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밋한 빌런만큼 밋밋해져 돌아온 속편.
<블랙 팬서>와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에 이어 올해에만 세 작품을 들고 찾아온 마블 코믹스의 신작이자 1편 개봉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속편 <앤트맨과 와스프>를 관람하였다. <앤트맨과 와스프>라는 제목에서부터 앤트맨의 활약이 주를 이뤘던 1편과 달리 또 다른 캐릭터 와스프와의 호흡이 중심이 되는 일종의 버디 무비 형식임을 예고한 이 영화는, 마블 영화답게 킬링 타임 용으론 손색없이 느껴지면서도 조금은 심심하기도 한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시빌 워' 사건 이후 2년째 자택 연금 중인 스캇은 오래전 양자 세계에 갇힌 행크의 아내 재닛의 메시지를 받게 되고, 이를 계기로 재닛이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된 행크와 호프는 양자 세계에서 그녀를 구해올 계획을 세운다. 한편 암시장 딜러 소니와 페이징 능력을 구사하는 고스트가 각기 다른 이유로 행크의 연구소를 노리면서 그들의 계획은 연이어 위기를 맞이하고, 스캇은 자신이 진 빚을 갚고자 다시 앤트맨으로서 활약하기 시작한다.
처음 등장한 <앤트맨>에서부터 자유자재로 크기를 조절한다는, 전무후무한 매력을 선보인 바 있는 앤트맨은 이번 영화에서도 그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며 큰 재미를 선사한다. 아이언맨이나 닥터 스트레인지 등과 마찬가지로 능청맞고 위트 넘치는 성격의 소유자인 동시에 다른 MCU 영화들의 주인공과 달리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로서의 역할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앤트맨만의 특징 또한 전편에 이어 다시 한번 크게 두드러진다.
앤트맨과 짝을 이뤄 활동하는 와스프의 활약 역시 인상적이다. 전편에서는 조금은 차갑고 까탈스러운 성격으로 그려졌던 행크의 딸 호프는 어머니를 다시 만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와스프로 활약하는 이번 영화에서 앤트맨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MCU의 다른 솔로 무비들과 달리 제목부터 하나의 캐릭터가 아닌 두 캐릭터가 함께 활약할 것임을 예고한 영화임을 감안했을 때, 앤트맨 못지않게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녀만의 개성을 발휘한 와스프의 활약은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내년 출격 예정인 캡틴 마블과 함께 앞으로의 MCU에서 두 여성 캐릭터가 어떤 활약을 해나갈지 기대하게 만들기엔 충분하달까.
다만 영화는 전반적으로 전편에 비해선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먼저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앤트맨과 와스프만의 독특한 능력은 이미 전편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기 때문인지 이번 영화의 액션은 조금 심심하게 다가온다. 그나마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액션인 카체이싱 시퀀스가 눈길을 사로잡기는 하지만, 그 또한 이미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다른 마블 영화들에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눈에 띄는 단점은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매력이 없는 빌런들의 활약이다. 올해 개봉한 두 편의 MCU 영화에 빌런으로 각각 등장한 킬몽거와 타노스가 주인공 못지않게 큰 매력을 선사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 영화의 두 빌런 고스트와 소니의 활약은 더더욱 아쉽기만 하다. 고스트는 끝끝내 그녀의 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연신 짜증을 유발하는 캐릭터로만 그치며, 또 다른 빌런인 소니를 연기한 월튼 고긴스는 존재감을 제대로 뽐낸 <헤이트풀8> 이후 <메이즈 러너 : 데스 큐어>와 <툼레이더>에 이어 이번 영화까지 그저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빌런으로 소모되어버린다는 점에서 안타깝기까지 하다.
분명 부담 없이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는 여름 영화임은 분명해 보인다. 앤트맨과 와스프만의 능력을 활용한 볼거리, 내내 유쾌한 재미를 선사하는 유머 요소들, 그리고 가족 영화로써 갖는 이 시리즈만의 개성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과연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이후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켜주기에는 다소 약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는 어쩌면 엄청난 스케일로 승부하는 <어벤져스> 시리즈 이후의 MCU 영화들에게 직면한 가장 큰 과제처럼 느껴지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