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함이 당연시되어가는 현실을 향한 메시지.
19.02.27. @에무시네마
지난 해 서울독립영화제 때 보려고 했었다가 아쉽게 예매를 취소해야 했던 그 영화 <내가 사는 세상>을 정식 개봉을 일주일 앞두고 진행된 GV로 관람하였다. 부푼 기대를 안고 관람한 이 영화는, 씁쓸한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영화 속 세상이 선사하는 여운이 제법 짙고 강하게 남는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영화는 오랜 연인으로 보이는 민규와 시은의 며칠 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DJ로 성공하길 꿈꾸며 밤낮으로 일하는 민규와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는 시은은 여전히 서로에게 너무나 애틋하고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각박한 현실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위기를 맞이한다.
결국 영화에서 그 둘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돈과 얽힌 현실이다. 민규와 시은이 갈등하는 상황들은 그들 내에 문제가 아닌 그들과 갑을의 관계로 얽혀있는 이들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민규와 퀵 서비스 업체 사장과의 관계, 시은과 미술학원 원장 지영과의 관계, 민규가 DJ 일을 하는 가게 사장과의 관계 등 민규와 시은은 그들이 고용자의 입장에 있는 환경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며 결국 이는 그들의 관계가 틀어지는 계기로 작용한다.
민규와 시은이 그들이 고용자로서 일하는 공간에서 요구하는 사항은 그리 특별한 것도, 유별난 것도 아닌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근로자로서의 합당한 권익을 얻고자 하는 것, 일을 추가로 한 만큼 그에 합당한 비용을 받고자 하는 것 등 그들은 그저 당연한 권리를 요구할 뿐이지만 부당한 세상에서 그러한 당연함의 요구는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을 다룬 영화라고 봤을 때, 어쩌면 이러한 주제는 독립영화계에서 일 년에 몇 편씩 나올 만큼 전형적이고 진부한 소재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당장 머리 속에 떠오르는 독립영화들만 해도 대부분이 청춘의 씁쓸한 현실을 그리고 있는 만큼, 자칫 또 한 편의 청춘 영화로 남는 데 그칠 수 있지만 <내가 사는 세상>은 다른 작품들과는 또다른 이 영화만의 개성을 확실히 갖춘다.
청춘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독립영화들 중 대부분이 주인공을 제대로 일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어렵고 힘든 환경에 내몬다면,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그들 나름대로 꿈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발버둥친다. 그렇게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을 위해 나아가려고 애쓰지만 그들의 실수나 능력 부족이 아닌 다른 이유로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마는 이야기는 어쩌면 이것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만큼 생각보다 더욱 씁쓸한 여운을 자아낸다.
<당신도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 <홍콩멜로> 등 다양한 단편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는 곽민규, 김시은 배우는 그들의 오랜 인연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극의 몰입감을 높여준다. 매 작품마다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듯한 일상의 연기를 선보이는 곽민규 배우와 <수색역>에서부터 인상깊은 연기로 다가온 김시은 배우는, (비록 67분의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그동안 주로 단편에서 봐왔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긴 호흡을 맞춰야 하는 이 영화에서 각자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이 연기한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낸다.
상영관에 불이 켜진 후 마음 속 깊이 자리하는 씁쓸함의 크기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 속 이야기가 단순히 나와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습이자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할 세상의 모습과 똑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영화 속 민규와 시은에게도, 영화를 관람한 나 스스로에게도 이토록 부당한 현실에서 더욱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응원하게 되는 영화라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하며, 부당함이 당연함이 되어가는 세상을 향해 목소리 내어 이야기하는 최창환 감독의 다음 작품도 얼른 만나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