그리고 두 번째로 성공하면 카스타드도 먹을 수 있어."

"세 번째로 성공하면 그때는 이 큰 레고장난감이 네게 되는 거야."

둘쨰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전시된 뇌물들을 하나씩 만지며 신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제 세 살인데, 설마 이렇게 많은 뇌물을 준비했는데, "

그렇게 나는 이번에는 꼭 성공하리라 믿었었다. 그렇지만 아주 안일한 생각이었다. 아니 무슨 애가 고집이 센 건지 감각이 둔한 건지, 매번 속옷에 싸고 난 후 내게 알리는 것이다. 오늘따라 유별나게 응가도 네 번이나 하는 통에 기저귀가 동이 날 지경이었다.


하루 종일 세탁기를 돌리며 아무래도 장기전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들었다. 형제들끼리 비교는 절대 안 된다는 철칙을 잘 알면서도, 두 번의 실수 후 바로 기저귀를 뗀 첫째가 떠올랐다. 기저귀 떼기가 이렇게 힘든 건지 첫째 때는 몰랐었다. 정말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들이 달라도 너무 다르구나라고 다시 느꼈다.


둘째가 워낙 새로운 변화를 싫어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그냥 변화가 싫어서 대항하는 게 거의 흥선대원군 수준이다. 한 번만 성공해 보면 그 느낌을 알 텐데, 무슨 똥고집인지 가르쳐주는 대로 해보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둘째와 실랑이하느라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었다. 먹방인 우리 둘째도 하루종일 내 눈치 보느라 힘들었는지 저녁밥을 거의 다 남겼다. 그런 모습을 보니 더 짠하고 안스러웠다.


이렇게 기저귀 떼기는 다시 실패로 돌아가고 잠자리 들기 전에 다시 기저귀를 채워줬다.

풀이 죽어 있는 것 같은 둘째가 안쓰러워 이렇게 물었다.

"엄마 얼마만큼 사랑해?"

"Nine"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 질문을 던질 때마다 우리 둘째는 한결같이 9라고 대답한다.

내가 엄마는 백만 번 사랑하는데라고 하면 백만은 숫자가 아니란다. 괴이한 세 살 배기의 논리이다.

매번 얄짤없이 9라고 대답하는 아주 짠 녀석. 오늘 하루종일 엄마가 힘들게 해서 5 정도로 내려갔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9라고 대답해 쥐서 고마웠다.


'둘째야 어서 기저귀 떼고 자유롭게 다니자. 그래야 어린이집에서도 형아반으로 옮기지. 그래서 더 재밌고 새로운 거 많이 배워야지. 기저귀에 왜 이리 의존하는 거니?' 맘속에서 이 말들이 치고 올라왔다. 그렇지만 꾹 참았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든다. 하루 이틀 아니 몇 달 더 기저귀 찬다고 문제 될 건 없다. 설마 5살에도 기저귀를 차고 있지는 않겠지? 설마?? 아이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과 속도에 맞게 큰다. 그저 엄마의 조바심이 문제이다. 오늘도 참을 인자를 가슴에 새기며 피곤한 몸을 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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