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란 길다면 긴 한국방문의 여정이 끝이 났다. 남편과 두 아들은 며칠 전에 먼저 떠났고, 나는 지금 게이트에 홀로 앉아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창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 꿈같았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혼자 떠난다. 갑자기 꺼져 있던 온 신경의 스위치들이 켜진 것 같다. 눈물이 날 것 같다. 뒤로 하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몰려왔다.
어제저녁에 동네 카페에서 잠깐 봤던 친구와 헤어질 때 그 애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내가 버스에 오를 때 엄마는 애써 울음을 참아내셨다. 조금 전에 도착한 문자에는 마감 때문에 바빠서 작별인사를 놓쳐서 속상한 친구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를 떠나보내는 그들의 온 마음이 갑자기 내 마음속으로 몰아쳤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챈 듯 탑승을 시작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탑승줄에 서서 마음을 추슬러본다. 어젯밤에 슬퍼하시던 엄마를 위로했듯이, 나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친정집에서 잘 먹고 잘 쉬고 잘 놀다가 이제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남편과 두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시애틀 집으로 이제 가요. 다음에 모두 건강하게 다시 만나요’
기내식 세끼를 먹고 영화 세편을 보고서야 시애틀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한 후 공항청사 쪽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창밖으로 야광봉을 들고 지정된 게이트로 비행기를 안내하는 공항직원이 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그 공항직원을 본 순간, ‘아 미국이구나!’라고 감지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장으로 걸어가는 내내 주위에 보이는 건 온통 낯선 사람들뿐이었다. 내가 떠나온 곳 사람들과 아주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공항밖으로 나왔다. 여름답지 않게 쾌적한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나를 반겼다.
집에 들어서니, 베리가 제일 먼저 나와서 제 얼굴을 내 다리에 비벼대기 시작했다. 내가 한 달 동안 제일 걱정했던 우리 집 막내, 바로 우리 집 고양이 베리다. 이웃친구가 돌봐주긴 했지만, 혼자 두고 떠나온 게 맘에 걸렸었다. 한 달 만에 상봉한 베리를 내 무릎 위에 앉히고 머리를 귀를 등을 쓰다듬어 줬다. 베리가 보고 싶었다고 그르렁그르렁거린다. 그 소리에 내 맘이 스르르 풀렸다. 그 사이 앞마당 배나무에 배들이 주먹만 하게 커져 있었다. 부엌창가에 놓인 양란화분에는 그 새 일곱 개의 꽃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8월 늦여름 풍성한 우리 집 풍경이 나의 허기진 마음을 채워줬다. 나는 다시 시애틀로 돌아왔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그런데 나의 한 달 한국살이는 계획했던 대로 무사히 잘 치러졌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나의 여름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감사하다. 얼른 엄마한테 전화드려야겠다. 시애틀 우리 집에 잘 도착했다고 알려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