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이 내 세상>

분명 뻔하디 뻔한데 희한하게 정이 가네.

by 뭅스타

크게 내키지 않아 미루고 미뤘지만 왠지 이제는 봐야 할 것 같아 관람하게 된 오늘의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소재만으로도 여러 영화들을 연상케 한 데다가 스토리 역시 왠지 한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을 것만 같아 불안하기만 했던 이 작품을 관람한 소감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일단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꽤나 괜찮았다. 분명 전형적이고 분명 신파적인데 희한하게 그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달까.


영화는 전직 복서 조하가 17년 만에 재회한 엄마 인숙과 처음 만나는 동생 진태와 함께 살게 되며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어린 시절의 일로 인해 서먹서먹한 조하와 인숙의 모자 관계에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피아노 천재 진태까지 가세한 세 가족은 예상치 못한 여러 사건들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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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처음 만나는 두 형제와 그들을 보살피는 어머니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부터 영화는 어떻게 전개될지 충분히 예측 가능하며, 결국 영화는 그 예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한없이 진부하고 전형적인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희한하게 그 진부함이 마냥 식상하고 나쁘지만은 않게 다가온 것이 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가 비교적 괜찮게 다가온 이유 중 하나는 관객의 눈물을 짜내려고 힘겹게 힘겹게 애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장애를 앓는 아들 진태를 키워온,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또 다른 아들 조하까지 보살피게 된 그 둘의 엄마 인숙이 큰 병이 걸렸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복선이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그 진부함에 몸서리를 치게 만들지만 영화는 이 시한부 설정을 최대한 영화 중심에 배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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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이 그녀의 병 때문에 심각하게 아파하는 묘사도, 병마와 싸우는 그녀를 보고 두 아들이 대성통곡을 하는 묘사도, 심지어 어쩌면 가장 눈물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을 한 방도 배제한 각본은 이 영화가 신파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감동을 유발하기 위해 애쓰지 않은 연출은 되려 소소하면서도 담백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 영화를 관람하기 전 가장 우려했던 부분 중 하나는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마냥 인물을 희화화하기 위한 요소로 소모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인데, 이 부분 역시 그를 처음 마주하게 된 진태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그에게 큰 편견을 갖지 않는 듯한 태도로 그려냄으로써 비교적 무난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낸 2016년작 <스플릿>에서의 그것이 조금은 불편하고 불쾌하게 느껴졌던 것과 비교하면 더욱 캐릭터 활용을 알맞게 해낸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이 영화를 지탱하는 것은 배우들의 호연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일상 연기를 선보인 이병헌 배우는 철딱서니 없는 형 조하를 그만의 색깔로 훌륭히 소화해내며, 박정민 배우 역시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피아노 천재 진태를 무척 인상적으로 소화해낸다. 특히 6개월 간의 특훈을 통해 극 중 모든 피아노 신을 직접 소화해냈다는 박정민 배우의 노력은 그 빛을 제대로 발한다. 여기에 그녀의 표정과 눈빛 그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윤여정 배우의 활약은 그 누구보다도 눈부시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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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화의 단점 역시 분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피아노 천재 진태의 에피소드와 큰 병을 앓고 있는 인숙의 에피소드, 다시 링 위에 오르고 싶어 하는 조하의 에피소드 각각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낸다. 어딘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욕심처럼 느껴지는 구석들이 더러 있었달까. 무엇보다 뒷맛을 찝찝하게 만드는 점은 진태의 피아노 실력이 제대로 빛을 발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단지 실력과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 이른바 금수저 집안의 지연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점이 영화의 가장 큰 옥에 티로 작용한다. 과연 한가율이라는 캐릭터가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전체적으로 특별히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영화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그 자체로 관객을 납득시키고 마는 배우들의 열연이라는 큰 중심에 적절한 유머와 적절한 감동이 가미되다 보니 상영관을 나서는 순간 나름의 여운을 자아낸 작품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뭐, 이 정도 신파라면 충분히 봐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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