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연출이 의의를 따라가지 못할 때.
고 홍기선 감독님의 유작 <1급기밀>.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소재에 대한 궁금증으로 관람한 이 작품은 최소한 사회고발영화로써의 가치와 의의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과연 영화의 연출까지 돋보였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남지만.
영화는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던 중령 박대익이 국방부 군수본부로 발령받아 항공부품구매과 과장으로 근무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매사에 적극적인 그는 새로운 근무지에서도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국방부 내부의 추악한 민낯과 마주하게 되면서 그는 진실을 밝혀야한다는 정의와 보장된 출세의 길 사이에서 방황한다.
지난 2009년 MBC `PD수첩`에 출연해 해군 내에서 발생한 9억원대 납품 비리를 고발한 김영수 장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그동안 발생한 각종 방산비리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감히 혼자 나설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권력에 맞서 진실을 폭로하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항공부품구매과의 과장으로서 제품에 하자나 이상이 없는지를 검토하던 대익은 전투기 부품 공급 과정에서 이상한 의혹을 품게 되고 공군 파일럿 강영우 대위가 추락 사고를 당하자 그 진상을 파헤치고자 한다. 하지만 국방부 고위 간부들이 그 사건을 단순 조종사 과실로 만들어 사건을 은폐하려 하고 계속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대익은 그는 물론 가족까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영화가 사뭇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른바 가격 뻥튀기, 부품 돌려막기 등의 수법을 통해 수십억의 이익을 챙긴 국방부의 비리가 단순 영화 속 소재가 아닌 우리의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추악하고 더럽기만 한 사회에서 정의로운 한 명의 인물이 진실을 밝힐 수 없도록 철저히 위협과 협박을 받아야하는 그 사실 역시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영화는 관람하는 내내 극도의 분노를 유발하며 대익이 진실을 밝혀내기까지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게 만든다. 특히 영화 말미에 모티브가 된 사건에 대한 자막과 실제 그 당시의 뉴스 영상이 삽입됨으로써 엔딩 크레딧이 끝나는 순간까지 씁쓸한 여운을 자아낸다.
다만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이기 때문에 사회고발영화로써의 의의를 잠시 제쳐두고 영화의 연출만 보자면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지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 중의 적잖은 부분은 그것이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로 느껴져 그것이 배우의 입 밖으로 나올 때 많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며, 씬과 씬이 바뀌는 과정에서 편집이 어딘가 뚝뚝 끊기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더불어 영화의 주인공 대익을 연기한 김상경 배우를 비롯해 최귀화, 최무성 배우 등 다른 영화들에선 항상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들의 연기도 이번 영화에서는 유독 지나칠 정도로 과잉으로 느껴지는 지점이 더러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영화 전체에서 제일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은, 대익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뒤 진실을 밝히러 향하는 클라이맥스의 묘사이다. 보도 프로그램 'PD25시'에 출연하기 위해 방송국으로 향하던 대익을 국방부 간부들이 막아서는 과정에서 뜻밖의 반전이 펼쳐지는데 그 장면의 거의 모든 것들이 그저 올드하고 촌스럽게 다가온다. 영화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어야 할 그 장면이 가장 엉성하고 조잡하게만 느껴지는 탓에 이전까지 잘 쌓아온 몰입감마저 상당 부분 깨지고 만다.
정리하자면 한국영화 최초로 방산비리를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갖는 의의만큼은 충분히 있으나 그것이 연출에 대한 아쉬움까지 상쇄해주지는 못한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비슷한 장르,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과 비교하자면 <제보자>나 <소수의견>같은 영화에 비해선 완성도 면에서 많이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오로지 의의만 남은 <또 하나의 약속>에 비해선 괜찮았던 영화였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가 완성되기 이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 홍기선 감독이 하늘에서나마 당신의 영화가 개봉한 것을 뿌듯하게 지켜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