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앞으로 10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by 헬레나

친구들아 안녕,


왜 학창 시절 친구들은 40년이 흐른 뒤에도 옛날 모습 그대로 보이는 걸까? 이 주제는 진짜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 같아.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껴서 제대로 못 보듯이, 우정의 콩깍지도 비슷한 효능이 있는 거 같아. 아니 오히려 효능이 더 강력하지. 우정의 콩깍지는 유효기간이 엄청 기니까. 적어도 나의 콩깍지는 아직까지도 성능이 강력하더라. 40대에는, ‘그래, 요즘 40은 청춘이니까’라고 그럴 수 있지 했었어. 그런데 이제 우리 나이 50대 중반, 확실히 시각적인 노화가 시작되는 나이이잖니? 그렇지만 이번에도 너희들은 역시나 그대로더라. 옅게 생겨난 주름살도, 염색을 뚫고 나온 희끗한 속머리도 너희 모습을 감출 수는 없었어. 참 신기하지? 우리 애들이 이 말을 들으면 “뭐래?”라고 콧방귀를 뀔 거야. 그들에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외계인의 말처럼 들릴 테니까.


우리 못 본지 3년이나 됐는데 바로 어제 자율학습 땡땡이치고 정글짐에 봤던 것처럼 수다가 끊이지 않았지. 아침 일찍부터 만나서 커피 마시고, 점심을 함께 먹고, 또다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수다 떨다가, 그 새 허기가 져서 저녁을 같이 먹고 맥주 한잔까지 나누고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헤어졌지. 그렇게 하루 종일 내내 붙어 있었는데도 무슨 아쉬움이 남았는지 인사한 후에도 자꾸 뒤를 돌아봤어. 하루 종일 너희랑 함께 한 그날 나는 너무 행복했다. 울고 웃고 떠들던 그 하루가 오래 기억에 남을 거야.


자리를 옮길 때마다 우리는 서로 자기가 내겠다고 다퉈서 결국은 순번을 정해야 했지. 서로 더 못 챙겨줘서 안달인 내 친구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서 세세한 일상의 무거운 짐들과 상처들을 다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너희 눈빛만으로도 다 알겠더라. 너희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 아무리 힘들어도 아침에 또 일어나서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지. 쑥스러워서 사랑해란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못 꺼내지만, 헤어질 때 어색한 너희 몸짓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보고 보고 또 봤는데도 떠나면서 아쉽구나. 떠들고 또 떠들었는데도 다 못한 이야기들이 한 보따리구나. 다음의 만남을 위해 미련을 남겨두고 나는 이제 떠난다.


너희 중에 누군가가 말했지? “우리 이제 앞으로 10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때 한참 각자 학창 시절의 방황들을 토로하며 격양되어 있었잖니. 그런데 그 갑작스러운 질문에 젊은 날의 고뇌는 산산이 부서지고 현재로 뚝 떨어져 버렸지. 40년이란 엄청난 시간의 순간이동으로 우린 모두 멍해졌어. “그렇네. 이제 우리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누군가 덤덤하게 말했어. 그 순간 슬픔이 몽글몽글 올라왔어. 와인의 취기까지 더해져서 나를 더 멜랑꼴리하게 만들었다.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책임감들과 씨름하며 오늘도 열심히 사는 친구들아, 만나서 너무 반가웠어. 삶은 녹녹지 않지만, 그저 살아내다 보면, 가끔씩 이런 선물을 선사하는구나. 그리고 이런 선물들로부터 힘을 얻어서 다시 나아가게 된다. 너희들을 만나서 맛있는 밥을 같이 먹고 술 한잔도 같이 나누고 사사로운 일상들의 수다를 떨며 웃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 그 선물 너무 잘 받고 나는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린 정말 앞으로 10번밖에 못 만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10번이나 남은 선물들을 아깝지 않게 즐기자. 더 욕심내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그 시간들을 이번처럼만 신나게 함께 하자. 매번의 만남이 마지막인 냥 그렇게 원 없이 즐기는 거야! 인생이 뭐 별거 있니!


사랑한다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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