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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침략자>

사랑의 힘을 이야기하는 구로사와 기요시만의 독창적인 방법.

by 뭅스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신작 <산책하는 침략자>를 관람하였다. 감독의 연출작에 대한 평가가 매번 심하게 엇갈리는 만큼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관람에 나선 이 영화는 굉장히 흥미롭고 개성 강한 작품임은 분명하지만 어딘가 지나칠 정도로 찝찝한 뒷맛을 남기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느 순간부터 무척이나 괴상해지는 전개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게 만드는 영화였다고 할까..


영화는 어느 여학생이 그녀의 가족을 처참하게 살해하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단숨에 몰입감을 높여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불안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나루미의 남편 신지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기억을 잃은 채 비정상적인 행동을 일삼는 것으로 장면이 전환되면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흥미를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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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기본적인 설정부터 무척 신선하게 다가온다. 지구 침략이라는 목적을 가진 세 명의 외계인이 평범한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 침략을 앞두고 인간들이 갖고 있는 개념들을 하나 둘 빼앗는다는 것이 영화의 주된 설정인데, 이렇게 외계인들에게 개념을 빼앗긴 인간들이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듯한 이상 행동을 보인다는 설정과 함께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은 꽤나 흥미롭게 전개된다.


인간이 아닌 또 다른 존재가 등장하는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이 영화 또한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인간 사회에 대한 풍자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메시지는 소중한 가치관을 잊고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진정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도록 하고자 함으로 보이는데, 결국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가치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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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하지 못하던 신지와 나루미의 부부 관계는 외계인이 신지의 몸과 정신을 장악하는 사건을 통해 회복의 가능성을 서서히 띠게 된다. 가정을 소홀히 한 신지를 크게 원망하고 있던 나루미가 뜻하지 않게 찾아온 두 번째 기회를 통해 그녀가 얼마나 신지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나 인류의 멸망을 앞두고 그녀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무척 독특한 이 SF 로맨스에 매력을 더한다. 더불어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묘사하며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엔딩 시퀀스가 선사하는 여운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다만 영화는 앞서 말했듯이 어딘가 지나칠 정도로 괴상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하는데, 이 불편함의 대부분은 주간지 기자 사쿠라이가 두 명의 외계인과 여정을 함께 해나가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초반부만 해도 이 영화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던 사쿠라이는 전개가 거듭되면서 점점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일삼는데,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 변화는 결국 찝찝한 물음표를 남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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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제법 흥미롭게 펼쳐지던 전개가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의 행동과 어우러지면서 쉽게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괴상한 뒷맛을 남기고 만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전반적으로 마냥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상상하기도 힘든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 낸 구로사와 기요시의 새로운 도전 자체는 꽤 인상적으로 다가오며 그렇기에 앞으로도 그만의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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