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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사랑을 만나며 비로소 성장하게 되는 한 소녀의 성장담.

by 뭅스타

서울로 나가야만 볼 수 있는 작은 영화들을 섭렵할 예정인 이틀 간의 관람 일정 중 첫 영화로 프랑스에서 건너온 <루나>를 관람하였다. 말도 안 되게 적은 상영관 탓에 전국 관객이 4백 명이 채 되지 않는, 어쩌면 많은 이들이 존재 자체도 모를 이 영화는 잔잔하면서도 서정적인 감성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93분의 러닝타임 내내 집중하게 만드는, 프랑스 영화 특유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던 영화라고 할까.


영화는 남자 친구 루벤의 생일을 맞아 루나와 친구들이 생일 파티를 벌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거하게 술을 마신 이들은 그들의 아지트에서 그라피티를 그리고 있던 알렉스를 아무 이유 없이 괴롭히고, 루나 또한 루벤을 비롯한 친구들과 함께 이 괴롭힘에 가담한다. 이후 머리 스타일을 새롭게 바꾼 것을 제외하면 이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던 루나는 우연히 알렉스와 다시 마주하게 되고, 함께 농장에서 일하게 된 알렉스를 계속 피하던 루나는 자신을 못 알아보는 그와 점점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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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기본적인 설정이나 정적인 분위기가 다르덴 형제의 <아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더불어 이번 달 개봉을 앞둔 국내 영화 <살아남은 아이>와도 유사한 지점을 갖기도 하는데, 그 두 영화가 피해자의 가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이 가해자를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 영화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만나게 된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점을 띠기도 한다. 집단 폭력에 가담한 가해자 루나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피해자 알렉스를 만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감을 느끼며 혼란을 겪는 과정, 그리고 운명같이 그 둘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며 흥미롭게 진행된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된, 더불어 비로소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게 된 한 소녀의 성장담처럼 보인다. 알렉스가 정말 루나를 못 알아보는 것인지, 정말 모른다면 언젠가 루나가 그 사실을 고백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긴장감을 자아내는 영화는 결국 이 둘의 관계가 불안으로 가득한 만큼 아무리 행복하고 애틋한 순간이라도 이를 마음 편히 관람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런 한편, 결국 루나가 아무 이유 없이 알렉스에게 폭행을 가하는 남자 친구 루벤에게 동조하고 그에게 가담한 것은 루벤을 끔찍하게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루나의 잘못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루벤을 향한 일방적인 사랑을 표현하던 루나가 알렉스를 만난 후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성격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결국 알렉스는 루나가 자신을 괴롭히던 일행들 중 한 명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한 머릿속이 루나를 만날 때만큼은 안정을 되찾는다고 말하던 알렉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후의 과정은 한때는 일방적인 피해자였던 알렉스가 이제는 루나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로 변모한 후이기에 더욱 흥미를 유발한다. 과연 알렉스는 루나를 용서할 것인가, 루나는 알렉스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던 영화가 취하는 마지막 엔딩은 보는 관객에 따라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 보이지만, 이전까지 유지해 온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는 인상적인 엔딩처럼 보인다.


이 영화를 통해 장편 감독으로 데뷔한 엘자 디링거는 그녀가 앞으로 그려나갈 영화 세계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들며,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했다는 루나 역의 레티샤 클레망 배우를 비롯해 주요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이 영화의 호불호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과연 집단 폭행의 가해자로서 루나의 행동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있어 보이는데 제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한들, 사랑하는 남자 친구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서라고 한들, 루나의 행동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그녀가 새로운 세상으로 나서는 것을 마냥 축복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불가피하게 영화 전반에 대한 만족도도 살짝 떨어지는 것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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