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하든, 불쾌하든, 그저 보이는 대로 즐기면 되는.
19.02.25. @CGV평촌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어떠한 이유로든 화제의 중심에 서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신작 <살인마 잭의 집>. 감독의 전작을 섭렵하고 보겠다는 계획은 <안티크라이스트>만 추가로 관람하면서 실패했지만, 아무쪼록 지난 해 부산에서부터 상당한 기대를 모았던 이 영화는 아주 간단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감히 한 번만 보고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절대 정의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감히 재관람을 할 엄두는 나지 않는 영화라고.
영화는 감독의 전작 <님포매니악>과 비슷한 플롯 구성으로 진행된다. 주인공 조가 그녀를 도와주러 온 셀레그먼에게 자신이 그동안 겪은 수많은 섹스 경험담을 늘어놓았던 <님포매니악>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또한 잭이 의문의 존재인 버지에게 자신이 저지른 다섯 번의 살인 사건을 중점으로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꺼내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친절한 국내 제목때문에라도 잭이 살인마라는 것을 알고 관람하게 된 관객들에게 영화에서 묘사하는 다양한 살인 이야기는 충격 그 이상의 무언가를 선사한다.
주인공 잭은 어떤 의미에서 지나칠 정도로 뻔뻔하다. 잭은 그가 저지른 살인은 곧 하나의 예술이었으며, 스스로를 '교양 살인마'라고 칭한다. 이 황당무계할 정도로 뻔뻔한 잭은 의심의 여지 없이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스스로를 대변한다. 비록 누군가는 도저히 이해 못 하고 비난할지라도 그가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라스 폰 트리에의 변명이자 뚝심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영화는, 기어코 그 뻔뻔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든다.
연쇄 살인마를, 더 정확히 말해 싸이코패스를 다룬 영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싸이코패스의 심리를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다룬 영화는 그 동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만 같다. (라스 폰 트리에 본인이 이와 관련된 또다른 영화를 만들지 않는 이상.) 어쩌면 이 또한 앞서 말했듯 세상에서 멸시받고 비난당하는 싸이코패스 캐릭터 잭에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그동안 세상을 바라본 시선을 그대로 녹여냈기 때문이라고 보이는데,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쏟아지는 수많은 은유와 비유는 마치 <님포매니악>의 그것처럼 어느 순간 꽤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런 한편, 분명한 사실은 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152분이라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동안 편치 않은 이야기가 줄곧 펼쳐진 탓일 것이다. 당장 어제 새벽에 급하게 관람한 <안티크라이스트>와 마찬가지로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어지러운 기분이 들 정도로 감독은 보는 이들의 기를 제대로 빨아들인다. 수위에 대한 얘기가 굉장히 많았던 것과 달리 개인적으로 수위 자체는 그렇게 심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은 살짝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말했듯이 나는 결코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과연 두 번, 세 번 다시 본다고 해서 감독이 말하고자 한 바를 100%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말할 자신도 없다. 한편 다르게 접근하면 굳이 이 영화의 의미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야만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받아들일 수 있든지 없든지 그저 라스 폰 트리에만의 예술관과 세계관이 쏟아지는 이 영화는, 그냥 이를 즐길 수 있는 이들은 있는 그대로 즐기면 되고 이를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들은 비판하고 비난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를 싸이코패스 캐릭터에 빗댄 만큼 이른바 '미친 영화'를 만드는 것을 넘어 스스로 '미친 감독'으로 불리는 것을 즐기는 것 같은 라스 폰 트리에만의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로테스크한 매력을 안겨주는, 그리고 참 희한하게도 그만의 영화 세계를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고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상 한없이 끔찍하고 경악스러운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경쾌함이 극에 달하는 'Hit The Road Jack'이 흘러나오는 순간 애써 해석하기보다 그냥 즐기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