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클루니와 코엔 형제의 무난하고 미적지근한 만남.
상영관이 극히 적어 반쯤 포기하고 있던 그 영화 <서버비콘>을 기어코 관람하였다. <굿나잇 앤 굿럭>, <킹메이커> 등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조지 클루니가 감독을, 맷 데이먼과 줄리안 무어가 주연을, 말이 필요 없는 코엔 형제가 각본 작업을 맡았음에도 다소 무난한 평가를 받고 있어 괜스레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던 이 영화는, 분명 나름 흥미로운 부분도 있지만 앞서 언급한 쟁쟁한 이름들에 비해선 다소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남다른 감독, 남다른 배우, 남다른 각본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켜주기엔 역부족으로 느껴지는 영화였다고 할까.
영화는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중산층을 대상으로 조성된 꿈의 도시 서버비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아들 닉키와 함께 살아가던 가드너-로즈 부부의 집에 의문의 괴한이 들이닥치며 로즈가 살해되고, 이후 슬픔이 잠긴 가드너의 집에 로즈의 쌍둥이 자매 마가렛이 머물며 생활하게 된다. 아빠와 이모와 함께 생활하던 닉키는 의심쩍은 상황을 연이어 겪으면서 엄마의 죽음이 철저히 계획된 것임을 깨닫게 되고, 어느새 불안의 공간으로 바뀌어버린 가드너의 집은 점점 더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초반에만 해도 대체 무슨 내용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아내던 영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소 충격적인 전개로 흘러간다. 형부와 처제 관계에 있는 가드너와 마가렛이 불륜 관계로 발전하면서 각각 그의 아내이자 언니인 로즈를 청부 살해한다는 설정은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막장 같은 설정이면서도 제법 흥미롭게 다가온다. 더불어 이 관계를 눈치채는 인물이 가드너의 어린 아들 닉키라는 점에서, 과연 이 소년이 계획적으로 자신의 엄마를 죽인 두 인물을 상대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높이기도 한다.
영화는 각본을 맡은 코엔 형제 특유의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동시에 <매치 포인트>나 <이레셔널 맨> 같은 우디 앨런 표 범죄물을 떠올리게도 한다. 둘의 행복을 위해 아내를 죽이고 그 보험금으로 달아날 계획을 세운 가드너와 마가렛이 이 관계를 알아차린 닉키나 보험사 직원 버드 등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면서 계획에 차질을 빚는 과정은 마냥 특별하진 않을지라도, 나름대로 보는 재미를 충족시켜준다. 맷 데이먼과 줄리안 무어의 연기가 그들의 전작에 비해 다소 평범하게 다가오는 아쉬움은 있지만, 약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분량에도 극의 활력을 높여주는 데에 크게 한몫하는 오스카 아이삭이나 <원더>와 <콰이어트 플레이스>에 이어 다시 한번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노아 주프의 호연만큼은 매력적이다.
가드너 가족의 이야기가 영화의 본 스토리라면, 영화는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옆 집으로 이사 온 흑인 부부에게도 주목한다.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기인 만큼 흑인이 이사를 오자 서버비콘 주민들은 격렬하게 항의를 하고 그들의 집 앞에서 밤낮으로 소동을 벌이며 제 발로 마을을 떠나도록 유도하는데, 결과적으로 이러한 흑인 가족에 대한 묘사가 영화 전반적으로 조화롭게 어우러지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한다. 단순히 당시의 시대 상을 반영하기 위함인지, 혹은 바로 옆에 위치한 가드너 가족의 집에서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그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의미 없는 난동만 벌이는 주민들을 풍자하고 싶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주된 스토리와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기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충돌하고 만 느낌이랄까.
인물들의 의상과 차량 등이 1950년대 미국의 분위기를 간접 체험하게 해주며 나름의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코엔 형제 특유의 위트가 가미된 대사도 제법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불협화음만 야기하며 전혀 섞이지 못하는 두 이야기처럼 온전히 빠져들기엔 어려웠던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결국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감독 스스로도 반쯤 포기한 상태로 연출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조지 클루니이기에, 코엔 형제이기에, 맷 데이먼과 줄리안 무어이기에 한 발짝 더 나아간 무언가를 기대했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