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의 해방이라는 설정이 북유럽의 서늘함과 만났을 때.
부천 국제영화제 당시부터 상당히 기대를 모았던 그 영화 <델마>를 드디어 관람하였다. 무척이나 큰 기대를 갖고 관람한 이 영화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전개로 마지막 순간까지 굉장한 충격을 선사해주었다. 오직 델마라는 이름을 가진 누군가가 주인공이라는 것만 알고 관람한 상황에서 이 영화가 선사한 강렬함은 그야말로 엄청났달까.
영화는 친구 하나 없이 고독하게 학교 생활을 해나가던 대학 신입생 델마가 겪게 되는 독특한 일들을 그려나간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 속에서 자란 델마는 그녀가 겪은 일거수일투족을 아버지에게 보고하며,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마시는 것조차 금기시되어 왔다. 이렇게 철저히 통제 아래에서 생활해오던 델마는 그녀에게 먼저 친근하게 다가와 준 동창생 아냐를 만나면서 점점 억압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는데, 금기시되어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해나갈수록 델마는 과학으로 미처 설명하기 힘든 일들을 겪게 된다.
앞서 관람한 <산책하는 침략자>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또한 그 어떤 대사 없이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스스로를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여기던 델마가 아냐를 만나며 처음으로 금기시되어왔던 것들을 깨뜨려나가는 이후의 과정 또한 서늘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흥미롭게 전개된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스토리라인은 그야말로 충격적인데 델마와 아냐가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며 교감하는, 일종의 퀴어 로맨스로 다가오는 설정은 이러한 전개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만큼 무척 놀랍게 다가온다.
한마디로 영화는 그동안 억눌려 온 금기가 깨지면서 비로소 욕망을 표출하게 된 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쉽게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금기시되어왔던 것을 깨뜨림으로써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지난해 부천에서 소개되었던 <로우>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 이 영화는 그보다 더욱 충격적인 전개를 통해 상당한 임팩트를 선사한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긴장감을 높여주는 것은, 델마에게 보통의 인간들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음이 서서히 드러나면서부터인데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극도로 갈망하면 그것이 실현되는 델마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이 영화만의 독특한 개성을 구축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다.
할리우드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북유럽 영화만의 서늘한 분위기가 영화 전반에 깔리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영화는,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중반부 이후 더더욱 높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델마가 남들과 다른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짐으로써 그녀의 가족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계속해서 불안에 떨어야 하는 상황은 영화를 감도는 차가운 기운과 어우러져 묘한 스릴을 자아낸다. 성장 과정에 있어서 이성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한 여성의 성장 이야기로써도,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독특한 감정을 일으키는 스릴러 영화로써도, 마치 고대의 신화를 모티브로 한 듯한 한편의 미스터리 영화로써도 굉장한 매력을 선사하는 영화는 영화를 연출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전작 <라우더 댄 밤즈>와 너무나도 대조되는 분위기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한편, 영화의 엔딩에 있어서는 관객들마다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과연 델마가 그녀를 억압하던 부모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과정을 일종의 성장 영화로써 매력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델마가 과거에 행했던 것을 고려했을 때 델마를 억압한 부모의 행동이 불가피하다고 여길 것인가는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마다 확연히 차이를 보일 듯하며, 나 역시도 델마의 부모가 겪은 상황들까지 고려한다면 영화의 결말이 조금은 당혹스럽게 느껴지던 바. 어쨌거나 저쨌거나 전에 본 적 없는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임은 분명하며, 항상 독특한 개성을 선사했던 북유럽의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관람하시기를 적극 추천드릴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