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들이 한국에 도착해서 일주일정도 지났을 때였다. “엄마, 여기는 왜 만나는 사람마다 돈을 주는 거예요?” 큰아들이 물었다. 아이들의 마지막 한국방문은 8년 전이였다. 오래만의 방문이라 우리는 많은 친지들과 친구들을 만났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애들한테 용돈을 줬다. 한두 명이 아니고 보는 사람마다 돈을 주니 좋으면서도 그 이유가 궁금했었나 보다. “응 한국의 문화야. 어른들이 아이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용돈을 주곤 해.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기억해야 될 게 있어. 나중에 네가 어른이 되고 네게 용돈을 줬던 어른들이 나이 드시면 그때는 네가 그 어른들에게 용돈을 줘야 한단다. 그게 너무 당연한 거겠지?”라고 덧붙였다. “어, 그렇지. 참 좋은 문화네.”라며 큰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방문을 통해서 두 녀석은 서로 주고받는 정, 한국의 독특한 관계의 미학을 몸소 체험했다.
두 녀석은 제법 모아진 용돈을 쇼핑에 다 썼다. 한국의 패션스타일이 맘에 드는 건 물론이고, 시애틀에 비해 물가가 훨씬 싸다며 자기가 원하는 옷이며 신발이며 십원도 남김없이 다 쓰고 왔다. 미국에서는 백투더스쿨 쇼핑이라고 개학 전에 필요한 모든 용품을 사는 쇼핑 특수 시즌이 있다. 어차피 시애틀에 돌아가면 해야 할 쇼핑을 한국에서 애들이 받은 용돈으로 대신하니 남편도 무척 좋아했다. 구두쇠인 남편한테는 돈이 굳은 것이다. 그런데 이건 돈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 남편도 이번에 한국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확실히 체험했다. 가는 곳마다 받은 지극한 환대에 황송해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제주의 에메랄드빛 바다도, 경주의 유구한 문화유적지도 아닌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들이었다고 남편이 말했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면 한국사람들의 이런 정이 가끔 그립기도 하다. 어떨 때는 넘치는 오지랖으로 선을 너무 넘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서로 챙겨주는 모습에서 확실히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그에 비해서 미국사람들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고 매우 독립적이다. 그래서 가족끼리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부모품을 떠나면 그들의 관계는 아주 동등하게 바뀐다. 보통 고등학교 졸업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그 후로 서로 방문하긴 하지만 땅덩이가 워낙 넓다 보니 자주 만나기도 쉽지 않다. 부모집에 방문해도 자신들의 식사는 스스로 알아서 챙긴다. 가족이 외식을 함께 나가도 보통 각자 더치페이를 한다. 각자 자신을 것을 챙기고 상대에게 부담을 안주는 것이 그들의 미덕이다. 서로 안 주고 안 받으니 간단하고 편하긴 한데, 한국사람인 나는 너무 정나미가 없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런 문화에 익숙한 남편이다 보니 한국에서 계속 받기만 한 것이 불편했나 보다. 그래서 대접을 받고 나면 꼭 하는 말이 있었다. “다음에 꼭 시애틀에 놀러 오세요. 놀러 오면 저희 집에서 꼭 묵으셔야 합니다” 이런 게 바로 인지상정이다. 받았으면 주고 싶은 마음. 미국사람 내 남편도 이번 여행을 통해 주고받는 인간관계의 맛을 알게 됐다.
그리고 순전히 내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나라 간의 차이로 비교했지만, 사실 이것은 개인적인 차이, 개인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최소의 인간관계로 좀 더 독립적인 삶을 원할 수 있고 다른 이들은 많은 인간관계를 통해 풍성한 교류를 원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이다. 나는 확실히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교류하는 삶이 좋다. 그리고 알고 보니 내 남편도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서로 챙겨주는 인간관계를 무척 좋아했다. 우리는 시애틀로 돌아와서 우리가 받은 만큼 복수해 줄 수 있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어서 놀러 오기만 하세요. 시애틀의 잠 못 드는 밤을 실컷 보여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