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 거위를 노래하다>

장률 필모 중 가장 매력적이며 가장 대중적인 영화.

by 뭅스타

장률 감독의 신작 <군산 : 거위를 노래하다>를 관람하였다. 장률이기에 기대되고, 장률이기에 걱정도 됐던 이 영화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게 마음을 흔든 작품이었다. 꽤나 대중적이고 꽤나 유머러스한 동시에 꽤나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어쩌면 내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스타일의 영화였다고 할까.

영화 시인을 꿈꿨던 윤영이 친한 선배의 아내였던 송현과 군산으로 여행 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왠지 모르게 묘한 기류가 감도는 둘은 어딘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민박집에 묵게 되는데, 윤영이 민박집 사장에게 호감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부푼 꿈을 갖고 군산행 버스에 몸을 실은 윤영의 마음은 점점 착잡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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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사전 정보를 알아보지 않은 채 영화를 보면서 '이게 이런 내용이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이번에도 아무런 정보 없이 관람하였는데, 이 영화 <군산 : 거위를 노래하다>의 초반부는 도저히 앞으로의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물론 이 영화의 장르가 무엇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 남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로맨스적 요소가 풍길 것 같던 영화는 민박집 사장과 자폐를 앓는 딸을 만나며 마치 공포 영화 속 클리셰 같은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며, 그 사이사이에 정체 모를 코미디까지 가미되어있다. 그런 만큼 한편으로는 무척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영화는 이후 전개가 펼쳐 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굉장한 매력과 흥미를 선사해낸다.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는, 어느 순간 박장대소를 하게 할 만큼 굉장히 웃기다는 것이다. 윤영과 송현이 여행을 떠나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 전 윤영의 동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황당한 사건과 대사들의 향연은 뻔뻔한 유머 요소가 더해져 예상치 못한 큰 웃음을 선사한다. 결국 영화 속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웃음을 자아내는 데에는 영화의 두 주연배우 박해일과 문소리의 호연이 크게 한몫하는 셈인데, 대체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모를 정도로 두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121분의 러닝타임 내내 영화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을 갖는다. 더불어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예상치 못한 카메오들의 출연이 선사하는 재미도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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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걸맞게 영화의 주요 배경은 군산이다. 두 인물이 며칠간의 군산 여행 도중 겪는 상황들이 담담하게, 혹은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던 영화는 중반부 이후 갑자기 시간을 거꾸로 돌려 윤영과 송현이 오랜만에 재회한 서울로 배경을 옮긴다. 이렇게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의 순서가 변화하는 구성은 단순히 플롯의 변화를 넘어 상영관이 나선 후 관객들이 느끼는 감상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져 무척 영리한 연출 방식처럼 다가온다. 이미 송현에게 호감을 느끼는 윤영이 큰 맘먹고 계획한 군산 여행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아는 상황에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들이 만나 이곳저곳을 옮기며 대화를 나누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제법 독특한 재미를 자아낸다.

굳이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다시 관람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가 첫 관람 때 보지 못한 영화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서라면 다른 이유는 극장이 아니면 제대로 즐길 수 없을 만한 무언가를 다시금 느끼기 위해서인데, 이 영화는 전자의 이유로 다시 한번 관람하고 찬찬히 장면 장면들을 파헤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거의 모든 장면, 모든 대사들이 다시 관람했을 때 지금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만큼, 찬찬히 분석해보고 싶어 지는 영화였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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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흩어진 퍼즐 조각처럼 어지럽게 널려 있는 파편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고 그 속에서 인물들의 발걸음을 따라 스치는 장소들,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었다고, 더불어 전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족과 과거의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까지 매끄럽게 담겨 있는 작품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아직 그의 필모그래피를 모두 섭렵하지는 못했지만 감히 장률 감독의 가장 대중적인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며, 아직 보지 못한 그의 전작 <경주>를 얼른 관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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