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보다 사랑스러운 영화가 있을까.
지난 2014년 첫 관람 이후 그야말로 마음을 빼앗겨버린 그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4년 만에 재개봉을 통해 다시 관람하였다. 다섯 작품밖에 보지 못하긴 했지만 웨스 앤더슨 최고의 영화라고 단언할 수 있을 듯한, 그만큼 수많은 매력으로 가득찬 이 영화는 4년 만에 재관람에서도 여전히 엄청난 만족감을 선사해주었다. 그저 이 어이없을 정도로 취향을 저격하는 영화를 스크린으로 다시 만날 수 있던 것에 너무나도 행복할 따름.
세 번의 액자 구성을 거친 후에야 본 이야기가 시작되는 만큼 이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하는 건 다소 힘든 일인지도 모르겠다. 순차적으로 나열하자면 어느 작가의 동상을 찾아간 소녀의 모습을 시작으로 자신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찾아갔을 때의 일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1985년의 작가, 그 작가가 호텔에서 제로 무스타파를 만나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듣게 되는 1968년의 시퀀스를 지난 후에 본격적으로 1932년을 배경으로 무슈 구스타브와 로비 보이 제로의 좌충우돌 소동극이 펼쳐진다. 여기서의 소동극이란 구슈 무스타브가 그의 연인이자 거대 부호인 마담 D. 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리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말하는데, 영화의 대부분의 전개는 은신처를 찾아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무슈 구스타브와 그가 훔친 그림을 되찾으려는 마담 D 가족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주가 되어 펼쳐진다.
과거에 과거에 과거로 거슬러가는 구성 방식부터 무척 독특하게 느껴지는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은 단연 이보다 매력적일 수 없을 듯한 미장센의 향연이다. 이미 전작들에서부터 (그리고 최근작 <개들의 섬>에 이르기까지도) 강박적일 정도의 집착을 보이며 웨스 앤더슨만의 시그니쳐가 된 대칭 구조, 즉 인물을 프레임 한가운데에 위치시킨다거나 그를 중심으로 한 배경 디자인을 데칼코마니처럼 꾸민 연출 등은 가뜩이나 한 권의 팝업북을 보는 듯한 이 영화에 더더욱 동화 같은 색깔을 불어넣는다. 특히 네 개의 다른 시대를 각각 다른 화면 비율로 담아낸 상황에서 정사각형과 유사한 1.37 : 1의 비율로 전개되는 1932년의 이야기는 가히 웨스 앤더슨 표 미장센의 정점을 찍고야 만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발단은 마담 D. 의 살인 사건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살인 청부업자와 다양한 죄수들이 등장하며, 총격전은 물론 '다소 충격적인' 절단 장면까지 등장한다. 그럼에도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밝고 심지어 아기자기까지하다. 전반적으로 영화에는 유쾌함이 깔려있으며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내고야 마는 대사들의 향연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원색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영상미는 그러한 특유의 유쾌함과 사랑스러움을 더욱 극대화한다. 특히 올해 초 개봉한 <패딩턴 2>에서도 오마쥬한 듯 보이는 교도소에서의 탈옥 시퀀스와 '이거 참 별나네' 싶은 스키 추격 시퀀스는 그야말로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정도이다.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시얼샤 로넌, 애드리언 브로디, 윌렘 대포, 에드워드 노튼, 빌 머레이, 주드 로, 그리고 레아 세이두에 이르기까지. 도저히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배우들이 총출동한 상황에서 각각의 배우들은 그들의 분량이 많든 적든 존재감을 톡톡히 발산해내는데,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무슈 구스타브 역의 랄프 파인즈의 쉬지 않는 입만큼이나 화려한 연기는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모처럼 이 영화를 다시 관람하다 보니 그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이 새삼 아쉽게 느껴지기도.
영화라는 매체가 선사할 수 있는 최대치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볼거리와 한 순간도 눈을 뗼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스토리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영화이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웨스 앤더슨 특유의 쓰라린 뒷맛 또한 인상적이다. 결국 영화는 다 보고 나면, 화려한 것이 넘쳐났던 과거의 어떤 시대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결국은 젊은 시절의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 채 생을 마감하고 마는 덧없는 인생사에 대한 감독의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을 이루고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만 같던 시기가 찾아오지만 끝끝내 그 시기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뭔가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다시 관람하니 이전에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정을 자아내기도 했달까.
아마 세월이 한참 지나도 여전히 나만의 인생영화에 이름을 올릴 <마미>, <비긴 어게인>과 함께 2014년 개봉작 중 탑3로 꼽아왔던 이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4년 만에 돌아온 <개들의 섬>이 비교적 아쉬웠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다즐링 주식회사>, <문라이즈 킹덤>, <판타스틱 Mr. 폭스> 등에서 보여준 특유의 색깔 때문이라도, 혹은 오로지 이 영화 하나 때문이라도, 앞으로도 웨스 앤더슨이 펼쳐낼 영화 세계는 한 편의 아기자기한 동화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계속해서 기다리고 기대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