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 쌓아오던 것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후반 30분.
19.02.13. @CGV평촌
생각보다 괜찮았던 <기묘한 가족>의 감흥을 그대로 이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관람한 오늘의 두번째 영화 <증인>.<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등을 연출한 이한 감독이 <오빠 생각> 이후 3년만에 내놓은 이 영화는, <기묘한 가족>과 마찬가지로 걱정했던 것보다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적어도 후반 30분 여를 남겨두기 전까지는.
영화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 순호가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노인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모든 증거가 그의 자살로 쏠리는 가운데 자폐를 앓고 있는 유일한 목격자 지우만이 가정부가 그를 살해했다고 증언하는 상황에서, 순호는 사건에 대해 묻기 위해 지우에게 다가간다.
<증인>은 소재나 상황과 관계없이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이한 감독의 맥락을 같이 한다. 살인 사건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중심으로 하지만, 그리고 극 중 누군가의 대사처럼 '가정부', '살인', '자폐'라는 흥미를 유발할 만한 키워드를 내세우지만 영화는 이를 자극적으로 그려내기보단 나름 담백한 연출로 풀어내며 전개 과정에서 흥미를 더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단연 배우들의 연기인데, 개인적으로 <강철비>를 제외하곤 연기를 안정적으로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던 정우성 배우는 이번 작품에서도 <강철비>에 이어 캐릭터를 제법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며 자칫 희화화로 느껴질 수도 있을 자폐아 캐릭터 지우를 연기한 김향기 배우의 연기 또한 돋보인다. 그 외에도 이규형, 염혜란, 장영남, 송윤아 등 조연진들의 활약 또한 극의 무게감을 더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다.
포스터만 봐도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훤히 보이던 영화는 그 주제만큼은 뚜렷하게 전달한다. 돈과 명예를 좇던 변호사 순호가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바라보는 자폐아 소녀 지우를 만나며 변화하게 되는 과정은 조금은 전형적인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제법 힘을 발휘하며 곱씹어 볼 만한 질문들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 만큼, 비록 특별하진 않을지라도 제법 매력적이고 교훈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은 앞서 말한대로 후반부에 이르러 급격히 힘을 잃는다. 한마디로 주제를 조금 더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끝끝내 개연성을 포기하고 마는,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닌 영화에 남은 것처럼 느껴진다. 철저히 '순호 갱생 프로젝트'를 위해 펼쳐지는 듯한 어떤 설정 이후의 상황들은 현실적인 몰입감을 자아내기보다는 허황되고 황당한 판타지처럼만 느껴져 이전까지 쌓아오던 주제의 힘을 상쇄시킨다.
특히 그 후반부에서 순호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대사는 주제를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마치 한 편의 공익광고를 보는 듯한 인상까지 안겨주고 만다. 이미 이전의 수많은 상황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영화가 지나칠 정도로 직설적으로 주제를 내뱉다보니 되려 거부감을 유발하고만 만달까.
더불어 전개 과정 내내 삽입되는 수많은 사족들은 과연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120분이 넘어야만 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낳기도 한다. 성공만을 좇던 순호가 올바른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하는 후반부의 상황이 일종의 감동이나 여운을 안겨주기엔, 이미 초반부터 그가 결국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복선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깔다보니 클라이맥스 이후의 상황은 이미 끝이 훤히 보이는 상황을 루즈하게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주제를 명확히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자극적일 수 있는 상황들도 담백하게 풀어내는, 이른바 '착한 영화'는 남녀노소 모두가 가볍게 관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만의 확실한 장점을 갖는다. 하지만 착한 영화가 되기 위해 개연성을 과감히 (심지어 갑자기) 포기하고 마니 결국 따뜻함에 앞서 당황스러움을 안겨주는 영화가 되고 만다. 이 소재, 이 스토리 그대로 주인공이 변호사 순호가 아닌 판사 희중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계속 하게 만들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