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미를 생각게 하는, 깨끗하고도 사랑스러운 성장담.
전주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부터 개봉하기만을 기다려 온 그 영화 <어른도감>을 관람하였다. 관람객들의 후기가 대체로 좋았던 만큼 자연스럽게 기대치가 높아졌던 이 영화는, 생각보다 독특한 전개가 조금 당황스럽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꽤나 오랫동안 기억될 한편의 성장 영화를 만난 듯한 기분을 물씬 들게 해주었다.
영화는 열네 살의 소녀 경언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삼촌 재민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경언은 불쑥 나타나 혼자 남은 자신을 돌본다는 명목으로 함께 살게 된 재민을 영 못 미더워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의 사망 보험금을 재민이 모두 잃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앞서 말했듯이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관람한 상태에서 영화의 전개는 다소 당혹스럽게 다가왔다. 제목이나 포스터를 통해서 조금은 철없는 삼촌과 조카의 이야기라는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지만 그 삼촌이 사기 행각을 통해 돈을 챙기는 사기꾼이라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럼에도 이러한 전개가 선사한 당혹스러움을 상당 부분 상쇄시켜줄 만큼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인상적이었기에, 결국은 꽤나 매력적인 성장 영화처럼 다가온다.
국내 영화에서, 특히나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독립 영화에서 누군가의 성장이라는 주제를 가진 영화는 일 년에도 몇 편씩은 개봉할 만큼 흔하고 흔하다. 그런 만큼 자칫 전형적인 스토리대로만 흘러간다면 그저 진부한 주제의 반복처럼 느껴질 수 있을 상황에서 이 영화는 다른 성장 영화들과 또 다른 개성을 확실히 갖는다.
이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마냥 특별하지만은 않은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감동을 유발하기 위한 작위적인 연출은 배제했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집을 나가 얼굴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아버지마저 잃었다는 점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약한 아이처럼 그려낼 여지가 있음에도 그런 경언을 주체적이고 야무진 성격으로 그려낸 인물 묘사나 그런 경언이 성장해가는 과정은, 여타 성장 영화가 중반부 이후 급격이 어둡고 무거워지는 것을 고려하면 제법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충분히 능력이 있음에도 그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철없는 어른에 머물고 마는 재민과 거의 모든 면에서 그런 재민보다 더욱 성숙하게 느껴지는 경언, 이렇게 어른과 아이의 성격이 고정화된 역할과 대비되는 상황은 독특한 재미를 자아내기도 한다. 희로애락을 함께 겪는 과정을 통해 경언과 재민이 모두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모습은 괜히 질질 끌지 않는 깔끔한 엔딩과 함께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주축이 되는 배우들의 연기 또한 영화의 매력을 더해주는데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듯 자연스럽고도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이는 엄태구 배우는 자칫 마냥 짜증 날 수 있을 재민이라는 캐릭터를 밉지 않게 소화해내며, 단편 <장례난민>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바 있는 2004년생의 이재인 배우는 앞으로 그녀의 활약을 주목하게 만든다. 이 둘의 성장에 큰 디딤돌이 되는 서정연 배우의 안정감 있는 연기 또한 인상적.
정리하자면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와 아직 완전히 성숙해지지 못한 어른이 서로 함께 하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을 투박하면서도 사랑스럽게, 전형적인 듯하면서도 개성 있게 풀어낸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서로 함께 살아간다는 점에서 하나의 가족을 형성한 <어느 가족>과 혈연관계라는 것이 인물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 이 영화 <어른도감>을 함께 떠올리자니 과연 '가족'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새삼 다시 한번 생각게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