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재평가받게 될 괴작이자 걸작.

by 뭅스타

CGV에서 한창 진행 중인 박찬욱 특별전을 통해 관람한 두번째 영화 <박쥐>. 몇 년 전 집에서 관람했을 당시 생각 이상으로 강렬한 영상미와 소재로 큰 충격을 안겨준 바 있는 이 영화는, 스크린으로 만난 오늘도 몇 년 전 그때와 마찬가지로, 혹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영화는 해외에서 비밀리에 진행하는 백신개발 실험에 지원한 신부 상현이 지원자 중 유일하게 목숨을 건진 채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실험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이유로 신도들에게 추앙받던 상현은 실험의 결과로 피를 먹고 살아야하는 뱀파이어가 되어버리고,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피를 구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욕구와 신앙심 사이에 충돌한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 친구 강우를 만나게 된 상현은 그의 아내 태주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며 억눌렸던 욕망의 끈을 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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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 호불호가 정말 극명하게 갈렸던 것으로 기억하는 이 영화는, 다시 관람한 지금도 감히 누군가에게 선뜻 추천할 수는 없을 것만 같다. 그만큼 영화의 스토리는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너무나도 파격적인데, 결국 그 독특함은 영화를 처음 봤던 그때나 다시 관람한 지금에나 나에게만큼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일종의 SF와 액션 장르도 가미되어 있는, 이 한 편의 미치도록 뜨겁고 서늘한 로맨스는 박찬욱 영화 특유의 화려한 영상미와 매혹적인 전개와 어우러져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 없는 영화적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는 한마디로 상현의 강렬하면서도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신부라는 직업 상 평생 성욕을 금기시해야만 했던 상현이 뱀파이어가 되며 태주의 육체를 탐하게 되고 태주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부터 그런 태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태주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며 끝끝내 비극적인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앞으로의 전개를 쉽게 예측하기 힘든 상황의 연속으로 굉장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한 여자를 미치도록 사랑한 한 남자의 희로애락이 금기를 깨뜨리는 신부라는 설정, 결정적으로 한국 영화에선 쉽게 보기 힘들었던 뱀파이어라는 소재와 맞물리며 (확장판 기준) 147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불구 단 한 순간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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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배우도 언제나처럼 훌륭하지만, 재관람을 하며 새삼 느낀 것은 이 영화는 철저히 김옥빈 배우의 영화이다. <다세포 소녀>를 통해 끔찍한 혹평을 경험해야 했던 김옥빈 배우는 답답한 집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인 태주를 연기한 이 영화에서 감히 어느 배우가 소화할 수 있을까 싶은 입체적인 캐릭터를 무척 훌륭히 소화해낸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 영화로 시체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녀가 국내 영화제에선 단 한 개의 트로피도 거머쥐지 못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송강호와 김옥빈 배우 이외에도 굉장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김해숙, 신하균 배우의 활약 역시 이 영화의 재미를 높여주는 중요한 요소로 다가온다.


무척 매력적인 러브 스토리나 배우들의 호연 이외에도 박찬욱 감독과 이전부터 함께 작업해온 조영욱 음악감독의 인상적인 음악, 정정훈 촬영감독의 단순히 영화를 넘어 한 편의 예술을 보는 듯한 고급스러운 촬영, 류성희 미술감독의 색채의 대비가 돋보이는 세트 구성까지 영화의 모든 요소가 하나같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이 영화는 그냥 오프닝부터 엔딩에 이르기까지 모든 순간이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은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뜬금없이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 요소도, 처음 관람했을 때 온몸에 닭살이 돋게 만든 몇몇 장면의 임팩트도, 이보다 깔끔할 수 없을 것 같은 엔딩 시퀀스도 그저 너무나도 매혹적으로 느껴진 작품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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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처음 관람했을 때 4.5점을 줬던 이 영화를 5점 만점으로 수정하게 만든 이유가 아닐까 싶으며, 여전히 평이 굉장히 엇갈리는 작품이지만 아마 최근 특별관 개관을 맞아 상영 중인 김기영 감독의 작품들처럼 시간이 한참 더 흐르고 나면 21세기 한국 영화를 빛낸 명작으로 재조명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마 이번 특별전으로 마지막 영화가 될 것같아 덧붙이자면 박찬욱 감독이 다시 복수 트릴로지와 <박쥐>를 만들었던 이때처럼 보다 그의 색깔을 원없이 드러내는 획기적인 괴작을 들고 오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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