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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넌>

제대로 삐끗하고 만 컨저링 유니버스.

by 뭅스타

첫 등장 이후 쏟아진 뜨거운 관심 속에 기어코 스핀오프로 나온 <컨저링> 시리즈의 신부 이야기 <더 넌>. 전세계적으로 처참한 평가와 반비례하는 놀라운 흥행 성적을 기록 중인 이 영화를 한마디로 요약하지만, 차곡차곡 잘 쌓아오던 '컨저링 유니버스' 전체에 대한 불신을 갖게 만들 정도로 당황스러운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마치 <애나벨> 1편을 봤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달까..

영화는 1952년의 루마니아를 배경으로, 악령의 실체와 맞서는 신부와 수녀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한 수녀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바티칸에서 파견된 버크 신부와 아이린 수녀가 수녀의 자살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위해 수녀원을 조사하게 되고,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그곳에서 그들은 거대한 힘을 가진 악령의 존재와 마주하게 된다. <컨저링 2>에 처음 등장해 신선한 임팩트를 선사한 발락 수녀를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는 수녀의 몸에 악령에 씌인 원인을 알고 싶어했을 관객들을 위해 간략한 전사를 다루는 것으로 시작해, 이후 버크 신부와 아이린 수녀가 수녀원을 찾은 이후 제대로 미쳐 날뛰기 시작하는 악령의 활약을 통해 공포를 자아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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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영화가 두 편의 <컨저링> 시리즈나 지난해 개봉한 <애나벨 2>에 비해 큰 재미를 선사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공포감을 조성하는 방법의 차이때문으로 보인다. 언급한 영화들은 언제 어디서 무엇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영화 내내 자아냄으로써 공포감을 선사하였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무엇인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긴장감을 형성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악령이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서늘함을 자아내는 것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공포 영화로써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던 가장 중요한 비결일 것이다.

반면, 이 영화 <더 넌>의 경우 카메라의 구도나 음악의 활용 등 연출적인 요소들이 공포 영화를 즐겨보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곧 무슨 일이 발생할지 뻔히 예상할 수 있을 만한 정도에 머물고 만다. 인물의 주변을 조금씩 움직이는 카메라 워크나 긴장감이 고조되는 순간 별안간 멈추는 음악은 '이제 뭐가 나타나겠구나' 라는 것을 대놓고 알려줄 뿐이며, 그렇게 친절하게 다음에 벌어질 상황을 대비하게 해주는 만큼 공포 영화에서 가장 중요시되어야 할 공포감을 크게 느낄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는 공포 영화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악령이 툭툭 튀어나오는 점프 스케어를 계속 활용하는데, 초반부터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악령의 존재는 어느 순간 무섭다기보단 진부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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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기존의 <컨저링> 시리즈가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는 설정 하에 정말 저런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을 것 같은 나름의 설득력을 부여했던 것과 별개로, 이 영화는 어느 순간 그저 황당한 판타지 영화처럼 다가온다. 특히 악령을 잠재울 수 있는 지옥문을 찾아나서는 후반부 전개는 내가 지금 <더 넌>을 보러 온건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속편을 보러 온건지 헷갈리게 만들 정도.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제대로 활약하는 발락 수녀와 그에 맞서는 인물들의 사투는 악령 주제에 농담도 하고 샷건도 다룰 줄 아는 발락의 무시무시함에 실소를 자아내고 만다. 거대한 악령이 도사리고 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죽고 싶어 환장하기라도 하듯 뿔뿔이 흩어지는 세 인물들의 이상한 행동처럼 그저 이상하고 황당하게 느껴진다고 할까.

국내와 해외 모두 저조한 평가를 얻고 있는 것에 반해 꽤나 쏠쏠한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이 '컨저링 유니버스'는 그 자체로 많은 관객들이 찾는 하나의 프랜차이즈로 발전한 것처럼 보인다. 이후에도 많은 영화들이 제작을 확정지은 만큼 앞으로 이 유니버스가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모으는데, 하지만 만약 이후의 프랜차이즈도 이 영화 <더 넌>같은 완성도에 머물고 만다면, 뻔한 것에 금방 질리는 요즘의 관객들에게 쉽게 외면받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펼쳐질 <컨저링> 시리즈는 다시 이전의 공포감을 선사해주길 바라며, 영화 내내 괜히 호의를 보였다가 제대로 개고생한 프렌치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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