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의 언어'가 선사하는 애틋한 사랑의 감정
19.03.07. @CGV압구정
그야말로 <캡틴 마블>이 스크린을 장악해버린 상황에서 금주 개봉작이자 의미심장한 제목으로 관심을 모았던 멕시코 영화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를 관람하였다. 2017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시네마 부문 관객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 영화는,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는 흥미로운 스토리와 묵직한 감동이 생각 이상으로 인상적으로 느껴진 작품이었다.
영화는 언어학자 파르틴이 고대 언어 시크릴어를 연구하기 위해 한적한 마을에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크릴어를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두 인물 이사우로와 에바리스토가 어떠한 이유로 50년이 넘게 말을 안 섞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둘이 화해하기를 설득하는데, 둘도 없는 단짝이었던 그들이 멀어지게 된 계기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점점 흥미를 유발한다.
어떤 의미에선 정식으로 수입되어 극장에서 개봉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유명한 감독도, 배우도 없는데다 멕시코의 외진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리고 그런 만큼 조금은 진지하고 단조롭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갖기도 했지만 영화는 생각 이상으로 큰 재미를 안겨준다. 50년이 넘게 절교를 이어가는 두 친구의 모습은 때때로 귀엽게까지 느껴지며 중간중간 웅장하게 깔리는 음악은 영화의 긴장을 조성하는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 한편 중반부 이후 왜 그토록 친하던 두 친구가 멀어지게 됐는지가 밝혀진 후 분위기를 달리 하기 시작하는데, 흡사 오랜 시간동안 이어진 세 남녀의 삼각 관계를 그리는 듯 보이던 영화는 이후부터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지만 두려움과 죄책감에 서로를 밀어낼 수밖에 없던 두 친구의 사랑 이야기로 변화한다. 이 과정에서 5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현재와 과거 시퀀스의 교차하는 플롯 구성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감정선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들며, 두 친구가 깊어진 감정의 골을 회복하는 역할을 하는 마르틴과 루비아의 인물 설정도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활용되는 소재는 제목에도 등장하는 '언어'이다. 스페인어를 배우지 못해 다른 이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이사우로, 영어를 배워 미국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루비아 등 영화에서 언어는 인물 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도, 단절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고대 토착 언어인 시크릴어이다.
시크릴어를 구사하고 전수할 수 있는 사람이 오직 이사우로와 에바리스토, 둘밖에 없다는 설정은 이를 연구하고자 하는 마르틴의 목적과 결합해 둘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오직 그 둘만이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언어라는 점에서 그들의 사랑을 더욱 애틋하고 아련하게 만드는 소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단 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인 만큼 영화는 그들이 나누는 시크릴어를 따로 번역해서 자막으로 제공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그들의 감정은 표정과 눈빛으로 오롯이 전달되며 더더욱 이 영화만의 독특한 매력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시크릴어의 해석을 배제한 연출은 결과적으로 엔딩의 감동을 더욱 극대화하는 효과를 낳는데, 영화 내내 과거에도 현재에도 대립과 화해를 거듭하던 두 친구가 맞이하는 클라이맥스의 순간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묵직하고 먹먹한 감동을 안겨준다. 엔딩에 이르러 비로소 드러나는 감독의 의도는 꽤나 인상적인 깨달음을 선사하기도 하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계속 그 여운에 잠기게 만든다.
정리하자면 분명 러닝타임 내내 조금은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가지만 사라져가는 고대 언어를 소재로 한 로맨스라는, 지금까지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쉽게 접하지 못할 것 같은 참신한 스토리가 선사하는 재미와 감동이 제법 크게 느껴진 영화였다고 할 수 있겠다. 5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서로의 감정을 터놓지 못했던 두 친구가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찌 감히 그들이 쌓아온 세월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내 그들의 관계가 더욱 애절하게 느껴지기도.