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로써의 미덕을 지킬 줄 아는.

by 뭅스타

민규동 감독이 <간신>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장편이자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을 겪은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이 영화 <허스토리>는, 자칫 감정에 호소할 수 있을 소재를 내내 담담한 시각에서 그려냄으로써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만족을 안겨준 영화였다.

김복순 할머니가 종군위안부였음을 고백하고 일본의 만행을 언론에 알린 1991년, 성공한 여행 사업가이자 여성 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정숙은 부산에 거주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고자 적극적으로 그들을 찾아 나선다. 언론에 자신들의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재판에 서는 것을 망설이던 피해자들을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고, 종숙을 주도로 한 위안부 피해 여성 단체는 일본 정부에게 마땅한 사과와 합리적인 보상을 받기 위해 6년 간의 힘겹고 치열했던 재판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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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개봉한 <귀향>을 시작으로 <눈길>과 <아이 캔 스피크>까지 위안부 소재의 영화가 해마다 개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영화는 언급한 영화들과는 또 다른 차별점을 갖는다. <귀향>과 <눈길>이 일제강점기 당시를 배경으로, <아이 캔 스피크>가 비교적 최근인 2007년을 배경으로 한다면 이 영화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간 이어진 23번의 재판을 배경으로 한다. 여기에 <아이 캔 스피크>의 초반부와 같은 코믹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채 사뭇 진지하고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것 또한 이 영화의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웃음기를 쏙 뺀 전개에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면서 이를 철저한 고증으로 그려낸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높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플래시백 등을 통해 끔찍한 사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오직 재판에서의 신문을 통해 표현한다는 점이다. 직접적인 묘사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피해 혹은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직 재판 과정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연출은 영화의 장점으로 꼽히기도 하며, 어쩌면 그렇기에 더더욱 영화가 진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더불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각각의 인물들을 묘사하는 초반부 전개를 제외하면 잔잔한 음악을 전면에 삽입하거나, 감정에 호소하는 장면을 그려내는 등 신파적인 연출을 최소화한 것 역시 이 영화의 강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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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국가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인 만큼 어쩌면 민감하고 조심스러울 수 있는 소재인 만큼 연기하는 배우들의 부담감도 상당했을 듯한데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주조연을 막론하고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낸다. 극을 이끌어가는 정숙 역의 김희애 배우를 비롯해 위안부, 정신대 피해자 여성을 연기한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배우들, 그리고 <박열>과 <군함도> 등에 이어 또 한 번 유창한 일본어 연기를 선보인 김인우, 김준한 배우의 호연은 무척 인상 깊게 다가온다. 여기에 이유영, 한지민 배우 등 예상치 못한 출연으로 반가움을 선사한 배우들의 활약 또한 인상적이다.

결국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는 영화의 가장 큰 목표이자 가치는 `영화를 통해 그 사건에 대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관심을 갖게 만드는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6년 간 무려 23번의 걸쳐 진행된 재판이자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에 관한 책임을 일부 인정한 유일한 사건인 관부 재판에 대해 인지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와 동시에 어쩌면 일시적인 관심에 머물지 몰라도 위안부 피해자들의 외침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써 큰 성과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위안부 소재의 영화가 연이어 개봉하면서 관객들이 조금은 부담을 느낀 탓인지 흥행 면에서 두드러지는 성적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아쉽기는 하지만, 내놓는 작품마다 극명한 편차를 보이는 민규동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인상적으로 기억될 작품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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