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연성은 떨어져도 이렇게나 유쾌하다면.
밀라 쿠니스와 케이트 맥키넌이 주연을 맡은 영화 <나를 차버린 스파이>를 관람하였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같은 성별의 두 인물이 주가 되는 버디 무비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지난해 이맘때 개봉한 <킬러의 보디가드>를 떠올리게도 하는 이 영화는, 최소한 킬링 타임 용 영화로써는 제 몫을 다 해준 듯하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면 허술한 점이 상당하지만, 그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로써는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작품 같은 느낌.
영화는 제목 그대로 자신을 차 버린 남자 친구 드류가 사실은 CIA 소속의 스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오드리와 그녀의 절친 모건이 얼떨결에 수많은 이들의 표적이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다. 드류가 보관하던 USB를 차지하기 위해 죽고 죽이는 사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오드리와 모건은 목숨을 구제하기 위해 유럽 곳곳을 오가는 여정을 펼쳐 나가게 되고, 임기응변으로 계속해서 위기를 벗어나는 그 둘의 우여곡절은 러닝타임을 유쾌함으로 가득 채운다.
여타 스파이 액션 영화와 대비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영화의 주인공 오드리와 모건이 그저 남들처럼 살아가던 평범한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총이라곤 오락기 게임을 통해 쏴 본 것이 전부인 데다가 어딘가 서툴고 엉성하기만 한 이들이 각종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은 영화 내내 큰 볼거리와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점에서 지난 6월 개봉한 <오션스 8>를 떠올리게도 하는데, 그 영화가 그저 '젠더 스와프'를 이용하는 데 그쳤다고 생각되는 것에 비해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이면서 그들의 역할이나 성격을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에 국한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한 채 그대로 직행해버린 영화가 많은 탓에 국내에서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마냥 높지만은 않은 밀라 쿠니스는 이번 영화를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그녀의 매력을 제대로 각인시킬 수 있을 듯하다. \각종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점차 적극적인 인물로 변해가는 캐릭터 오드리를 연기한 밀라 쿠니스는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옷을 입은 듯이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인다. 폴 페이그 감독의 2016년판 <고스트 버스터즈>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한 바 있는 케이트 맥키넌은 이번 영화에서도 오랜 코믹 연기로 다져진 그녀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는데, 전개가 흐를수록 조금은 텐션이 과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모건이라는 캐릭터를 그녀보다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를 찾기 힘들 정도로 이번 영화에서 보여주는 존재감 또한 상당하다. 더불어 훈훈한 비주얼로 여성 관객들을 사로잡을 듯한 두 배우 샘 휴건과 저스틴 서룩스의 활약 또한 꽤나 두드러진다.
전체적으로 내내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게 만들 만큼 유쾌함으로 가득한, 그렇기에 상영관을 나선 순간에도 제법 만족스러운 기분을 선사한 영화이기는 하지만 스토리만 놓고 봤을 땐 다소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적당한 반전 요소가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데에 큰 역할을 하며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은 분명하지만, 중반부 이후 펼쳐지는 이 영화의 반전 요소는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더불어 오드리와 모건이 유럽 이곳저곳을 이동하는데도 계속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상황 역시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지점이 있기도 한터라 만약 다시 관람하게 된다면 그때는 미처 보지 못한 허점들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정리하자면 다소 개연성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스토리라인을 잠시 뒤로 밀어두자면 시종일관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코미디 영화로써도, 각종 볼거리를 제공하는 액션 영화로써도,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들의 역할을 주체적으로 설정한 일종의 페미니즘 영화로써도 꽤나 매력 있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결국 영화의 호불호를 좌우하는 것은 점점 산으로 향하는 스토리를 어디까지 참고 볼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듯하며, 총 두 개의 쿠키 영상이 있으니 끝까지 관람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