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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이준익 감독 필모에서 씻어내고 싶은 졸작.

by 뭅스타

잠깐의 공백기를 거친 후론 일 년에 한 작품씩 꾸준히 신작을 선보이고 있는 이준익 감독의 <변산>을 관람하였다. 예고편이나 포스터부터 어딘가 살짝 우려스러웠던 이 영화는 한마디로 말해 지금까지 관람한 이준익 감독의 모든 영화들 중 가장 실망스럽고, 가장 할 말이 없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게 그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얼른 영화가 끝나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게 됐던 영화랄까..

영화는 래퍼로 성공하기를 꿈꾸는 청년 학수가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10년 만에 고향 변산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한 학수는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연달아 겹치면서 어쩔 수 없이 고향 땅에 발이 묶이게 되고, 그곳에서 고등학교 시절 그를 짝사랑했던 선미를 비롯 옛 친구들을 만나며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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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무엇보다 가장 돋보이는 단점은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의 부실함 혹은 올드함이다. 복잡한 가정사 때문에 사이가 멀어진 부자 관계에서 아버지가 괜한 허세 때문에 자신의 질병을 숨긴 채 아들에게 쌀쌀맞게 대한다는 설정은 가히 10년 전에나 봤을 법한 촌스러운 설정으로 느껴지며, 결국 이 관계가 호전되는 과정 역시 진부하기 짝이 없다. 이미 둘의 갈등이 그려지는 초반부터 그 끝이 훤히 보이는 전개가 조금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채 그 길을 그대로 쭉 나아가니 그저 곤욕스러운 관람처럼 느껴질 뿐.

또 다른 문제점은 한 편의 영화에 담아내고자 한 것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점이다. 오프닝만 해도 래퍼로 성공하길 꿈꾸는 학수의 일종의 성장담 같았던 영화는 이후 전개에서 아버지와의 갈등과 화해, 학수를 짝사랑한 선미와의 로맨스, 오랜만에 재회한 옛 친구들과의 우정 등 다양한 요소들을 담아내려고 애쓴 티가 역력한데, 문제는 그 각각의 요소들이 제대로 어우러지지 못한 채 조잡한 혼종처럼만 느껴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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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학수를 제외한 모든 조연 캐릭터들은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아도 너무 많은 오지랖에 마냥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설정들까지 더해져 그저 짜증만을 유발하며, 그중에서도 과거 학수가 좋아했던 동창생 미경이나 변산의 영향력 있는 건달로 등장하는 용대의 인물 설정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대사를 통해 직접 언급하는 것처럼 어떤 캐릭터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신의 힘을 이용해 학수도 제멋대로 다루던, 그렇기에 당황스럽기만 한 용대라는 인물과 '그래, 우린 동창이니까'라는 느낌으로 급격히 웃으며 화해하는 설정이 고개를 가로젓게 만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수를 대하는 선미의 태도 또한 의문스럽기만 하다. 학수는 래퍼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갖고 열심히 준비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변산을 떠나 서울에서 사는 이유는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아내의 장례식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달 아버지 때문이다. 그런 만큼 학수가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왜 그렇게 변산을 떠나고 싶어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그런 학수에게 선미는 양아치 날라리가 되어 돌아왔다고 말한다. 과연 부인과 자식을 버리고 살아간 아버지를 아프다는 이유로 정성을 다해 간호하고 보살펴야 하는 것이 맞는 걸까. 더군다나 래퍼라는 직업은 여전히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낭비하는 직업이라는 듯한 인식이 박혀있는 듯한 대사들의 향연은 이럴 거면 왜 주인공의 직업을 래퍼로 설정한 걸까 의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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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대표작 <왕의 남자>부터 <라디오스타>, <소원>, <사도>, <동주>, 그리고 <박열>에 이르기까지 인상 깊게 본 작품들이 꽤나 많은 만큼 이준익이라는 감독은 신뢰를 갖고 차기작을 기대하는 국내 감독들 중 한 명이다. 하지만, 혹은 그렇기에 그가 내놓은 신작 <변산>의 아쉬움은 더더욱 강하게 밀려온다. 감독이 연출한 작품들은 모두 다른 각본가가 시나리오 작업을 해왔고 이번 작품 역시 그러하다. 이전까지는 꽤나 믿음을 갖고 지켜본 감독이지만,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그 자체였던 이번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쩌면 연출 면에서 호평을 받았던 그의 전작들도 결국은 그의 연출보다는 훌륭한 각본가의 시나리오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이 영화에서 남은 건 박정민 배우의 열연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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