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밋밋할지라도, 그럼에도 우디 앨런.
우디 앨런 감독의 신작 <원더 휠>을 관람하였다. 그가 50년 간 발표한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가장 로튼토마토 지수가 낮은 탓에 다소 우려스럽기도 했던 이 작품은, 확실히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선 조금 조잡스럽고 산만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많았다. 현재까지 관람한 우디 앨런의 영화들 중에선 가장 평작으로 느껴졌달까.
영화는 뉴욕의 휴양지 코니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배우의 꿈을 접고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지니의 삶은 영 지긋지긋하고 따분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 험티가 세상을 떠난 전 부인 사이에서 낳은 딸 캐롤라이나가 집에 찾아오게 되고, 해변의 안전 요원으로 일하는 믹키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한순간에 굉장히 다이나믹하게 변한다.
<원더 휠>은 한마디로 딱 우디 앨런 스타일의 영화이다. 그의 시그니쳐라고 할 수 있을 나레이션과 재즈 풍의 음악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며, 인물들의 관계에 불륜이라는 소재가 등장하는 점 역시 참 우디 앨런답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소재는 크게 다르지 않아도 그 속에 미묘한 변주를 통해 각각의 작품마다 개성을 부여하는 우디 앨런의 확고한 스타일만큼은 홍상수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매력적이다.
다만 영화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조금은 필요 이상으로 산만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렇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의 등장하는 어떤 인물에게도 쉽게 감정적으로 이입하거나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삶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또 한번의 불륜을 저지르는 지니부터 그런 지니에게 좀처럼 애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새 남편 험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아빠의 집에 얹혀 살게 된 캐롤라이나와 희한한 그 가족의 두 여자와 삼각관계를 형성하게 된 안전 요원 믹키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어딘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연극적이고 이질적인 캐릭터로만 느껴지는 탓에 영화에 온전히 몰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할까.
한편 그런 속에서도 이 영화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지만큼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겉보기엔 너무나도 화려하고 아름답기만 한 코니 아일랜드에서 살아가는 지니의 지독히도 불행한 삶을 통해 현실은 결코 환상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지니가 그저 삭막하기만 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찾은 방법은 젊은 남자 믹키와의 은밀한 관계이지만 그들의 관계에 캐롤라이나가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지니의 환상은 그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그라 들듯이.
코니 아일랜드의 대관람차 이름인 '원더 휠'이 영화의 제목인 것도 꽤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듯 보인다. 지니의 집에서 훤히 보이는 대관람차도, 지니의 남편 험피가 운영하는 회전목마도 잠깐의 평안이나 쾌락을 줄지는 몰라도 결국 계속해서 정해진 자리를 반복하기만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띤다. 새로운 존재를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함으로써 잠깐의 환상과 잠깐의 행복을 느낄 수는 있어도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쓰디쓴 현실로 복귀해야만 하는 것이 어쩌면 우디 앨런이 바라보는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의 다이나믹한 과거사를 미루어 봤을 때 이제서야 뒤늦게 이를 깨닫게 된 자신에 대한 성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주노 템플, 제임스 벨루시 등 주요 배우들의 호연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누구보다 돋보이는 것은 단연 케이트 윈슬렛이다. 꿈도 잃고 현실에도 지칠대로 지쳐 있는 웨이트리스 지니의 롤러코스터같은 감정 기복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는 가히 놀랍다. 특히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이후 믹키에게 능청스러운 변명을 털어놓는 후반부의 어떤 시퀀스에서 그녀를 따라 이동하는 카메라 워크와 함께 선보이는 연기는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배우인지 새삼 실감케 한다.
정리하자면 여전히 그만의 색깔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그 안에 독특한 해학과 풍자까지 담아낸 점만큼은 인상적이나 그의 다른 연출작에 비해 그것이 조금은 밋밋하고 심드렁하게 다가오기도 한, 우디 앨런의 아쉬운 평작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아무리 평이 안 좋을지라도 계속해서 그의 차기작을 기다리고 관람하게 될, 그를 향한 나의 팬심만큼은 여전히 지켜준 작품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