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

꼭 두 영화의 설정을 합쳐야만 했을까.

by 뭅스타

19.01.18. @CGV평촌


어쩌다 보니 첫 영화를 관람한 이후 약 15시간이 흘러 새벽 1시대에 관람하게 된 오늘의 두번째 영화 <글래스>. 개인적으로 <언브레이커블>과 <23 아이덴티티> 모두 특출나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던 만큼, 그리고 공개 이후 해외 평가가 썩 좋지 못했던 만큼, 그렇게 기대치가 높지만은 않았던 이 영화는, 나와 샤말란 감독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해줄 뿐이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히어로 트릴로지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영화는, 여전히 정의감을 바탕으로 악행을 벌인 자들을 처벌하는 괴력의 존재 데이빗이 통제가 불가능한 24개의 인격을 지닌 케빈을 만나며 시작된다. 치열한 결투를 벌이다 발각된 둘은, 자신을 슈퍼히어로라고 믿는 존재들의 망상증 환자를 치료하고자 하는 엘리 박사의 감시 하에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그리고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죄로 오래 전부터 그 병원에 수감 중인 엘리야는 그들 각자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계획을 세우며 그들에게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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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이틀째에 접어든 이 영화의 관람평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최근 할리우드 상업영화 중에 이렇게나 호불호가 극명히 갈린 영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어떤 이들에겐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최고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편, 어떤 이들에겐 설득력 없는 산만한 결과물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데, 개인적인 감상으로도 도저히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은 이 영화는 나에게도 샤말란 감독의 독특한 가치관과 상상력만이 빛나는 조잡한 작품으로 다가왔다.

물론 영화는 장면 장면을 찬찬히 해석하는 재미를 안겨줄 만한 요소들은 더러 존재한다. 데이빗을 영웅의 상징으로, 엘리야를 악당의 상징으로, 그리고 사랑을 받지 못한 결핍으로 또다른 자아를 만들게 된 케빈을 선과 악의 경계에 위치한 존재로 봤을 때 이들이 스스로의 욕망과 존재 가치를 드러내기까지의 과정은 새롭게 등장한 엘리 박사의 역할과 대비돼 제법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표면적으로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개개인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의 허상 속에서 각자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찾아나서라는 제법 철학적이고 방대한 메시지까지 품고 있다는 것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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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후반부에 몰아치는 전개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딘가 심각할 정도로 힘이 없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언브레이커블>을 비롯해 <식스 센스>, <빌리지>, <더 비지트> 등 후반부의 한 방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서늘하면서도 다소 차분하게 그려내는 것이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확고한 스타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중반부까지 느릿느릿하게 펼쳐지는 스토리와 유사 상황의 반복은 폭발적으로 터지는 후반부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영화의 흥미를 떨어뜨리고 만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관람하기 전에 가장 우려스러웠던 점은 꼭 감독의 두 전작 속 세계관을 결합해야만 했을까 하는 부분인데, 앞서 언급했듯 두 영화에 등장한 인물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감독의 가치관이 두드러지는 효과를 낳는 것은 사실이나 데이빗, 케빈, 엘리야로 대표되는 인물들이 이전 영화들에 비해 두드러지는 활약을 하지 못한다는 점도 크게 아쉽기만 하다. 19년동안 자신의 능력을 기반으로 정의를 위해 움직였을 데이빗이 엘리 박사의 세뇌에 너무나 쉽게 넘어가는 것도 조금은 당황스럽게 느껴지며, 각기 다른 인격들의 대립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케빈의 모습은 <23 아이덴티티> 속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은 느낌을 안겨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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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영화 <글래스>는 <언브레이커블>과 <23 아이덴티티>를 무조건 관람해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두 작품을 최근에 복습한 나에게도 썩 만족스럽지 않은 관람이었던 상황에서 만약 두 작품 중 한 작품이라도 관람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영화를 접하면 더더욱 산만하고 정신없게만 느껴질 듯 하며, 무려 19년에 걸친 슈퍼히어로 트릴로지의 성대한 마무리인 만큼 이전 두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고스란히 이 작품에 대한 호불호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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